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 우리는 SK브로드밴드 작업복을 입고, 정년까지 일 하겠다는 것이 우리 소원이다. SK브로드밴드 원청이 나 몰라라 눈 감는 사이 중부케이블(하청업체) 대표는 2020년에 이어 또다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우리의 바람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방웅 SK브로드밴드 케이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SK브로드밴드의 케이블 설치·수리 하청업체가 최근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를 흡수합병한 뒤 3년차, 원·하청 사측이 이윤 창출을 위한 책임을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리란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희망연대노조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의 케이블 설치·수리를 위탁하는 중부케이블 측은 다음달 27일자로 9명의 노동자들에게 해고예고 통지서를 보냈다. 같은 날 다른 직원 6명에게는 전주센터에서 아산 또는 세종으로 원거리 전보를 통보했다.

▲케이블·인터넷 설치 노동자가 사다리와 UTP선 등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가입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기사와 무관) 사진=금준경 기자
▲케이블·인터넷 설치 노동자가 사다리와 UTP선 등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가입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기사와 무관) 사진=금준경 기자

중부케이블은 공지문에서 “SK브로드밴드와 업무위탁계약 종료 시 현재 업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상황으로 근로계약을 단계적으로 해지할 수밖에 없다”며 “빠른 시일 내 근로계약을 해지하고 폐업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비춰 노조는 같은 날 발표된 원거리 전보도 퇴사 유도 절차로 보고 있다.

이들 케이블 설치·수리 노동자는 지난 2020년 초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를 흡수합병하면서 원청이 SK브로드밴드로 바뀌었다. 케이블 산업이 하향세를 그리는 상황에서, SK브로드밴드(IPTV)가 티브로드(케이블)의 가입자만 빼간 뒤 소속 노동자들에 대량 해고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에 합병 승인 조건으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3년간 보장하라’고 했는데, 그 끝무렵이 내년 1월로 다가왔다.

노조는 원청과 재계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하청업체가 비용 감축을 위한 노동자 쥐어짜기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중부케이블은 공지문에서 “내년 1월 (원·하청) 위탁계약 종료를 앞두고 고용승계 문제를 최우선해 SKB 측에 여러 차례 접촉 및 문서를 보내 협의를 시도했으나 가입자 전환 유도 정책에만 집중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3월 열린 노사협의회 녹취록에 따르면 노측이 ‘현재 매출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하느냐’고 묻자 하청 사측은 ‘근데 꼭 그런 식은 아니다’라면서 ‘SKB(로부터) 위로금이고 뭐고 이야기가 없다’고 답했다. 원청과 재계약 종료 위로금 등 소통이 원활하지 않자 비용을 줄이려 노동자를 먼저 자른다는 것이다.

▲희망연대노조와 소속 SK브로드밴드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는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SK남산빌딩 앞에서 ‘진짜 사장’ SK브로드밴드에 직접고용 전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희망연대노조와 소속 SK브로드밴드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는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SK남산빌딩 앞에서 ‘진짜 사장’ SK브로드밴드에 직접고용 전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방웅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 전주지회장은 “문제는 이번 해고예고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측이 ‘빠른 시일 내 근로계약 해지’를 언급한 만큼 노동자들은 2차 정리해고와 원거리 통보를 통한 퇴사 유도를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방 지회장은 “원거리 전보 받은 조합원 5명은 이를 부당전보로 판단하고 16일부터 발령지가 아닌 기존 전주센터로 출근해 전보 거부 투쟁을 할 예정이다. 부당전보 구제신청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SKB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SK브로드밴드 원청에 중부케이블을 비롯한 하청업체 조합원 전원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하청업체의 정리해고와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요구에 “6일 중부케이블 측에 △근로기준법 준수와 상시 근무인력 확보, 노동법상 책임을 성실히 준수하는지 △안정적 서비스 제공과 구성원 안전에 부정 영향이 없는지에 질의와 우려를 담은 공문을 보냈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계약에 근거해 필요한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실상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이 하청업체에 있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중부케이블 측은 15일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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