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목동 SBS사옥.
▲서울 목동 SBS사옥.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27일 SBS 최대주주 태영을 자산총액 10조 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분류했다. 재계 순위 41위. 대기업은 방송법 8조에 따라 지상파방송 지분을 10% 초과해 소유할 수 없다. 태영의 지주회사인 TY홀딩스는 SBS 지분을 36.92% 보유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정위 발표 이후 TY홀딩스에 ‘의결권 제한’을 통보했다. 2년의 유예기간 동안 SBS에는 ①TY홀딩스 지분을 10% 미만으로 낮추거나 ②태영의 자산총액을 10조 이하로 줄이거나 ③대기업 소유지분을 규제하는 방송법을 바꿔버리는 세 가지 길이 놓여있다.

태영은 의결권 제한 상황을 가정해 경영권 방어 준비를 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SBS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은 현재 이사회에서 진행하면 되는데, 지난번 주주총회에서 이사 인원과 관련한 정관을 바꿔 향후 주주총회에서 이사선임 안건을 올릴 수 없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SBS의 또다른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10.57%), VIP자산운용(8.02%), 한국투자신탁운용(7.98%), KB자산운용(5%)이 연합해 30% 이상 지분을 확보, SBS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자 할 경우엔 방통위로부터 최다액출자자 변경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역시 쉬운 과정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TY홀딩스가 최대주주 지위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다른 주주들의 잠재적 위협에 맞서야 하는 수세적 국면인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태영에게 가장 효과적인 돌파구는 방송법 개정이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대기업 기준을 현행 자산총액 10조에서 국내총생산액(GDP)의 0.5% 이상 1.5% 이하로 바꾸는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에 따르면 자산총액 약 29조 이하 기업집단이 지상파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이 법안에 더불어민주당 의원 9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유예기간 동안 법 개정이 끝나면 된다. 

한국방송협회는 “유료방송 시장의 거대기업, 글로벌 OTT 기업들과 대등한 경쟁자로 자리매김하려면 지상파방송사업자도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해야 한다”며 소유규제 완화에 찬성 입장을 냈다. 반면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등 현업 언론단체들은 양정숙 의원안을 가리켜 “미디어를 대기업에 상납할 법 개정”이라며 반대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26일 대통령직인수위는 “자본이 집중돼야 세계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며 대기업의 지상파 지분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그리고 지난 4월27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김효재 상임위원은 “양정숙 의원 법안은 방송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고민을 담고 있고, 방송협회는 이 규제를 풀어달라는 청원에 나섰다. 이대로라면 SBS 미디어렙의 경우 최대주주가 2대 주주인 일본 광고회사가 된다. 질질 끌 문제가 아니다”라며 빠른 법 개정을 주장했다. 안형환 부위원장도 김효재 위원 주장에 동의하며 “방통위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업계에서 SBS와 태영이 바라는대로 규제 완화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3일 “특정 자본을 위한 특혜 요구를 ‘규제 완화’로 포장해 새 정부 국정과제라고 발표하는 대통령직 인수위는 태영 기업집단의 민원창구를 자처하는 것인가”라고 되물은 뒤 “태영 자본을 위한 10조 규제의 대폭 완화가 이뤄진다면 얼마나 많은 재벌들이 미디어 시장에 뛰어들어 난장판을 만들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언론노조는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이어진다면 삼성 뉴스, 현대 뉴스, SK 뉴스, LG 뉴스 등 사회적 감시 대상인 한 줌 재벌 총수들이 쥐락펴락하는 재벌 방송이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미디어로 여론을 교란하는 일이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방통위를 향해 “규제 완화에 대한 침묵과 동조가 아니라, 방송 공공성 수호와 사회적 책임 구현을 위한 원칙과 대책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언론노조는 “적어도 미디어에 대한 자본 규제 완화를 논의하려면 그로 인한 공공성 파괴와 여론 다양성 훼손, 방송 독립성 침해 우려를 해소할 다양한 대책들, 예를 들면 매출액 대비 콘텐츠 투자 비율 강제,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노사 동수 추천 시청자위원회 설치의 법적 의무화, 노동 감사 및 노동 이사제 도입 의무화, 보도 및 편성 책임자 임면에 대한 구성원 동의 법제화 등 내부 견제 장치를 제도화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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