지루하고 재미없고 난해하다. 그럼에도 계속 공부하는 이유는 드물게 찾아오는 발견의 효용 때문이다. 찰나적이나마, 공부 덕에 막힌 말문이 트이고 흐린 시야가 분명해진다. 예컨대 권력 이론가 미셸 푸코의 ‘죽게 내버려두기’를 접했을 때가 그랬다. 그의 다음 말을 곱씹어보자. “주권은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뒀습니다. 그리고 이제 반대로, 제가 조절이라고 부르는 권력이,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으로 이뤄진 권력이 나타났습니다.”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상상의 날개가 펼쳐진다. 오늘날 새로운 권력이 우세종으로 등장했는데, 그것은 생사여탈권을 쥐고 저항하는 이를 사형하거나 고문하고 죽이는 권력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도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든 신경 쓰지 않던 권력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푸코가 ‘조절’이라 부른 새로운 권력은 이러저러하게 살라고 명령한다. ‘좋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계발해 경쟁력을 높이도록 주문하고 어떤 나이대에서는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집 평수는, 사는 곳은, 자산의 가격은, 적정 체지방의 정도는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에 미달한다면? 그래서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다면? 새로운 권력은 밀려난 자에 무심하고 그들을 멸시한다. 죽음은 관심 밖의 일이다. 모두가 삶의 역동에 취한다. 삶은 명문화되지만 죽음은 익명화된다.

▲ 11월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경찰은 지난 11월11일 사고 현장 통제선을 제거했다. ⓒ 연합뉴스
▲ 11월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경찰은 지난 11월11일 사고 현장 통제선을 제거했다. ⓒ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죽게 내버려두기’를 떠올렸다. 위험을 알리고 안전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에 무능했던 10월29일, 그 날의 행정력 마비와 부재 탓이 컸다. 이후 ‘참사’를 ‘사고’로 좁혀 틀 짓는 보수 정치권력의 수상한 움직임, 위패와 영정사진도 없던 기이한 분향소, 지역 주민과 상인에게 지워질 고통과 피해를 줄인다는 이유로 ‘이태원 참사’를 ‘10·29 참사’로 부르겠다는 일부 언론사의 결기와 이를 제언한 심리학회의 고민 모두에서 산 자는 살고 죽은 자는 죽게 내버려두려는 의지가 읽혔다. 10월29일 전이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 했던 이들을 똑똑히 기억한다. 코로나 비상시국에서 자랑스러웠던 치명률과 확진률의 통계 수치 아래 고작 몇 백 만원의 보상금으로 희생을 강요받았던 자영업자의 현실도 잊을 수 없다. 이태원은 코로나 시국에서 가장 고통 받던 곳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직장에 갔다가 사고로 그 날 집에 오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는 이들이 연간 천 명 남짓이다. 그간 좋은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이를 따르거나 거스르다 도태되고, 방치되며, 죽어간 이들은 적절한 애도의 공간을 찾지 못한 채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오늘날에는 정반대로 죽음이 개인들, 가족, 집단,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떠들썩한 제식의 하나이기를 그치며 오히려 감춰지게 됐습니다. 죽음은 가장 사적이고 가장 부끄러운 것이 됐습니다.” 재차 푸코의 권력 이론을 읽으며 생사의 갈림길을 사색한다. 이렇게 죽음이 하찮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소위 ‘좋은’ 삶에 대한 압박이 개인의 뇌리에 가장 강력히 똬리를 틀고 생명을 추동하는 이곳에서, 내팽개친 죽음은 역설적으로 일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축제에 참여하다가, 집 안에 있다가 폭우만으로도 부지불식간에 마주하게 되는 가장 필연적인 삶의 손님이 되어버렸다. 이를 언제까지 개인의 비극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노릇이다. 죽음은 부끄럽지 않다. 죽음은 사적이지 않다. 죽음을 지움으로서 삶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보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일상 또한 계속되었다. 텔레비전 예능은 짧은 애도 기간이 지나자 변함없이 떠들썩하고 참여했던 학회와 몇몇 공적 행사에서도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세련되게 숨을 죽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안감을 지우기는 어렵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 몸이 부딪히는 짧은 순간마저 죽음을 연상하는 사회는 지옥과 다를 바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