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방송인 송해와 그가 진행해온 ‘전국노래자랑’은 미디어학계의 연구 대상이기도 했다. 연구 인터뷰 과정에서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의 정체성에 관해 ‘흥취’라는 말을 강조했다. 논문은 ‘전국노래자랑’이 ‘지역성’은 물론 ‘민족’을 지향하고,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011년 ‘일요일의 시보, ‘전국노래자랑’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임종수 교수는 문헌, 제작진 및 사회자 인터뷰, 심사 및 녹화현장 참여관찰 등을 통해 ‘전국노래자랑’의 의미를 짚었다. 

▲ '전국노래자랑' 홈페이지 갈무리
▲ '전국노래자랑' 홈페이지 갈무리

논문은 “무한경쟁 시대에 가장 먼저 사라질 것처럼 보이는 이 프로그램이 오히려 가장 장수한 콘텐츠로 살아남는 것은 왜인가?”라며 ‘전국노래자랑’을 이웃과 노래하고 춤추며 때때로 해학 넘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아마추어적인 놀이축제를 통해 지역과 민족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장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노래나 춤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 그 자체가 일차적으로 주목하는 것”이라고 했다.

송해가 정의한 ‘전국노래자랑’은 ‘흥취’

연구에는 송해의 생전 인터뷰가 등장한다. 논문은 “송해의 진술은 가장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긴 세월 동안 전국노래자랑과 송해는 둘 사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라며 “특히 송해의 엔터테인먼트 전략이 전국노래자랑의 진화, 미학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논문은 ‘전국노래자랑’이 당대의 생활인들의 ‘흥취’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흥취’는 연구 인터뷰 과정에서 송해가 여러차례 강조한 표현이다.

임종수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송해 선생님이 정의하는 ‘전국노래자랑’은 무엇인지 물었을 때 ‘흥취’라고 답하셨다”며 “각각의 형식화되지 않은 노래와 춤,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멋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춤의 형태로, 노래의 형태로, 촌극 형태로 나타내는 게 흥취가 아닌가 생각한다. 선생님은 흥취를 끄집어내는 게 자기 역할이라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방송에서 업체명을 가리는 게 원칙이지만, 전국노래자랑은 참가자의 가게 이름, 회사 이름 등을 그대로 자막으로 썼다. 이 역시 흥취를 보여준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송해는 ‘흥’을 끌어내기 위한 역할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람풀’이라는 게 있어요. 시골에 가면 농토에 가만히 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따라서 흔들리는 풀이 있다고. 이런 게 흥이야. 이제 그런 거를 내가 터득을 안 하면 못하죠. 흔들리는 것을 모른 다면 내가 답변을 못하니까. 그래서 나로서는 점점 어려워지는 게 내 진행입니다. 점점 어려워져요. 그걸 내가 느끼니까. 이제 급변하는 세대들이 풍기는 감성이라든가 또 얻고자 하는 것을 내가 파악 못하면 안 되잖아요.”

▲ '전국노래자랑' 갈무리
▲ '전국노래자랑' 갈무리

논문은 “‘전국노래자랑’ 고유의 콘텐츠 양식은 출연자와 지역의 고유한 특성부터 기인하는 독특한 스토리텔링 요소를 송해와의 주고받음 과정에서 구체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내가 사회를 능숙하게 본다, 이런 게 아니고 무대 나오는 사람의 흐름을 맞춰 주다보니까 나도 변했던 거야. 우스개 시장판에 가면 생선 파는 사람도 재밌다, 그러면 또 출연시키고, 이러다 보니까 연출 방향도 넓어지고, 출연자도 넓어지고, 지역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지고.” - 송해

연구는 송해의 오프닝 멘트에도 주목했다. 지역 주민과 시청자를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외 근로자, 원양어선 선원, 해외 자원봉사자, 국군장병 등을 호명한다. 논문은 “대상자들은 ‘전국노래자랑의 적극적인 시청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타지에서 외롭고 힘들게 보내는 자신들을 응원해달라는 부탁을 수용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연구에서 송해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며 말했다. “내가 원양선원 이야길 많이 하죠? 괜히 하는 게 아니고 그 선장이 벌써 한 20년 (전) 그때 일부러 찾아왔었어요. (중략) 선원들을 대표해서 배 타고 바다에 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어디 가 있는 사람들이 외롭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 얘기 한 번만 해주면 (좋겠다고 해서) 그걸 해줬더니 그 감사패 가지고 왔어요.”

‘딩동댕’ 아닌 ‘땡’이 핵심 콘텐츠인 이유

논문은 전국노래자랑이 말하는 전국은 지역성, 축제성, 민족성 등의 개념으로 진화해왔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만 해도 주로 지역성을 강조한 데 반해, 1990년대엔 해외동포 혹은 해외 근로자,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는 북한동포, 지금은 모두를 아우르는 한민족을 브랜드화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 11월 첫 방영 당시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초기부터 심사를 맡은 임종수 작곡가의 전언에 따르면 고 윤재경 PD는 ‘새로 부임한 이원홍 사장이 한국일보 동경 특파원으로 있을 때 ‘노도지마’를 참 감명 깊게 봤는데, 그런 걸 한번 만들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임종수 작곡가는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오락프로가 시청자들에게도 좋았겠지만, 위쪽에서도 당연히 좋아하지 않았겠어?”라고 덧붙였다.

▲ '전국노래자랑' 갈무리
▲ '전국노래자랑' 갈무리

초기에는 ‘대중동원’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이후 ‘대중참여’ 프로그램으로 바뀐다. 프로그램 설명만 보더라도 1980년대초엔 ‘국민화합’을 강조한 반면 1991년에는 ‘지역주민들의 흥겨운 잔치와 재미 추구’를 강조한다. 

‘전국노래자랑’은 일본의 유사 프로그램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겠지만 내용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다. 논문은 “일본의 노래자랑은 실내공연을 원칙으로 하고 가끔씩 민속의상을 입고 지역의 유적지나 특산품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전국노래자랑처럼 무대에 직접 가져오거나 진행자, 연주자에게 먹이는 경우는 없다. 또한 출연자는 율동을 하지만 이에 맞춰 방청객이 춤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경연 프로그램으로 양식화된 일본과 달리 지역축제라는 오락성과 지역성을 강하게 띤, 이른바 지역의 난장 양식으로 정착했다”고 했다. 

전국노래자랑은 ‘아마추어리즘’ 측면에서도 다른 가요 프로그램과 차이가 있다. 논문은 아마추어리즘의 개념을 “스스로 아마추어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즐기고 느끼는 문화”라고 정의한다. 이는 당대 사람들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반영하는 요소다. 

논문은 “노래 잘하는 사람을 무대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잘 노는 사람’을 무대에 세웠다. 그것은 ‘전국노래자랑’이 30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이라며 “송해나 임종수는 모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지역에서 한정되어 있고, 그렇게 되면 5년 혹은 길어도 10년이면 노래자랑의 자원은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성격은 편집과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양동일 PD는 ‘전국노래자랑’을 ‘컷 구상’을 하지 않는 유일한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쇼프로그램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풀샷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노래를 부르는 사람 외에 송해의 몸짓, 악극단의 연주모습, 대기자 모습, 관객의 반응 등이 화면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참여자가 아마추어인 것만큼이나 미장센과 컷도 아마추어적”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양동일 PD는 잘 차려진 식당음식이 아니라 엄마가 준비한 가정음식과 같다고 빗댔다.

논문은 전국노래자랑의 통속적인 모습도 조명한다. “경연방식이지만 ‘땡’을 받아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 “경연대회에서 탈락을 웃음의 요소로 승화시킨 것은 ‘전국노래자랑’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딩동댕’ 그 이상으로 ‘땡’은 ‘전국노래자랑’의 핵심 콘텐츠인 것이다. 따라서 ‘전국노래자랑’이 겨냥하는 것은 노래실력의 선후이기보다 통속적인 웃음과 해학이라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