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대중문화 이론서의 첫 두어 챕터는 프랑크푸르트학파에 할애된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조사원(Institute for Social Resarch)에 모였던 일군의 맑스주의자들을 일컫는다. 설립 초기, 자본주의 경제와 노동운동사에 집중했던 사회조사원은 1930년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소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당시 독일의 진보 정당들이 지나치게 ‘경제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자본주의가 영속화되고 독일은 히틀러의 선전·선동으로 전체주의로 추락하는 와중에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사회변혁을 위해 ‘정통’ 맑스주의가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경제가 아니라 문화에 주목하였다. 특히 ‘문화산업’이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된 바, 호르크하이머와 공저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에서 “문화 생산물은 모든 사람들을 일하는 시간과 마찬가지로 휴식 시간에도 잡아 놓는 거대한 경제 메커니즘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며, “문화 산업은 하자 없는 규격품을 만들 듯이 인간들을 재생산하려 든다.”고 일갈한다. 지금이야 의미가 변질되었지만, 이들이 최초로 ‘문화산업’이란 말을 창안한 이유는 결코 산업화될 수 없는 문화가 공산품을 찍어내듯 제조되고 일터와 일상 모두가 이윤추구와 가진 자의 착취 대상이 되며 사회 전체가 무비판적으로 마비되는 현상을 개탄하기 위함이었다.
2025년 엑스포는 오사카에서 열린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잇는 일본의 대형 국제 행사다. 비슷한 일이 60년 전에도 있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1970년 오사카 엑스포가 그것이다. 도쿄 올림픽은 전범국 일본의 재기를 세계에 알린 선전 무대였다. 6년 뒤 오사카 엑스포는 국내를 겨냥했다. 문화연구자 요시미 슌야는 오사카 엑스포에 대해 “전쟁의 승리가 시가행진을 통해 자기 확인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득배증’이나 ‘고도성장’’의 달성도 어떤 형태로든 국가적 의례를 통해 자기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요시미 슌야 저,
사유재산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노동을 통한 부의 축적은 개인에게 귀속된다. 사유재산이 처음부터 당연하지는 않았다. 초기 자본주의는 종교와 신분제에 맞선 혁명적 힘이었다. 신분 세습된 부는 노동의 산물이 아니기에 부정되었고 교회가 약속한 내세의 평화는 부가 제공하는 세속적 편의로 재조정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분업에 기초한 자유로운 개인의 이윤 추구가 사회 전체의 부를 증진시킨다고 보았다. 자본주의는 신분으로부터 해방된, 종교적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을 요청했다. 이로부터 사적인 것의 출현이 함께했다. 사유재산, 사생활,
2023년 1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의 숫자는 150만 명인데, 이 중 56만 명이 한국인이다(여행신문 (2월16일)). 2022년 말 일본 여행사 HIS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연말연시 가장 가고픈 해외여행 도시로 서울을 꼽았다(부산은 4위다.) (서울경제 (2022년 11월29일)). 2022년 도쿄 신오쿠보 일대 한국인이 운영하는 점포수는 634곳으로 2017년에 비해 60%가 증가했다(연합뉴스
무거운 잿빛 하늘 아래 눈발이 휘날리는 허허벌판 위를 남루한 차림새의 모자(母子)가 바삐 걷고 있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이곳에서 가난한 이들은 삶의 궁핍함과 가진 자들의 폭력 탓에 생존 자체가 위태롭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산업재해로 유명을 달리했다. 국경을 건너 이주하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희망인데, 브로커들의 농간과 높은 교통비 탓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 때, 재미 삼아 빈자를 도륙하는 부자가 난입해 추격전이 펼쳐지고 어머니 또한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다. 복수를 다짐한 주인공은 우연히 만난 조력자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살
동네 미장원 사장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평소와 달리 말이 많았다. 새 건물주가 가게를 비워 달라 해서 앞날이 막막하다는 하소연이다. 서울시 등에 알아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 바뀐 건물주는 꽤 유명한 예능 PD였다. 다 쓰러져가는 건물일지라도 용산 대로변에 인접한지라 족히 수 십 억 원짜리 건물이다. 한국 대중문화에 돈이 넘쳐나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그의 이름을 들을 줄은 몰랐다. 연예인에 이어 PD까지, 대중문화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장에서 그들을 마주하는 경험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한국 대중문화산업
진행되던 서사가 끊기며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고 출연자는 진솔하게 자기 속내를 이야기한다. 리얼리티 예능에서 자주 보는 ‘독백의 방’(staged confession)이라는 연출 기교다. 잠재적 연애 파트너에 대한 호감이든, 우승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에 대한 견제든, 내 맘을 몰라주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이든, 카메라가 켜지고 ‘독백의 방’에 들어서면 출연자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솔직해지며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본다. 마치 지금 하는 이야기가 카메라 뒤에 있을 연출자와 자신만이 아는 비밀로 남을 것이고, 그로인해 연출자는 자기를 지지하
최근 읽은 두 편의 논문은 경희대 이기형 교수의 (2010)와 숙명여대 박사과정 임소현이 석사학위 논문을 정리하여 지도교수 양승찬과 함께 쓴 (2022)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 논문 모두 ‘저널리스트에게 현장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살폈는데, 사뭇 다른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이기형의 분석대상은 의 심층탐사보도 “노동OTL” 연작 기사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
법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그의 저서 에서 증인을 개념화하는 라틴어의 계보를 짚고 그 여진을 오늘의 영단어에 대응시키며 진실의 다층성을 살핀다. 그중 첫째는 증언(testimony)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testis’로, 이는 경합하는 당사자들 간의 재판이나 소송에서 제 3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둘째는 ‘superstes’로 이는 생존자(surviver)로 승계되는데, 어떤 일을 끝까지 경험해 그 일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작가(author)에 흔적을 남긴 ‘auctor’로,
미국의 ’부동산 세금‘(estate tax)은 200만 달러 이상의 상속자에게 부과되었다. 아들 부시 행정부(2001~2009년)는 이를 ‘사망세’(death tax)로 명명해 부정적 낙인을 찍고 대중을 현혹시켜 부자 감세를 관철시켰다. 석유기업, 자동차 회사 등의 책임 주체가 연상되는 ‘지구 온난화’는 자연의 변덕처럼 느껴지는 ‘기후 변화’로 대체되었다. 영화 (애덤 메케이 감독, 2018)는 홍보 전문가 프랭크 런츠가 이 작업들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지목하는데, 개인적으로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2008년
몇 년 전, 한국의 ‘먹방’이 화제가 되면서 몇몇 해외 언론은 푸드 포르노를 소환하였다. BBC의 (2015)은 수 천 명의 시청자 앞에서 단지 먹는 것만으로 돈을 버는 한국의 인터넷 방송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는 일종의 “관음증 혹은 푸드 포르노”인지 묻는다. CNN의
지루하고 재미없고 난해하다. 그럼에도 계속 공부하는 이유는 드물게 찾아오는 발견의 효용 때문이다. 찰나적이나마, 공부 덕에 막힌 말문이 트이고 흐린 시야가 분명해진다. 예컨대 권력 이론가 미셸 푸코의 ‘죽게 내버려두기’를 접했을 때가 그랬다. 그의 다음 말을 곱씹어보자. “주권은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뒀습니다. 그리고 이제 반대로, 제가 조절이라고 부르는 권력이,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으로 이뤄진 권력이 나타났습니다.” (미셸 푸코, )상상의 날개가 펼쳐진다. 오늘날 새로운 권력이 우세종으로 등장했
용산에서 40년을 살고 있다. 1919년 일본인을 위해 만든 삼판소학교가 전신인 삼광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삼판(三阪)은 일제 강점기 시절 후암동의 지명이다. 오사카(大阪)처럼 일본인은 이름에 동네의 외형을 넣길 좋아했다. 황석영의 소설 (2010)은 남산 아래 부자가 많았다고 했다. 일제 시기에는 용산역과 조선총독부 근처라서, 해방 후에는 미군기지에 인접해서 친일과 친미를 넘나든 이들이 용산에 부촌을 만들었다. 하지만 내 유년기에 부자 친구는 없다. 남산 줄기가 소멸해 평지와 만나던 삼광국민학교에는 동자동, 갈월동, 남영동
언론학계를 중심으로 대중문화를 공부하는 이들이 모여 논문을 발표하고 친교를 다지는 여름 문화연구캠프가 열린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행사 안내문에 따르면 캠프는 다층적 의미를 갖는다. “‘평원(campus)’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나온 이 단어는 영어에서는 ‘캠퍼스’와 ‘캠페인’, 독일어에서는 ‘투쟁(kampf)’, 프랑스어에서는 ‘장(場, champ)’, 그리고 ‘샴페인’과 어원을 공유”한다. 문화연구캠프는 대중문화연구자의 사교장, 축제, 논쟁을 꿈꾼다. 한국문화연구학회는 학술지 가을호에 문화연구캠프 20주년 기념
가족의 위기다. 당장 TV를 켜 보아도 불안이 감지된다. (MBN), (채널A), (TV조선), (MBC), (KBS), (SBS) 등 가족 이상 징후를 포착한 예능이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에 차고 넘친다. 엇나간 아이를 바로 잡고 해체된 가정을 이어 붙이며 홀로 된 이들의 짝을 찾는다. 사회 통계도 이를 지시한다. 만일 가족이 의 정의대로 “혼인·혈연·입양으로 맺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면, 세 수준 모두에서 한국 가족은 붕괴 직전이
지난 주말,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 선수는 해트트릭으로 실력을 증명하며 세간의 부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시즌 득점왕이 선발 제외되는 굴욕까지 감내했다. 새벽 방송을 보며 골이 터질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는데, 경기 종료 후 흥분이 가시자 조금은 계면쩍었다. 그렇게나 배타적 민족주의와 맹목적 국가주의를 경계했어도 한국 선수의 위풍당당과 경기장 곳곳의 태극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소설가 박완서의 말을 빌리자면, “아아, 나도 바로 토종이었다!”애국심과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으니 어쩔 수 없다
지난 8월 기준 2022년에만 스무 편 이상의 리얼리티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짝짓기 예능' 올해만 25개 쏟아졌다…예능은 왜 사랑에 빠졌나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95142#home 그리 좋아하는 장르가 아닌지라 큰 관심은 없었는데, 대중문화를 공부하는 이로서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장르의 흥망성쇠는 산업적 이해관계와 더불어 사회적 맥락과 함께하는 탓이다. 그러고 보니 진지하게 자본주의 사회의 사랑에 대해 탐구한 학자들이 있다. 8월 29일부터 시작한 EBS의
윤석열 대통령은 제 77주년 광복절 경축식 축사의 서두를 열며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으로서,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다“고 선언하였다. 얼핏 그럴듯하다. 하지만 각 단어들을 곱씹어보면 꽤나 중의적 의미 조합이다. 특히 인용한 두 번째 문장은 세 문장이 합쳐진 복문인 탓에 명징하게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각 문장을 쪼개면 다음과 같다. ①전체주의 국가는 자유와 인권을 무시한다. ②어떤
마침내 ‘쓰레기’가 되어버렸다라는 생각을 한지 오래인데, 중년 남성의 자의식 과잉이나 자기비하를 통한 수동공격성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연하자면 현대성의 이론가 지그문트 바우만이 (정일준 역, 2004/2008)에서 이야기한 바의 의미로 그렇다는 것이다. 바우만은 생산자 사회와 소비자 사회를 구분한다. 생산자 사회가 형식적으로나마 산업예비군, 사회부적응자를 교화시켜 사회로 흡수해 생산에 재활용하려는 사회였다면 소비자 사회는 사람들을 취약성에 노출시켜 급속도로 유행을 창출하고 불확실성을 가속화하며 각자도생으로
할 일 없이 OTT 서비스에 들어가 갈피를 못 잡고 예전에 봤던 영상을 틀고 끄기를 반복하는 일이 잦은데, 그렇게 소환하는 콘텐츠 중 하나가 MBC 드라마 (이창순 연출, 최연지 극본, 1996)이다. 거기에는 마치 1980년대 일본 거품 경제 시대의 현란한 아날로그 아니메를 보는듯한 최면효과가 있다.배경으로 등장한 개장 7년차 롯데월드 어드벤쳐는 새것처럼 반짝이고 30대 초반의 황신혜와 막 40대에 들어선 유동근의 매력은 대단하다. 테마파크에서 황신혜와 우연한 만남 이후 집으로 돌아온 유동근은 넓은 욕실의 월풀 욕조에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