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노동위원회는 KBS전주총국 ‘생방송 심층토론’에서 일한 A 방송작가를 ‘기간을 정하지 않은 노동자’라고 봤다. KBS전주가 A 작가에 요구해 작성한 1년짜리 계약서는 형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노동위원회가 그간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을 판단할 때 계약서에 적힌 기간을 우선시하면서 기간제 노동자로 규정해온 관행을 깼다는 평가다.

중노위가 지난 17일 송달한 판정문을 보면, 중노위는 “A 방송작가는 이 사건 사용자와 사용종속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방송작가 집필 계약서에 기재된 1년의 계약기간은 형식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중노위는 “KBS가 A 작가에게 행한 근로계약 종료는 부당해고”라며 KBS가 내달 16일까지 A 작가를 원직 복직시킬 것을 명령했다. A 작가가 해고 기간에 일했다면 받았을 액수의 임금도 지급하라고 했다.

▲방송작가전북친구들은 KBS전주총국 앞에서 사측의 A 방송작가 노동자성 인정과 복직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방송작가전북친구들
▲방송작가전북친구들은 KBS전주총국 앞에서 사측의 A 방송작가 노동자성 인정과 복직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방송작가전북친구들

“기재된 1년의 계약 기간은 형식에 불과하다”


중노위는 지난달 12일 KBS전주 A 작가의 부당해고를 인정한 전북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을 재심해달라는 KBS의 신청을 기각했다. A 작가는 2015년 KBS전주에 입사해 라디오 작가와 SNS 기획을 거쳐 2019년부터 TV방송 ‘생방송 심층토론’에서 일했다. 사측 요구로 2020년에 처음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를 작성한 A작가는, 지난해 6월 계약서상 기간만료를 앞두고 사측으로부터 계약종료 통보받았다.

중노위는 KBS의 집필계약서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일방적으로 강요한 문서라고 봤다. 중노위는 “사건 당사자가 2020년 8월1일~2021년 7월31일로 하는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를 서면으로 체결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2020년 6월 예술인복지법 시행, 국회 지적과 KBS의 방침 변경에 따라, 서면계약 체결 필요에 따라 KBS가 우월적 지위에서 일방 추진한 것으로 A 작가로선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중노위는 그러면서 “계약서 체결로 그간의 관행이 전면 부인되는 것으로 쌍방 의사가 합치됐다고 확대해 보기 어렵다”며 “1년의 계약 기간은 형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여기서 ‘관행’은 KBS전주가 당초 작가를 방송프로그램별로 모집하면서 구두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기간을 명시하지 않아왔고, A 작가 전임자의 경우 4년 6개월을 근무한 사실을 말한다.

중노위는 그러면서 “A 작가는 더 이상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 있는 사유가 있거나, 자발적으로 이직하거나, ‘생방송 심층토론’ 프로그램이 폐지되지 않는 한 계속 종사할 수 있는 종사자”라고 못 박았다.

▲중앙노동위원회. 사진=김예리 기자
▲중앙노동위원회. 사진=김예리 기자

“업무상 구체적 직접 지휘 사실 달라지지 않아”


KBS는 A 작가의 노동은 “근로자로서의 업무가 아닌 프리랜서로서 창작활동”이며, KBS 측이 방송 제작 전반에서 해온 구체적 지시를 놓고는 “그 만큼 A 작가의 업무 수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요청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는데, 중노위는 이 주장도 기각했다. “당초 ‘생방송 심층토론’ 팀에 국장과 PD, 방송작가뿐이고, 나머지는 스탭들이라, PD가 현장에서 지휘·감독을 하니 내부에선 누군가 붙박이로 상주해야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중노위는 A 작가가 제출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근거로 담당 PD와 보도국장이 패널 섭외를 지시해왔으며, PD가 전달한 가원고를 토대로 수시로 보고와 지시를 거쳐 원고를 작성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A 작가가 수행한 기획, 출연자 섭외와 같은 구성 활동 대부분은 사회 영향이 큰 시사프로그램 특성상 이 사건 근로자가 독자 수행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대부분 담당 PD와 방송국 결정에 따라 출연진 연락, 토론자 배치와 같은 실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방송작가전북친구들은 KBS전주총국 앞에서 사측의 A 방송작가 노동자성 인정과 복직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방송작가전북친구들
▲방송작가전북친구들은 KBS전주총국 앞에서 사측의 A 방송작가 노동자성 인정과 복직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방송작가전북친구들

그러면서 “A 작가가 주장하는 부가업무를 제외하더라도, KBS의 업무상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휘와 감독에 따라 심층토론 방송작가 본연의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A 작가를 대리한 김유경 돌꽃 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중노위는 A 작가가 정규직 노동자로 들어와 일해온 것으로 봤다. 계약서를 실질로 받아들여 기간제 노동자로 본 뒤 기간제법에 따른 갱신기대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근로 실질을 들여다본 것”이라며 ““KBS가 불복해 행정소송을 한다고 하더라도 판정을 이행해야 하는데, 중노위에 따르면 당연히 정규직 복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11조를 보면 KBS는 구제명령을 서면 통지받은 날로부터 30일인 내달 16일까지 A 작가를 복직시켜야 한다. KBS가 이를 따르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KBS는 서면 통지일로부터 15일 이내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재심판정은 확정된다.

KBS 홍보 관계자는 판정을 수용하는지와 A 작가 복직 처리 계획을 묻는 질문에 “판정문을 검토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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