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이 방송통신위원장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KBS 사장에 대한 보수단체의 고발, 감사 청구가 잇따르면서 공영방송 흔들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공영방송 중 첫 타깃이 KBS로 꼽히면서 14년 전 ‘정연주 사태’가 연상된다는 지적이다.

KBS 안팎의 보수성향 단체들은 최근 한 달여간 방통위원장과 KBS 사장 사퇴를 이끌기 위한 법적 행동을 본격화했다. 지난달 20일 KBS·MBC소수노조 등이 KBS 김의철 사장, 남영진 이사장에 대한 국민감사를 청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사회가 김 사장을 임명제청하는 과정에서 서류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했고, 김 사장은 전임 사장 시절 보도본부장으로서 과거 KBS에서 일했던 기자들을 부당해게 채용했다는 이유 등 8개 사항을 이유로 들었다.

일주일 뒤인 27일엔 역시 KBS·MBC 소수노조 등이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한 위원장이 2019년 지상파 사장 간담회에서 “미디어비평 등 저널리즘 기능의 복원”을 강조하고, 2020년 종편 대표 간담회에서 ‘코로나19 가짜뉴스’ 대처를 요구한 것이 일종의 ‘보도지침’이라는 주장이었다.

▲KBS 본사. 사진=KBS
▲KBS 본사. 사진=KBS

이달 4일엔 한상혁 위원장과 김의철 사장을 상대로 한 2차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김 사장이 전임 사장 시절 참여한 KBS진실과미래위원회가 직원들 이메일을 들여다봤고, 한 위원장이 KBS지역방송을 부실관리해 직무유기를 했다는 이유 등이었다.

감사원과 수사기관의 움직임도 감지됐다. 감사원은 이들 단체가 제기한 감사청구에 대해 KBS 및 이사회에 소명서를 제출하라 요구했고, 서울경찰청이 앞서 KBS노동조합이 김 사장을 고발한 건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KBS노동조합은 지난달 30일 ‘감사원 KBS 국민감사 청구 속보’, ‘감사원, 서울경찰청 본격 감사 및 수사 착수’ 제목으로 환영 입장을 냈다. 동시에 감사원이 방통위 정기감사에 지난 감사 대비 많은 인원을 투입했다는 소식이 여러 언론을 통해 일제히 전해졌다.

일련의 절차는 공교롭게도 ‘윤핵관’(윤석열 대통령측 핵심 관계자)로 꼽히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방통위원장 사퇴를 촉구한 시점 이후 가속화했다. 지난달 16일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정치철학이나 국정과제에 동의를 안 하는 분들(방통위원장·국민권익위원장)”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정치 도의상으로 맞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권 압박, 보수단체 고발, 감사·수사…정연주 사태 겹쳐

여권의 퇴진 압박, 보수단체의 감사 청구와 고발, 감사원·수사기관의 움직임이라는 3박자는 2008년 정연주 당시 KBS 사장 해임 수순과 상당 부분 겹친다.

그해 3월 심재철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정연주 KBS 사장이 사퇴 0순위”라며 노골적 압박을 했고,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KBS 내부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리고 그해 5월 전직 KBS 간부가 정연주 사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국세청과 소송 중이던 KBS가 항소심에서 조정을 거쳐 실제 환급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돌려 받아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였다.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보수단체(국민행동본부) 및 뉴라이트 성향 단체들은 부실경영, 인사권 남용, 좌편향 방송 등을 이유로 정 사장에 대한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곧바로 KBS 특별감사에 착수했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정 사장 해임을 권고했다.

지금과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를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인 최시중 위원장이 이끌고 있었다는 점이다. 임명 전부터 언론·시민사회·학계 우려를 샀던 최 위원장은 정 사장 퇴진 압박이 거세지던 5월 김금수 당시 KBS 이사장을 만나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이 KBS의 방송 때문이고, 자리를 지키는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을 부른 인물이다.

이후 8월 KBS 여권 이사들은 정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의결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KBS 구성원, 시민들을 막기 위해 경찰 병력을 요청했다. 당시 노동조합의 정연주 사장 사퇴 요구에 반발한 다수의 PD, 기자 등이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을 결성해 이를 막아섰지만, 해임제청안이 통과됐다. 2008년 8월8일 공영방송 암흑기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이른바 ‘8.8사태’, 이튿날 이명박 대통령은 정 사장을 해임했다.

▲지난 2008년 8월8일 KBS본관 로비1층의 민주광장에 자리잡고 앉아 이사회가 열리는 3층으로의 투입명령을 기다리는 사복경찰들.
▲지난 2008년 8월8일 KBS본관 로비1층의 민주광장에 자리잡고 앉아 이사회가 열리는 3층으로의 투입명령을 기다리는 사복경찰들.

당시 해임은 이후 법정과 과거사 조사기구에서 모두 부당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해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정 전 사장은 1심을 비롯한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이미 해임이 이뤄진 2012년에야 대법원 확정 판결을 얻었다. 정 사장 배임 혐의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는 확정 판결도 같은 해 이뤄졌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2019년 당시 검찰 기소가 무리하게 이뤄졌다고 인정하면서 잘못된 기소로 피해를 입은 정 전 사장에 대한 검찰총장 사과를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고대영 사장 해임 거론에…“구성원 요구와 정권 개입 달라”

방통위원장·KBS사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단체들은 과거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두고 ‘내로남불’이라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정권교체 이후 KBS 사장이 해임됐고, 새로운 사장을 앉혔다는 것이다. 언론노조 등 7개 언론·시민단체가 국민의힘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연 5일, KBS노동조합은 강규형 전 KBS 이사를 해임했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언론장악 문건이나 복기하고 성찰해서 반성하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고 반박했다.

실제 강규형 전 이사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해임됐지만, 이후 해임무효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감사원에서 적발한 법인카드 유용의 문제는 있었지만, 해임까지 이를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이후 ‘여대야소’라는 KBS 이사회 재편이 이뤄지면서 고대영 사장 해임이 이뤄진 것 또한 사실이다. 다만 이 사례를 들어 고 전 사장과 정 전 사장 사례를 동일시 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고대영 전 사장의 경우 해임이 추진되기 전까지 방송 독립성·자율성 침해에 대한 KBS 구성원의 거센 반발이 장기화되고 있었다. 2017년 8월 KBS 기자협회가 제작거부에 돌입했고, 9월 언론노조 KBS본부와 KBS노동조합 모두 파업에 돌입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개입 사례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정치권 개입 없는 사장 선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던 시절이다. 고 사장이 해임된 뒤 KBS 이사회는 국민참여단(이후 시민참여단)의 평가를 거친 사장 후보를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했다.

▲7월4일 김의철 KBS 사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감사청구를 앞두고 기자회견 중인 보수성향 단체들. 사진=KBS노동조합
▲7월4일 김의철 KBS 사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감사청구를 앞두고 기자회견 중인 보수성향 단체들. 사진=KBS노동조합

KBS 이사를 지낸 김서중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성공회대 교수)는 “외형상의 동형 구조라고 해서 본질이 같은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 이사는 “전 정권이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 개입 방지를) 제도화하지 않은 점은 분명히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면서도 “(2008년) 당시 KBS 구성원 중 기자, PD 등 다수는 정연주 사장이 바뀌길 원치 않았다. 방송사 구성원 다수가 원하지 않는 걸 정권이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 변수를 빼고 동일하게 보는 것은, 비논리적 사고”라는 것이다.

김 이사는 현 상황과 관련, “가장 우려스러운 건 이사들의 교체나 변심”이라며 “방통위원장이 바뀌더라도 이사들이 정당한 권리침해를 거부하고, 이사들이 변심을 하지 않는다면 부당한 사장 교체라든가 정권이 원하는 사장을 임명하는 일이 발생하진 않을 거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현 정치권이 공영방송이나 언론사 대표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유리한가라는 것을 냉정하게 판단했으면 좋겠다. 이전 정권에서도 실효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유리했던 건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과거의 게임을 그대로 같은 방식으로 하자는 건 말 그대로 역사의 퇴행”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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