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에 다양한 보도가 쏟아졌다. 굵직한 세계 현대사와 함께했던 즉위 70년 동안 일을 정리하고 특별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의 소탈한 성격까지도 뉴스가 됐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그의 장례식 모습도 물론 국내외 가릴 것 없이 관심의 대상이다.

추모 분위기를 전하는 일반적인 보도에서 벗어나 여왕 서거를 계기로 군주제를 따져보는 뉴스도 빛을 발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존재자체만으로도 군주제를 유지하는 동력이 됐지만 그의 사후 군주제 폐지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외신 보도 인용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마냥 추모 분위기만을 전달하는 내용보다는 한발 나아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왕실의 입지가 크게 줄어드는 문제를 조명하면서 여왕 서거의 의미를 분석하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 9월13일 오전 주한영국대사관에 마련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소. 주한영국대사관은 16일까지 조문객을 받았다. ⓒ 연합뉴스
▲ 9월13일 오전 주한영국대사관에 마련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소. 주한영국대사관은 16일까지 조문객을 받았다. ⓒ 연합뉴스

여왕 서거 문제를 다루는 것은 국제뉴스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도 작용하는데 낙제점 수준의 보도도 나왔다. 특히 지난 14일자 문화일보 보도는 꼴볼견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문화일보는 “英 최고등급 ‘퀸 로열’ 인증받은 삼성, 검정 배너 걸고 여왕 애도”라는 제목의 보도를 내놨다. 보도는 “영국 왕실에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납품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 대한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이런 뉴스를 버젓이 내놓는 것부터 문제다. 국내 특정 기업이 애도를 표한 건 그렇다치자. 그런데 그 기업이 영국 왕실에 가전제품을 납품해 인증을 받은 것을 강조한 것은 기업 홍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해당 보도는 2면에 실렸다.

문화일보는 “영국 왕실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면서 “1995년 윈야드 복합생산단지 준공식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참석해 이건희 당시 회장과 자리를 함께 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쥐어짜내 영국 여왕과 삼성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홍보하려는 노골적인 보도에 헛웃음이 나온다. 문화일보는 같은 날짜 신문 19면에 삼성전자 갤럭시 워치 시리즈를 소개하는 에드버토리얼(기사형 광고)을 실었다.

“‘다주택’ 찰스왕…종부세 아닌 어디서 살지가 고민”이라는 보도는 어떤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산까지 물려받은 찰스왕이 수많은 주거시설 중 어디에서 살지 고민이라는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 보도를 인용한 기사다.

본문엔 종합부동산세 얘기는 전혀 없다. 찰스왕 주거지와 종부세가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목에 ‘종부세’를 살짝 끼어넣고 클릭을 유도하는 보도다. 해당 보도는 영국이 우리나라와 달리 ‘종부세’ 걱정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사실이 아니다. 한 누리꾼은 영국 다주택자의 높은 세율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해당 보도를 ‘저질’이라고 비판했다. 보도한 매체는 무려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다.

‘얌체짓’ 같은 국내 보도는 외신 보도와도 비교된다. 영국BBC는 영국 왕실이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보도를 내놨다. 추모 물결 속에서도 할말은 하는 공영언론의 모습이 이런 것이다.

▲ 찰스 3세.
▲ 찰스 3세.

국제보도에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돼버렸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보도는 내놓지 말아야 한다. 국제적으로 유의미한 일을 따져보는 내용의 외신 보도라도 충실히 번역해 소개하는 편이 낫다.

외국에서 벌어진 흉악 사건 범죄를 유독 많이 소재로 다루고 선정적 이슈를 재현하는데만 골몰하는 특파원도 널려 있다. 차라리 국내에서 번역하고 온라인 기사를 쓰는 게 나을 것이다.

대중이 국제뉴스에 바라는 것은 생생한 현지의 소식이며 국내에 영향을 끼치는 시사점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에 삼성전자니 종부세니 하는 보도는 국제뉴스로 끼어들 틈이 없다. 낯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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