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제 일어났던 범죄와 사건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으로 프로파일러와 범죄 사건을 직접 취재한 기자가 쓴 책을 원작으로 하는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다. 지난 12일 종영한 드라마는 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 시청률 7.6%를 기록했다. 분당 최고 시청률은 10.9%까지 올라갔다.

SBS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온라인에서 시즌제로 이어지다가 지난해 10월 정규 프로그램 편성에 성공했다. 지난해 정규 편성 이전, 온라인에서 꼬꼬무 시즌1 누적 조회수는 8000만회를 넘었고 시즌2 역시 5500만회를 넘기는 상황. 정규 편성 후에도 4%대 시청률을 이어가고 있다.

▲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포스터. 사진=SBS 홈페이지
▲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포스터. 사진=SBS 홈페이지

tvN ‘알쓸범잡2’의 경우 프로파일러 권일용 동국대 겸임교수가 출연, 범죄 실화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도 범죄자 심리를 추적하는 범죄 다큐 스릴러로 매주 수요일 방영 중이다.

내달 1일에는 E채널에서 ‘용감한 형사들’이 새로 시작된다. ‘용감한 형사들’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 작가와 MBC ‘나 혼자 산다’ PD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 프로그램에도 권 교수가 전문가 패널로 합류한다.

▲ SBS 꼬꼬무 예고편 가운데.  
▲ SBS 꼬꼬무 예고편 가운데.  

‘경찰청 사람들’ ‘수사반장’… 그 시절 범죄 실화 콘텐츠

범죄 실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는 아주 오래 전부터 두터운 팬층이 있었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경찰청 사람들’처럼 범죄 실화 기반 콘텐츠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기를 끌었던 장르”라면서 “다만 ‘경찰청 사람들’은 한번 부활했다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재연극보다는 수사에 직접 참여했거나 관련한 인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성 평론가는 “이미 한번 성공했던 ‘알쓸신잡’ 같은 포맷을 활용해 범죄 관련 토크쇼를 하면서 부자연스러운 재연보다는 실제 이야기를 듣고, 리액션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라며 “오랜시간 사람들이 호러 영화를 즐겨봤던 것처럼, 사건 자체를 알고 싶어하는 시청자의 욕망을 새로운 형식으로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범죄 실화 기반의 콘텐츠가 트렌드가 됐다”고 말했다.

▲tvN '알쓸범잡2'.
▲tvN '알쓸범잡2'.

고나무 팩트스토리 대표 역시 드라마와 웹툰, 웹소설, 책 등 여러 분야에서 범죄 실화 소재가 확산하는 현상을 두고 우선 “장르 스토리 시장(영화, 드라마, 장르소설)의 긴 역사에서 ‘범죄 이야기’는 늘 일정하게 단단한 팬층을 확보해왔다”고 짚었다.

그는 “스토리업계에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십 년 동안 늘 일정한 소비자가 있는 장르”라며 “영미에서도 범죄 소재는 100년도 넘은 장르다.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쇼킹 스토리’로 소비되어 온 경향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한 장소에서 범죄 바라보며 지적욕구 충족

고 대표는 최근 국내 드라마, 웹툰 시장에서 범죄 실화 소재가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범죄 실화 자체가 가진 스토리의 매력”을 꼽고 “시청자는 안전한 장소에서 안전한 방식으로 인간의 다른 면을 탐구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짚었다.

독자나 시청자들이 ‘지적 탐구로서의 범죄인 탐구’라는 차원에서 콘텐츠들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범죄 양상도 복잡해지는 등 범죄의 변화에서 우리사회 변화도 목도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SBS '꼬꼬무'.
▲SBS '꼬꼬무'.

다만 고 대표는 “‘범죄의 콘텐츠화’가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로 ‘범죄 피해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꼽은 뒤 “선을 넘는 범죄 콘텐츠는 아무리 시청율이 높아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고 대표는 “시청자들의 요구(니즈)와는 별개로 팩트스토리 역시 ‘범죄는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고 대중이 되새길 수 있는 좋은 창’이라고 보며, 언론 역시 더 많은 좋은 ‘범죄 기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CNN에도 ‘crime+justice’(범죄+정의) 게시판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

자극적 연출은 자제 부탁, 사건 본질 짚어야

범죄 실화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과거사 조사 기관이 방송사에 협력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SBS ‘꼬꼬무’의 경우 형제복지원 사건 등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조사했거나 조사 중인 사건을 몇 차례 방송했다. 방송 후에도 지속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진실화해위 대외협력담당자는 22일 미디어늘과 통화에서 “‘꼬꼬무’와 같이 실화를 조명하는 콘텐츠들은 미제로 남은 강력 사건뿐 아니라 국가 폭력으로 인한 과거사 사건도 다룬다”며 “젊은 세대들이 과거사 사건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는데, 과거사를 새로운 세대의 감성으로 다루고 있어 이런 시도들이 굉장히 반갑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프로그램들을 바탕으로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일어나면 사건의 진실 규명과 화해 사업에도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담당자는 “한 가지 우려점은 아무래도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자극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 있는데, 사건이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피해자들은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까지 계속되는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본질이 국가 폭력이라는 점을 꼭 짚어주길 바란다”며 “오랜 고통의 출발점이 국가폭력이라는 사실까지 짚는다면 향후 국가 공동체를 위한 화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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