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라는 대형 재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언론의 역할은 분명하다. 전 국민적 슬픔 속 애도 분위기에서 참혹한 현장 소식을 전달하는데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결국 우리 언론이 할 일은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살피는 것이다.

수사 당국이 책임 소재를 가리고 법적 처벌을 묻는다면 마땅히 우리 언론은 참사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진실에 다가가려고 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을지 다각도로 취재하는 것도 필요하다. ‘왜 이런 참사가 벌어졌는가’라는 물음 앞에선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이라도 용기있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지상파 방송이 특보를 통해 목격자 인터뷰를 내보내는 등 참혹함을 전달하는 것도 응당할 일이다. 동시에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요소가 없는지 현장 기자와 데스크는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언론이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비윤리적인 모습을 반복한다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잘못하고 실수했다면 바로잡는 책임있는 모습도 기대한다. 윤리에 벗어난 보도는 당장 뭇매를 맞지만 잘못을 직시하고 바로잡는 모습은 윤리를 지키려는 노력으로 빛나는 법이다. SNS상 무분별하고 자극적인 내용과도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 10월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 부근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0월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 부근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제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에 대해 ‘후진국형 사고’라는 분석을 내놨는데 그렇다면 이런 유형의 사고에 대해 다른 나라는 어떤 대책을 시행하고 있는지 생생한 사례도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일례로 MBC가 일본 도쿄에서 핼러윈 축제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의 사례를 보도한 것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화면 속 일본 경찰은 지휘차 위에 올라가 인파 상황을 내려다보고 보행자 길을 안내하면서 통제한다. 일본 역시 지난 2001년 불꽃 축제에서 압사사고가 발생하자 세운 대책이라고 한다. 우리도 방송 차량이 질서 유지 목적으로 집회 참가자들을 통제하고 있는데 왜 이런 시스템이 수십만 인파가 몰린 축제엔 적용할 수 없었는지 의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단편적인 장면의 참혹함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목격자의 기억과 사고 당시 관련 자료를 취합해 이태원 참사를 재구성하는 것도 언론의 몫이다. 그럴려면 주변 현장을 세심히 관찰하고 사고 주변 심층 인터뷰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데스크는 취재 기자에게 사고 현장을 충분히 관찰하고 검증하는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사고 발생 전조부터 사고 당시 상황, 그리고 사후 대책을 포함해 이번 사고의 총체적인 의미를 되짚는 기록자가 돼야 함은 물론 제2의 이태원 참사를 막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쌍둥이빌딩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한 ‘102분’이라는 책은 수천 쪽에 달하는 구술 기록 당국의 무전 필사본, 그리고 구조대원과 생존자와 인터뷰를 재구성하면서 사건의 이면을 보여준 바 있다. 이태원 참사 역시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

▲ 10월30일 서울 용산구 핼러윈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화가 놓여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10월30일 서울 용산구 핼러윈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화가 놓여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사고 현장에서 나온 단편적 사실에 매몰되고 특히 사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면 구조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핼로윈 축제에서 주최 측이 없다는 이유로 안전조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인용 보도할 게 아니라 과연 그런가라고 되묻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사고 당시 모습은 돌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보도하고 팩트였다고 항변한다면 선정적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될 것이다. 기자는 의미를 쫓아야 한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기자라는 직업은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실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배열해놓은 것은 이야기도 아니고 뉴스 기사도 아니다”(뉴스 스토리)라고 했다. 언론은 과연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 앞에서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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