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12일자 서울신문 1면을 빼곡하게 채운 이름이 있었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이었다. 온라인에선 야간 노동자들의 사망 경위를 취재해 인터랙티브 기법을 활용한 보도를 선보였다.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본 ‘당신이 잠든 사이, 달빛노동 리포트’는 파격적 지면 편집이라는 평가와 함께 노동자의 파편화한 ‘조용한 죽음’을 야간노동 산재라는 이슈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불과 2년 전 일. 현재 서울신문에 대한 평가는 이와는 180도 다르다.

▲ 2020년 11월12일 서울신문 1면
▲ 2020년 11월12일 서울신문 1면

지난해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대주주가 됐다. 자본의 매체 인수에 우려가 나왔고, 실제 호반건설 검증 보도가 삭제되는 등 내홍을 겪었다. 서울신문 변화는 보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연말부터 나오기 시작한 호반건설 관련 건설업계 보도, 대주주 동정 보도 등은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닐 정도다.

지난 3월27일자 “‘새 먹거리’ 영토 확장 진격하는 건설업계”라는 제목의 기사는 여러 건설사의 신사업 먹거리를 다루고 있지만, 호반건설을 ‘홍보’하는 내용이 나온다. 3월14일자 “호반써밋 제주, 용두암 해변 ‘바다조망권’ 확보” 기사는 사실상 기사형 광고에 가깝다. 온라인상 기사 작성자란(바이라인)은 비어있다.

최진봉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는 호반건설의 지분 매입 얘기가 나온 2020년 10월19일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현재는 공영적 소유 구조로 자본 권력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만약 자본 권력이 이들을 인수하면 공영성은 무너지고 사기업의 이익집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서울신문의 현재 모습을 적확히 예견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프레스센터에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선거사무실을 내준 일도 ‘임대사업의 일환’이라고는 하지만 프레스센터의 상징성과 언론단체 다수가 입주해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선일보나 한겨레 사옥에 정치인의 선거운동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벽면에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현수막이 걸렸다. 사진=독자제공
▲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벽면에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현수막이 걸렸다. 사진=독자제공

서울신문 보도 논조에 대한 우려도 크다. 지난 5월12일자 “‘민의의 전당’ 용산, 소음으로 얼룩져선 안 돼”라는 제목의 사설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하면서도 ‘소음 유발’을 이유로 무분별한 집회를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불법 여부만 따지며 집회 시위의 자유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실 집무실 이전보다 시급한 건 대통령이 쉬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경호 등의 문제 때문에 일반인처럼 아무 데나 놀러 다닐 수 없는 만큼 별장을 만드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쓴 4월20일자 데스크 간부 칼럼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월14일자 사설(“점점 꼬이는 택배 파업, 정부 손놓고 있을 텐가”)에선 파업의 배경을 살피거나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하기보다 “노조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행위에 대해선 강력히 경고하고, 노조가 계속 무시하면 공권력 발동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 무장한 글이다.

언론계에선 서울신문이 ‘권력 감시’라는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채 내부 구성원도 무기력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탁종렬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은 “서울신문 기자들이 과거엔 자사 보도에 총회를 열어 공론화하고 문제를 제기한 사례가 있었는데, 현재 논란이 된 보도와 관련해 내부에서 조용한 건 의문”이라며 “자본 권력이 들어와도, 내부에선 끊임없이 언론 정상화 방안을 토론하고 관련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 이대로 두면 서울신문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상실해가는 과정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서울신문과 호반건설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서울신문과 호반건설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지난 2019년 7월18일 서울신문은 “서울신문 115주년, 독립언론의 길 꿋꿋이 걷겠다”라는 사설에서 “소셜미디어가 정보 유통의 채널로 전환되고 전통적인 언론의 기능이 약화하는 가운데 자본력을 내세운 인수합병은 해당 언론이 공공재로서 저널리즘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지 의문스럽게 한다”며 “21세기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밝히는 독립언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독립언론’ 이 네 글자를 지키느냐, 아니면 지워 버리느냐는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