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온 전직 KBS전주방송총국 방송작가가 복직을 앞두게 됐다. KBS가 행정소송을 포기하고 노동위 판정을 수용하기로 했다. ‘방송작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맞다’는 판정이 확정된 최초의 사례다.

KBS는 현재 A작가와 복직 관련한 사항들을 논의하고 있다. KBS 본사 법무팀이 A작가에게 소송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한 건 지난달 25일, 중앙노동위 재심 판정에 불복할 수 있는 기한(6월2일)을 약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측이 재심판정서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안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판정이 확정된다.

이로써 1년 가까이 이어진 A작가와 KBS간 법적 다툼은 일단락됐다. A작가는 지난해 7월 KBS전주총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계약만료를 통보받아 부당해고된 뒤, 그해 9월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면서 피해사실을 증명해왔다.

▲지난해 12월 KBS전주방송총국 앞에서 A작가 복직을 촉구하면서 진행된 촛불집회. 사진=방송작가유니온
▲지난해 12월 KBS전주방송총국 앞에서 A작가 복직을 촉구하면서 진행된 촛불집회. 사진=방송작가유니온

A작가에 대한 노동위 판정들은 방송사들이 방송작가를 ‘쉽게 쓰고 버리는’ 관행이 불법이라는 근거로 쌓여왔다. 지난해 12월9일 전북지방노동위원회는 A작가가 법적 근로자이자 부당해고 피해자라면서 그 이유를 70여쪽의 판정문에 담았다.

‘방송작가는 법적 근로자, 계약은 형식’ 인정된 첫 사례

A작가의 주 업무는 이렇게 요약된다. 2015년부터 KBS전주총국 보도국에서 라디오 ‘전북은 지금’, 뉴미디어팀 콘텐츠 기획부서, TV ‘생방송 심층토론’ 등 업무를 수행했다. 보도국장·담당PD 지시에 따라 오전 9~10시 출근, 저녁 6~7시에 퇴근했고, 원고 집필 외의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그러다 2021년 6월 KBS전주 사측으로부터 ‘계약연장 불가’를 통보 받았고, 그해 7월 일자리를 잃었다.

지노위는 판정문에서 A작가와 사측이 형식적인 프리랜서 작가 집필 계약을 체결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 감독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관계”라 봤다. KBS가 우월적 지위에서 추진하는 계약을 A작가는 거부하기 어렵고, 출근 시간·장소가 고정되지 않았다고 근로자성을 부인할 수 없으며, 프로그램 개편이 계약종료 즉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진=방송작가유니온
▲사진=방송작가유니온

중앙노동위원회도 A작가 손을 들었다. 4월12일 KBS 재심을 기각한 중노위는 판정문에서 A작가가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정도의 책임 있는 사유가 있거나, 자발적으로 이직을 하거나, 맡은 프로그램이 폐지되지 않는 한 계속 일할 수 있는 ‘근로자’라고 밝혔다. 방송작가 집필 계약 조항을 봐도 A작가가 작가로서 의무를 위반했거나, 계약 해제·해지에 해당하는 사유가 없다고 봤다.

두 판정은 모두 ‘프리랜서 방송작가’란 방송사가 강요해온 신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노동위에 따르면 시사·보도프로그램 등의 구성작가 업무는 정규직 종사자들과 분리될 수 없다. 사무실에 자리가 고정돼있지 않다고 해서 방송사 직원이 아니라 볼 수 없고, 법령이나 회사 방침에 따라 작성한 계약이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A작가 사건을 맡아온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8일 통화에서 “(방송작가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맞다는 확정 판정이 나온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KBS의 행정소송 포기 배경에는 작가가 사용자에게 종속된 것이 너무 강력했기에 소송을 가더라도 결과를 바꾸기 어려울 거란 판단이 작용했다고 본다”고 의미를 짚었다. 이어 “이렇게 종속돼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없는 정도인데, 이번 사례가 방송 제작 현장의 프리랜서 분들이 지난한 법률 다툼을 벌이지 않더라도 당연히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노동자로 인정받는 출발이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사진=KBS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사진=KBS

염정열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지부장도 이날 “행정소송을 하지 않은 부분은 KBS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여성·시민단체, 지역사회에서 나서서 관심을 가져준 것들이 행정소송을 포기하게끔 한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방송작가→행정직’ 선례에 우려…구체적 답변 피한 KBS

다만 A작가가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동위는 ‘근로자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기간에 정상적으로 근로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그런데 이 ‘원직’이 KBS의 방송작가직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KBS전주총국은 A작가를 해고하면서 ‘생방송 심층토론’에 새로운 작가를 배치했다.

실제 KBS는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서 근로자성이 인정된 방송작가들을 새 직군을 만들어 채용했다. 근로자성 인정 규모는 70명이었는데, 2년 이상 근무한 9명만 행정직으로 무기계약직 채용한 것이다. 근무기간이 2년 미만인 31명에 대해서는 2년을 채우는 시점까지 단기계약을 체결했다.

▲KBS전주방송총국 A작가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문 주문 갈무리
▲KBS전주방송총국 A작가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문 주문 갈무리

이런 ‘방침’은 중노위 판정 직후 KBS전주총국 시청자위원회 회의록(4월28일)에도 등장한다. 김종환 KBS전주 보도국장은 “본사에서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근로감독이 있었고 근로감독 결과에 대해서 시정 조치가 있었다”며 “이거에 준해서 진행이 되지 않을까”라고 밝힌 것이다. 김 국장은 “본사의 방침은 현재까지는 원고를 쓰지 않고 자료조사나 취재를 하는 이런 작가들은 더 이상 이런 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방송지원직이라는 직군을 새로 만들어서 프리랜서 계약이 아니고 근로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원고를 쓰는 그리고 창의성을 발휘해서 하는 기존의 작가들은 기존대로 프리랜서 계약을 해서 운영하겠다라는 게 현재까지 본사가 정리한 입장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방송작가들이 근로자성을 인정 받고도 제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나쁜 선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염정열 지부장은 “원래 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최선이나 차선이 아니고 차악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소송까지 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면) 아쉬움이 큰 사례가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우려를 전했다.

KBS는 8일 판정 이행 계획을 묻는 질문에 “복직시기 등 판정 이행의 구체적 방법에 관하여 신청인과 협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어떤 점을 고려해 판정을 수용하기로 했는지, A작가가 KBS전주총국 방송작가로 복직하게 되는지, 원직복직 관련해 검토 중인 사항들이 무엇인지, 판정 이행에 있어서 기본 원칙은 무엇인지, 아울러 구체적 사항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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