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댓글창이 혐오표현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은 새롭지 않다. 일부 언론사들이 자율적인 댓글 차단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혐오표현 대응과 피해자 지원, 나아가 ‘댓글 정화’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1월11일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한 '보도댓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나' 포럼이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언론인권센터 유튜브
▲11월11일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한 '보도댓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나' 포럼이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언론인권센터 유튜브

성폭력, 아동학대 범죄 보도의 댓글창은 순기능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조아라 언론인권센터 활동가는 11일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한 ‘보도댓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나’ 포럼에서 최근 사건들에 대한 댓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성폭력·아동학대 보도 댓글 공통 문제, ‘혐오’ ‘정파성’

먼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의 경우 지난 7월28일~9월12일 포털(네이버) 기사 댓글 8127건을 분석했다. 그러자 가해자의 가해 사실을 옹호·축소하거나 가해자를 응원하는 내용이 전체 댓글의 과반(56.9%, 4632건)이었다. 피해자를 직·간접적으로 공격하는 내용이 18.1%(1474건), 이 사건을 ‘정치공작 일환’ 등으로 본 댓글도 전체의 약 30%(2444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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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지사성폭력에 대한 보도 댓글 연관어. 자료=언론인권센터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 보도의 댓글 3만1583건(7월16일~7월27일) 중에서는 성폭력 사건의 구조적 문제를 흐리는 내용이 46.4%(1만4662건)로 절반에 가깝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이번 사건에 있어 “정치인·대통령·법원 모두 공범”이라고 발언한 데 대한 반응이 상당수였다. 이어 가해자(가족) 악마화, 인신공격 14.7%(4666건), 지역·학교·성별 등에 대한 혐오·차별 표현 8.4%(2663건), 피해자 직·간접적 공격 및 2차가해 2.6%(832건) 순이다.

비속 살해 사건인 ‘완도 일가족 실종·사망 사건’의 경우 전체 댓글 9341건(6월24일~7월13일)의 19.4%(1820건) 수준인 지역 차별·혐오 댓글이 두드러졌다. 사건 관련 지역에서의 과거 범죄 등을 끄집어내 해당 지역을 우범 지역처럼 묘사하는 식이다. 사건정황에 대한 선정적·자극적 추측(5.1%)이나 원색적 비난(2.6%)과 함께 사건과 관련 없는 정치인·정당에 대한 소모적 비난(3.7%) 댓글 비중이 더 높은 특징도 있다.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에 대한 댓글 유형 중 정치인 및 정당에 대한 소모적인 비난 댓글 예시. 자료=언론인권센터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에 대한 댓글 유형 중 정치인 및 정당에 대한 소모적인 비난 댓글 예시. 자료=언론인권센터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들은 기사의 내용·제목·형식 등이 댓글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이숙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9~10월 언론사의 현장취재 및 디지털 부서 담당자 7명 대상(8~23년)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 결과를 전했다. 성별로 여성 4명과 남성 3명이며 업무별로는 젠더 담당 2인과 정치·사회·디지털 업무 경험자 2인, 아동학대·기획보도 담당 1인, 이용자 관여업무 1인, 디지털부서 팀장 1인 등이다.

갈등적 이슈에 ‘댓글 폭발’…“언론사가 이용해 댓글 유도”

조사 참여자들은 “공들여 쓴 기사”보다 갈등적 이슈에 댓글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젠더담당 업무를 맡았던 9년차 B기자는 “‘왜 우리를 다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하냐, 여자만 죽냐’ 등 페미니즘을 대항하면서 만들어 낸 주요 논란이 자리를 잡았다. 그게 댓글창에서 반복된다”고 말했다. 아동학대·기획 보도를 했던 12년차 C기자는 “참견할 접점이 많은 영역인 경우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것 같다”며 “그런 걸 언론사들이 이용해 갈등을 부추기거나 댓글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16년차 디지털부 D팀장은 “무난하게 기사(제목)를 달면 악플이 덜 달리는 경향은 있다”고 했다.

이는 기사의 편향성이나 선정성을 줄였을 때 댓글의 문제도 줄어들었다는 경험으로도 이어진다. C기자와, F기자(20년차, 정치 및 사회·디지털콘텐츠)는 소위 ‘젠더데스크’ 운영이 기사의 젠더 편향이나 선정적 표현을 줄이고, 놓치는 부분을 잡아줬다고 봤다. 범죄, 사건사고 기사에 등장하는 피해자나 인물을 인신공격하는 경우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는 평가다.

일부 기자들은 직접 댓글창에 개입을 한 경우도 있다. 댓글에 동의·비동의를 누르거나, 기사의 가장 첫 댓글을 기자가 직접 게시하는 식이다. 이런 경험을 밝힌 기자들은 댓글창 개입이 분위기 변화로 이어졌다면서도, ‘독자와의 건전한 소통이 모든 기사에서 이뤄질 수 없다’고 봤다. 기자들의 업무 과중, 온라인 공간에서의 괴롭힘이 지속되는 만큼 기자들에게 댓글 모니터링이나 독자 소통을 맡기는 건 부정적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11월11일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한 '보도댓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나' 포럼이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11월11일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한 '보도댓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나' 포럼이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날 포럼에 참석한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도 “더 좋은 언론생태계를 위해 기자들이 더 좋은 노동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간혹 언론사에 따라서 신문·디지털 두 가지 버전으로 기사를 쓰고, 댓글도 체크하고, 취재원도 관리하는 등 많은 업무를 하는 기자의 처우는 개선되고 있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댓글 문제를) 선의에 맡기는 것보다는 총체적이고 본질적인 구조적 해법을 도출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기사에 등장한 인물이 쉽게 댓글 공격을 받는 현상이 언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고민할 지점이다. 이 기자는 “길거리에서 시민 반응을 따면 ○세 ○씨라고 표현되는데, 사진이나 세부사항이 기사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인터뷰) 안 한다’ ‘이모씨라고 해 달라’고 한다. 너무나 이해가 되면서도 동시에 언론보도의 익명화를 이끌게 된다”고 전했다.

댓글 피해자 지원 제도, 댓글의 ‘정화’ 방안 논의해야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 국선변호사로서 10여년간 활동해온 이수연 변호사(큰길 공동법률사무소)는 댓글 피해 특성으로 인터넷을 통한 확대 재생산 피해가 심각하고, 가해자가 많고, 가해자 특정·처벌이 어려우며, 피해자 요청에 의한 기사 삭제 등 구제가 어렵다고 꼽았다. ‘불법촬영 범죄’ 유사한 문제들이다. 이 변호사는 민간에서 시작해 중앙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처럼 댓글 피해자를 위한 신고센터가 발전된 제도로 정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의 차단을 넘어 ‘정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김위근 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는 “댓글의 수준은 딱 그만큼의 뉴스 콘텐츠의 수준”이라고 지적한 뒤 “언론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를 간접 체험하게 되는데 댓글의 낮은 품질은 언론 신뢰도를 낮출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게 된다”며 사회적 논의를 통한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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