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호 경찰국장의 ‘프락치 의혹’을 둘러싼 TV조선의 보도가 흥미롭다. 이달 초 TV조선은 김 국장 경찰 특채에 관여한 홍승상 전 경감을 단독 인터뷰해 ‘프락치’ 의혹에 불을 붙였지만, 최근 방송에서 “(프락치 주장에) 별다른 근거는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TV조선 측은 “정치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팩트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TV조선 정치부 기자는 지난 28일 방송된 ‘뉴스7’에서 “야당은 (김순호 국장이) 동료를 배신하고 밀고한 대가로 경찰에 특채된 게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며 “별다른 근거는 없다. 김 국장이 종적을 감췄을 때, 인천·부천노동자회(이하 인노회) 경찰 수사가 본격화됐고 이후 대공요원으로 특채가 됐는데, 시기상으로나 정황상으로 그럴 의심이 간다는 의혹 제기 수준”이라고 했다. 이에 앵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는데, 야당이 반대했던 경찰국장 자리에 가다보니 프락치로 몰린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8월28일 TV조선 '뉴스7' 방송화면 갈무리
▲8월28일 TV조선 '뉴스7' 방송화면 갈무리

또한 TV조선은 김순호 경찰국장 프락치 의혹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꺼내 들었다. 이 사건은 유시민 전 이사장·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서울대 학생들이 1984년 9월 민간인을 경찰 프락치로 오해해 감금·폭행했다는 내용이다.

TV조선 기자는 이 사건을 소개하며 “김 국장은 밀정 억측으로 프레임을 씌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유 전 이사장과 윤 의원 등 가해자들은 승승장구했지만 피해자들은 지금까지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김순호 경찰국장 검증에 적극적이었던 TV조선이 한 달도 안 돼 ‘프락치 의혹에 대한 근거는 없다’는 상반된 내용의 보도를 한 것이다. TV조선은 이달 초 김 국장이 특채 후 신임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단독 보도를 했고, 김 국장 특채에 관여한 홍승상 전 경감을 인터뷰했다. 홍 전 경감 인터뷰 기사는 삭제된 상태다.

TV조선 정치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28일자 보도는 김순호 국장이 프락치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홍승상 전 경감 인터뷰 기사에도) 김 국장이 프락치를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자기가 몸 담았던 조직에 대한 노하우를 잘 알기 때문에 수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취지로 특채를 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인터뷰 기사는 추가 취재가 필요하다고 해서 삭제된 상태”라며 “삭제된 걸 가지고 (TV조선 논조가) 충돌한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맞는다. 뭔가 충돌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TV조선 보도본부 고위관계자는 “이 사건을 정치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팩트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TV조선측 설명처럼 김순호 경찰국장이 프락치라는 명확한 근거가 공개된 건 아니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정황은 제시됐다. 한겨레가 입수한 1989년 4월28일 치안본부 수사기록에 따르면 인노회 조직도에 제3지구위원회(부천지구) 회원 명단이 기록돼 있다. 인노회 회원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4월28일) 이전까지 아무도 연행된 적 없는 부천지구만 모든 분회와 소속 회원 명단이 그려져 있다”고 했다. 부천지구 위원장이었던 김 국장은 당시 잠적 중이었다.

또한 홍승상 전 경감은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김순호 국장은 프락치였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김 국장이 인노회 수사에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이는 ‘프락치 의혹’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JTBC·YTN 등 다수 언론이 TV조선 인터뷰를 인용하기도 했다.

김순호 국장은 언론에 인노회 사건 수사가 마무리된 후인 1989년 7월 치안본부를 찾아가 자백했으며, 이후 경찰에 특채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홍승상 전 경감은 김 국장의 경찰 접촉 시점을 “1989년 초”라고 못박았다. 홍 전 경감은 김 국장이 1989년 초 자신을 다짜고짜 찾아왔고, 운동권 관련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홍 전 경감은 “(김 국장이) 운동권에서 이념을 많이 배운 사람이라, 운동권 사건 관련 증거물들이 오면 분석을 시킨 거야. 그래서 그 사람한테 많이 도움을 받았다고. 대표적인 사건이 인노회 사건”이라고 했다.

또한 홍승상 전 경감은 김순호 국장이 신임교육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시험 봐서 들어왔다고 그러면 '특채'가 아니지. 이런 게 바로 특채지”라고 했다. TV조선은 “김 국장을 둘러싼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면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출범한 경찰국의 정당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는 9일 돌연 삭제됐다. TV조선 측은 미디어오늘에 ‘사실확인이 덜 된 부분이 있고, 보강 취재가 필요하다’고 삭제 이유를 밝혔지만, 현재까지 후속 기사는 나오지 않고 있다.

▲TV조선. ⓒ미디어오늘
▲TV조선. ⓒ미디어오늘

한편 김순호 국장은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프락치 의혹’에 대해 “결코 아니다. 주체사상에 대한 염증과 두려움 때문에 전향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김 국장은 홍승상 전 경감 인터뷰에 대해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는 23일 ‘프락치 의혹을 밝혀달라’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상 규명을 요청했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9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김 국장 거취에 대해 “성급하게 결정할 일은 아닌 거 같고 다양하게 의견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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