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미디어 정책의 윤곽이 드러났다. 산업 중심의 미디어 정책 과제를 제시한 데 이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부처에서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여당 정책은 규제완화에만 방점이 찍혀 있고 ‘견제장치’가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10조 규제 완화’ 견제장치가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상파 소유규제 완화’를 발표한 데 이어 정부가 관련 규제완화 입법을 연내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디지털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상파방송사업자 및 방송광고판매대행사업자에 대한 대기업 소유기준(10조 원) 완화 등 소유겸영 규제 개선’ 연내 추진을 담은 문건을 작성했다. 

방송 소유겸영 규제 개선은 방송사들의 ‘숙원 사업’이다. 현재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대기업은 지상파방송 및 미디어렙의 지분 10%, 종편의 경우 30% 이상 소유할 수 없다. 지상파 방송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방송협회는 여러차례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종편 역시 대선 국면에서 소유기준 등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 서울 목동 SBS사옥. ⓒ연합뉴스
▲ 서울 목동 SBS사옥. ⓒ연합뉴스

여권은 SBS의 ‘시급함’을 강조하며 지렛대로 삼는 모양새다. 지난달 SBS 최대주주 태영이 자산총액 10조 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분류되면서 방송법 위반 상황이 됐다. 4월27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추천 김효재 상임위원은 “이대로라면 SBS 미디어렙의 경우 최대주주가 2대 주주인 일본 광고회사가 된다”며 ‘일본 광고회사 지분’을 언급하며 법 개정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른바 ‘자산총액 10조’ 규제 완화는 논쟁이 팽팽한 사안이었다. 현실적으로 기업의 자산 규모가 나날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총액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요구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대기업의 주요 방송사 지분 확대를 허용할 경우 빚어질 우려가 크기에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그동안 정부에서 ‘신중론’을 보여온 사안인데 정부가 바뀐 이후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미디어 산업에 대한 정책은 확실하게 나와 있지만 미디어 공공성은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며 “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를 시사했으면 공정거래에 대한 정책도 함께 나와야 한다. 시장 자율을 확장시키는 데는 장점이 있고 필요성도 있겠지만, 독과점 등 문제에 대한 안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사업자 요구의 해소보다 5년 동안 토론회만 해 온 규제체제 정비와 미디어 정책의 목표와 세부과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새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발표한 미디어 부문 정책과제에는 이런 내용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실장은 “지상파와 미디어렙에 대한 대기업 소유 기준 완화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이 무엇인지, 다른 부문 사업자에 미칠 영향은 없는지 등은 논의된 바가 없다”며 “민방의 소유 겸영 규제 완화가 사업자 민원 수리가 아니라면 그로 인해 달라질 지상파 방송 서비스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서울 목동 SBS사옥. ⓒ연합뉴스
▲ 서울 목동 SBS사옥. ⓒ연합뉴스

문제의 본질은 ‘10조 원의 적절성’이 아닌 ‘자본’의 ‘미디어 개입’ 우려에 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견제장치 논의를 우선하지 않는 상황에서 규제완화 일변도 정책이 나오는 데 우려가 있다. 언론노조는 △ 매출액 대비 콘텐츠 투자 비율 강제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노사 동수 추천 시청자위원회 설치의 법적 의무화 △노동 감사 및 노동 이사제 도입 의무화 △보도 및 편성 책임자 임면에 대한 구성원 동의 법제화 등 내부 견제 장치를 제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지난해 관련 세미나에서 ‘최대 주주 심사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방송이 대주주의 주된 사업 영역이 아니거나, 방송을 이용해 다른 사업의 지배력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면 적격성 심사를 통해 여러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의 안이다.

‘기승전 산업진흥’에 가려진 ‘정치적 동기’

윤석열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기승전 산업 진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수위는 “미디어산업 자율성, 경쟁력을 강화하고, 투자 활성화 및 규모의 경제실현이 가능하도록 허가승인, 소유겸영 제한, 광고·편성·심의 규제 등 미디어산업 규제 전반을 과감하게 걷어내겠다”고 예고했다.

규제완화 정책 가운데 ‘심의 자율규제 전환’과 ‘방송사 재허가 심사 개편’은 보수 정치권 뿐아니라 언론학계, 시민사회 등에서 요구한 방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정부가 방송을 심의하고,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 심사를 주도해 ‘생사여탈권’을 쥐는 모양새가 과도한 개입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사진. 방통심의위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사진. 방통심의위 제공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자율규제에 관한 정책적 비전이 있다기 보다는 ‘정치적 동기’를 갖고 이 같은 정책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심의 자율규제 전환’과 ‘재허가·재승인 심사 개편’의 최대 수혜자는 종편이기 때문이다. 실제 종편 방송사들이 윤석열 정부에 관련 규제완화를 요구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탄핵 국면 이후 방통위는 종편에 ‘오보·막말·편파방송 관련 법정제재 연 5회 미만 유지’를 재승인 조건에 강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성 등에 대한 학계 등 평가 의무화’ 등 재승인 조건이 강화됐다. ‘방송사 내 노동 문제 개선’ 등 전에 없던 재허가·재승인 조건이 지상파와 종편에 강제된 점도 방송사들에겐 부담이었다.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심의 자율규제 전환과 재허가·재승인 심사 완화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정책들이 종편의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편향적 보도 문제 등을 억제해온 점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자율에 맡긴다는 방향성이 결과적으로 ‘공적 책임’ 감시 회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영방송에만 공공성 집중, ‘언론노동’ 정책 실종

윤석열 정부 정책 방향은 ‘공영방송’에만 공적 책무를 부과하는 점도 특징이다. 정책 과제에 ‘미디어의 공정성·공공성 확립 및 국민의 신뢰 회복’이 있으나 세부적으로 보면 공영방송 위상 정립(지표 개발 및 재허가 반영, ESG 성과를 방송평가에 반영) △ 공영방송 재원 투명성 강화(회계분리 및 전담기구 설치) △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 공적운영 방송 공익성 강화 등 공영방송 및 공적 운영 방송에만 국한하고 있다.

대대적인 ‘광고 규제완화’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규제하지 않은 내용은 전면 허용하는 ‘방송광고 네거티브 규제 전환’을 시사하면서 보다 대대적인 규제완화 가능성이 높다. 

▲ 타이틀 스폰서 예시. 사진=방통위
▲ 타이틀 스폰서 예시. 사진=방통위

일례로 문재인 정부에서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조건에 건강 제품 및 성분을 다룰 경우 방송 3회 의무 고지 등을 강제하는 등 일부 개선 의지를 밝힌 정책이 백지화될 가능성도 있다. 프로그램 이름에 광고주 이름을 명시하는 ‘타이틀 스폰서’는 방송협회 등 방송사들이 요구해왔으나 문재인 정부 방통위가 신중론을 펴며 도입을 미뤄왔는데, 이 역시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산업성과 거리가 먼 정책의 경우 윤석열 정부 정책과제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윤석열 정부는 ‘장애인 방송 편성 비율 7%로 확대’ ‘장애인 방송 품질평가제 도입’ 등을 미디어 정책으로 제시했지만 지난해 이미 문재인 정부 방통위가 공식화한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문재인 정부에선 공동체라디오 활성화, 방송 노동환경 개선 등이 정책 과제에 이어 실제 업무로 이어졌으나 윤석열 정부 정책자료집에는 이 같은 내용을 일절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인 ‘방송작가친구들’은 지난 1월 3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서울노동청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인 ‘방송작가친구들’은 지난 1월 3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서울노동청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특히 방통위가 현재 방송사 재허가·재승인에 관련 책무를 강제해오고, 범부처 차원의 정책을 마련한 미디어 노동 문제의 경우 윤석열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 기조와 상반되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방송사 내 노동 문제가 불거지면 ‘소관이 아니다’라며 회피해온 전례가 있어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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