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해외순방은 출국 전부터 ‘언론 탄압’ 논란에 뒤덮였다. 대통령실이 특정 보도에 대한 일방적 평가를 앞세워 MBC 취재진을 대통령 전용기에 타지 못하게 했고, 대통령은 이것이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 주장했다. 대통령실의 이런 대응은 취재·보도의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국익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불렀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순방 일정 이틀 전 MBC 취재진에게 ‘전용기 탑승 불허’를 통보했다. 불허 사유는 MBC의 보도였다. 9일 오후 9시께 옛 청와대 춘추관장 역할인 김영태 대외협력비서관이 MBC 출입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통보했고, 그 사유는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은 외교, 안보 이슈와 관련하여 취재 편의를 제공해 오던 것으로,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가 반복되어 온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며 “MBC는 자막 조작, 우방국과의 갈등 조장 시도, 대역임을 고지하지 않은 왜곡, 편파 방송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어떠한 시정조치도 하지 않은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튿날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대통령실 문자와 비슷한 입장을 냈다. “대통령이 많은 국민들의 세금을 써가며 이런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며 “외교 안보 이슈에 관해서 취재 편의를 제공해 온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 주시면 되겠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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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0일 서울 용산대통령실에서 기자들 질문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취재 편의’란 표현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MBC의 전용기 탑승 배제가 ‘취재 통제’나 ‘언론 탄압’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10일 “(MBC에) 취재 편의를 일부분 제공하지 않는 것이지, 취재 제한은 전혀 아니라는 말씀을 분명히 드린다”고 말했다.

해외순방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 배제는 취재 제한

그러나 해외순방 취재진에게 전용기 탑승 배제는 그 자체로 상당한 취재 제한이다.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위한 이번 순방은 11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시작돼 인도네시아 발리를 거쳐 15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하루에도 여러 건의 일정이 예정된 데다, 정상간 만남을 비롯한 주요 일정은 변동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9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전용기 탑승 불허’를 통보했다. MBC 배제 항의 차원에서 전용기 탑승을 거부하려던 몇몇 언론사도, 민간항공편을 구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통상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떠나면, 기내에서 대통령 본인이나 관계자들이 간담회를 진행한다. 윤 대통령도 지난 6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해외순방 때 출입기자들과 기내 간담회를 진행했다. 전용기에 누가 어떤 목적으로 탑승했는지도 취재 대상이 된다. 실제 MBC는 나토 순방 당시 민간인인 신아무개씨(이원모 인사비서관 배우자)의 전용기 탑승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공항에서의 출발, 도착 행사 등도 전용기에 탑승해야 취재가 가능하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나토(NATO) 순방 취재를 위해 이동 중인 기내에서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나토(NATO) 순방 취재를 위해 이동 중인 기내에서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근본적으로 특정 보도를 문제 삼은 전용기 탑승 불허는 ‘언론 통제’이자 ‘공적 취재 거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0일 통화에서 “전용기라는 공간은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시작되는 장소이자 기자들의 공적 취재가 시작되는 장소”라며 “전용기 탑승은 단순한 취재편의 제공이 아니라 대통령의 공적 활동을 언론에 개방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전용기는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고 기자들은 동승료를 지불한다. 대통령실이 특정 언론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월권”이라며 “주권자인 시민의 대리인인 정권은 또 다른 시민의 대리인인 언론의 견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의무가 있다. 언론에 대한 전용기 탑승 거부는 시민의 대리인인 언론이 정권을 견제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여권 인사들은 대통령실의 결정을 옹호하기도 한다. 대선 후보까지 나섰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SNS를 통해 “취재의 자유가 있다면 취재 거부의 자유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일상적인 ‘취재 거부의 자유’선상에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취재원으로서 일반적으로는 취재에 응하지 않는 것도 취재원으로서의 권리라 (주장)할 수 있다”면서도 “전용기 탑승을 비롯한 풀(pool·대표취재)단 구성은 취재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인데, 그것은 시혜적으로 주고 싶으면 주거나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에 (취재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하는 건 일반적인 재량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취재단 구성, 취재 기회의 부여에 대한 법적 성격을 오해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11월10일 서울 용산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 질문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11월10일 서울 용산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 질문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언론통제 자체가 결과적으로 국익 더 해칠 수도”

전용기 탑승 허용 여부를 “국익” 문제로 연결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통령실은 MBC 기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자막 조작, 우방국과의 갈등 조장 시도, 대역임을 고지하지 않은 왜곡, 편파 방송”이 문제라고 했다. ‘자막 조작, 우방국과의 갈등 조장 시도’는 지난 9월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당시 비속어 논란을 말한다. ‘대역임을 고지하지 않은 왜곡’은 지난달 MBC ‘PD수첩’이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의혹을 다룬 편에서 재연배우 출연 장면에 ‘재연’ 자막을 붙이지 않았다 뒤늦게 수정한 일이다. 

10일 오후 대통령실 관계자와 출입기자들의 질의응답 시간, 이런 보도들이 ‘국익’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이 잇따랐지만 납득할 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반복된 대통령실 답변 요지는 MBC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보도에 대한 시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같은 사안을 보도한 수많은 매체 중 왜 MBC만 태우지 않느냐는 질문에 “(MBC가) 가장 먼저 기정사실화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당시 비속어 보도는 대통령실의 보도유예(엠바고) 해제를 기점으로 이뤄졌기에 MBC와 타 매체간 보도 시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남재일 교수는 “국익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외국과의 경쟁 관계에서 얻는 국가의 배타적 이익뿐만 아니라 국가 내부의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 개개인의 민주적 삶의 향유 여부도 고려돼야 한다. 이번 순방의 외교적 성과를 긍정적 논조로 쓴다고 국익에 도움이 되고 비판한다고 국익을 해치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외교성과가 나쁘면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국가 내부의 민주주의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언론을 통제하면서 추구하는 외교적 성과보다 언론통제 자체가 결과적으로 국익을 더 해칠 수도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실의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불허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전용기 동승을 거부한 한겨레(왼쪽)와 경향신문의 입장문
▲윤석열 대통령실의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불허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전용기 동승을 거부한 한겨레(왼쪽)와 경향신문의 입장문

국내외를 막론한 언론계에선 이번 사태가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거란 우려가 높다. 10일 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한국사진기자협회·한국여성기자협회·한국영상기자협회·한국PD연합회 등 8개 언론인 단체들은 “윤석열 대통령은 반헌법적 언론탄압 즉각 중단하라”는 공동성명을 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와 원로 언론인 단체인 자유언론실천재단도 윤 대통령을 규탄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관련 시민단체들은 언론계의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몇몇 외신기자들이 트위터를 통해 대통령실을 비판한 가운데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이사회도 “‘왜곡’으로 간주한 보도를 이유로 해당 매체에 제한조치를 내린 것은 내외신 모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대통령실 풀(pool·대표취재)기자단은 이날 특별 총회를 열어 대통령실에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배제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한동안 MBC 취재진이 참석할 수 없는 현장의 영상취재 거부(보이콧) 방안도 논의됐지만 방송사별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MBC 기자들이 결국 민간항공기를 타고 출국한 가운데 경향신문, 한겨레도 대통령실 결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자발적인 ‘전용기 탑승 거부’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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