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에 들어서 한동안 ‘토크쇼’가 몰락했다는 말이 자주 화제가 되었다. TV의 영향력이 더욱 급속도로 빠르게 무너진 시기였다는 것도 컸지만, 그중에서도 토크쇼의 부진이 매우 두드러지게 보였기 때문이다. MBC에서는 10년 넘게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던 ‘공감토크쇼 놀러와’가 2012년, 독특한 형식의 명사 토크쇼로 주목을 받았던 ‘무릎팍도사’가 2013년, 종합편성채널에서 벤치마킹했던 ‘집단 토크쇼’의 포맷을 처음 구체화시킨 ‘세바퀴’가 2015년 각각 종영되었다. 그 사이에 주병진을 섭외한 ‘주병진 토크 콘서트’나 ‘토크클럽 배우들’ 등의 프로그램을 시도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야심만만’이나 ‘강심장’을 비롯해 단체 토크쇼의 포맷으로 한동안 인기를 구가했던 SBS 역시 2013년 ‘강심장’이 종영한 이후 ‘화신’, ‘매직 아이’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나 반응은 미미했다. 종합편성채널에서는 ‘인포테인먼트’를 명목으로 내세운 토크쇼 프로그램이 2021년 현재까지도 계속 존속하고 있으나, 이는 ‘아침마당’처럼 중년 이하의 연령대는 애초에 상정하지 않은 프로그램들이다. 사실상 온갖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가장 젊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거침없는 발언을 늘어놓던 MBC ‘라디오스타’, ‘심야매점’을 비롯해 다양한 컨셉을 꾸준히 시도하면서 연명을 시도했던 KBS ‘해피투게더’, 그리고 채널 개국 초창기부터 오랜 시간 효자 노릇을 해오던 tvN ‘현장토크쇼 택시’ 정도가 2010년대의 몇 안 되는 토크쇼가 되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TV 자체가 지니는 영향력이 준 것도 상당히 컸지만, ‘토크쇼’라는 포맷 자체에 대한 연구가 어느 순간 지지부진해진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토크쇼는 단순히 인기 스타나 유명인사를 불러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성립할 수 있는 포맷은 아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그저 원한다면, 뉴스 프로그램의 초대석 코너나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봐도 족할 일이다. 미국에서 계속 토크쇼 포맷이 골든타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일본이나 유럽 등등에서도 토크쇼가 꾸준한 스테디셀러로 주목을 받는 것은 초대한 게스트에 대해서 새로운 매력이나 의외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진행을 시도하는 면모가 크다. 때로는 게스트가 곤란하거나 당혹스럽게 할 질문을 하다가도, 그 이야기를 다시 때로는 게스트의 특성을 빛나게 하는 순간으로 활용하는 진행이나 구성의 묘가 필요한 것이 ‘토크쇼’가 지녀야 할 중요한 기술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토크쇼’를 외면했다는 말은 사실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한국 방송사들의 ‘토크쇼’가 어느 순간 정체했다는 말이 좀 더 어울리는 측면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2010년대 그나마 존속하던 토크쇼 프로그램들은 전부 자칫하면 뻔하기 쉬운 토크쇼를 뻔하지 않도록 만드는 컨셉이나 진행을 적절히 배합하면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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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방송사에서 인기를 끌었던 토크쇼 프로그램들. 

한편으로 ‘토크쇼’ 자체는 2010년대 한국에서 존속의 위기를 겪고 있었어도, 분명 사람들은 ‘이야기’를 원하고 있었다. 중년 시청자들은 2010년대 새롭게 등장한 종합편성채널에서 ‘황금알’이나 ‘엄지의 제왕’을 비롯한 교양을 내세운 집단 토크쇼에 열광했고, 다시 ‘판도라’나 ‘사건반장’ 같은 정치 주제의 토크쇼에, 때로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나 ‘모란봉클럽’ 같은 북한 소재의 토크쇼에 환호했다. 존속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한동안 JTBC는 ‘마녀사냥’이나 ‘비정상회담’ 등의 특정 주제에 특화된 토크쇼 프로그램을 만들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도 했다. SNS나 커뮤니티에서는 쉽게 ‘썰’이라고 명명된 체험담이나 경험담류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고, 이를 다시 만화나 영화 영역에서 흡수하는 일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정형적인 형태의 ‘토크쇼’는 여전히 쉽지 않아도, ‘이야기’를 갈구하는 흐름은 분명 계속 있었다. 그리고 많이 늦긴 했지만 2010년대 후반 무렵부터는 새롭게 TV 프로그램의 시청자가 된 이들을 향해 다가서는 시도들이 조금씩 등장하게 되었다. 비록 혐오 세력의 비난과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사측의 문제적 자세로 빠르게 사라졌지만,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방영된 EBS ‘까칠남녀’는 변화의 신호탄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미 그 이전인 2016년에도 MBC에브리원에서 한국에서 당시로선 보기 드물었던 여성들을 토크쇼 진행자로 내세운 ‘비디오스타’가 있었지만, 해당 프로그램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라디오스타’의 일종의 스핀오프적인 경향이 강했던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까칠남녀’는 한 발 더 나가서 이미 그 당시에 점차 거세게 타오르던 페미니즘, 그리고 한국 사회가 쉽게 용남하기 어려운 온갖 젠더적인 쟁점들을 모두 전면에 내세운 토크쇼였다. 뉴스 프로그램이나 시사 보도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TV가 젠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 상황에서, ‘까칠남녀’는 토크쇼라는 포맷을 이용해 다른 방송사들이 피하던 이슈를 도리어 전면으로 제기하며 여러 말들을 이끌어내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기간은 1년을 갓 넘긴 것에 불과했지만, 앞으로의 토크쇼들은 결코 고색창연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첫 걸음이었다. ‘까칠남녀’가 종영한 2018년 이후, 새로운 특색을 지닌 토크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EBS의 까칠남녀.
▲EBS의 까칠남녀.

한동안 토크쇼의 중심에 안착하지 못했던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토크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은 매우 대표적인 변화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두 시즌에 걸쳐 CJ ENM 올리브에서 방영한 ‘밥블레스유’는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같은 상대적으로 활동 경력이 긴 여성 방송인부터 장도연, 박나래를 비롯한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 방송인을 모아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컨셉의 토크쇼였다. 컨셉 자체로는 소위 ‘먹방’이라 불리우는 식사 중심의 예능과 토크를 결합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등장하는 방송인들의 면모는 그전까지의 토크쇼 프로그램이 쉽게 출연시키지 않았던 모습들이었다. 특히 중견 방송인에 있어서 그나마 ‘대국민토크쇼 안녕하세요’에 꾸준히 등장하던 이영자를 제외하면, SBS ‘최화정의 파워타임’만이 유일한 고정 프로그램이었던 최화정, 2010년대 이후 급격하게 방송에서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잡지 못해 김숙과 함께 기획사를 결성하고 팟캐스트 프로그램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만들던 송은이의 고정 출연은 쉬워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후로도 독특한 형태로 여성들을 출연시키는 토크 프로그램이 2021년 현재까지도 계속 시도되고 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3개 시즌에 걸쳐 꾸준히 방송 중인 KBS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오랜 시간 강고하게 전형적인 틀에 갇혀 있던 중노년 대상 토크 프로그램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 중년 배우 박원숙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경상남도 남해군의 자택을 무대로 함께 농사를 짓거나 소일거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나이를 먹는 순간 바로 배역이 제한되거나, 토크 프로그램에서 쉽게 소모되었던 중년으; 여성 방송인들을 새롭게 마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특히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진인 박원숙을 비롯해 김영란, 혜은이, 김청 같이 결혼으로 인해 오랜 시간 스트레스를 겪다 이혼해 혼자 사는 여성 방송인들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는 컨셉은 가십성 기사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면모를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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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티캐스트의 케이블 방송사 E채널에서 2020년부터 방송 중인 ‘노는 언니’도 주목할만한 프로그램이다. 골프 선수 박세리나 펜싱 선수 남현희 등등 ‘국위 선양’을 이유로 세간에 오르내렸던 유명 여성 스포츠 선수들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은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와 마찬가지로 쉽게 소모되기 쉬운 대상을 새롭게 주목하는 차원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스포츠 선수는 ‘금메달’이나 ‘1등’을 기록해 한국의 명예를 드높이는 역할을 요구받고, 그 이외의 사적인 요구나 심리는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순간이 지속되었다. 야구 선수 출신의 강병규나 축구 선수 출신의 안정환, 농구 선수 출신의 서장훈처럼 방송인으로 전업하는 스포츠 스타도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이는 남성으로 한정되기 일수였다. ‘노는 언니’는 계속 전업 스포츠 선수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 동시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적인 시선에 갇히기 쉬웠던 이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순간’을 부여하며 사소한 이야기부터, 곱씹으며 들어야 할 이야기까지 긴 시간 동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새로운 인기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비단 여성 중심의 토크쇼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컨셉의 토크 프로그램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3개월 동안 방송되었던 SBS ‘이동욱은 토크를 하고 싶어서’2는 유명 배우 이동욱을 내세운 전형적인 토크쇼의 포맷이었지만, 이동욱의 담백한 진행 스타일을 메인으로 장도연과 조정식을 서브 진행자로 배치하여 토크의 강약을 조절하고자 시도했던 프로그램이었다. 비록 서브 진행자의 활용법에 있어 조금은 어색한 측면이 있던데다가 시청률 측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한채 빠르게 종영되긴 하였으나, 오랜 시간 ‘야심만만’이나 ‘강심장’ 같이 빠르게 자극을 주는 토크쇼를 주도했던 SBS로서는 일종의 탈피를 시도한 모습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동욱은 토크를 하고 싶어서’는 빠르게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보다 앞서 SBS에서는 온라인 뉴미디어 채널을 통해 2021년 현재까지도 꾸준히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문명특급’이다. 본래 SBS 보도국 계열의 유튜브 채널인 ‘스브스뉴스’에서 2018년 1월부터 시작한 ‘문명특급’은 가볍고 짧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시도하다, 그 해 연말부터는 본격적으로 연예인이나 인기 스타를 출연시키며 토크를 가미한 온라인 예능 프로그램으로 컨셉이 전환되었다. 연예인의 활동이나 컴백에 맞춘 토크쇼는 이전에도 ‘연예가 중계’나 ‘본격연예 한밤’ 같은 연예 정보 프로그램이 있었고 2010년대에도 ‘주간 아이돌’이나 ‘아이돌룸’이 있었지만, ‘문명특급’은 본래 연예 커뮤니티에서 간간히 쓰이던 ‘숨듣명’(‘숨어듣는 명곡’의 줄임말,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거나 미묘한 측면이 있어 남들에게 듣는다고 대놓고 이야기 하지는 못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곡을 가르키는 은어.)과 같이 연예인들에게는 자칫 잘못하면 민감할 수 있는 영역을 적절하게 언급하며 자연스러운 토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내세운 컨텐츠나, 닉네임 ‘재재’로 이름을 알리게 된 이은재 특유의 발랄하면서도 날카로운 진행은 빠르게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도록 만들었다. 명절 시기 마다 간간히 SBS 본채널에도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주된 방송 채널은 유튜브를 고수하는 ‘문명특급’은 온라인 프로그램이 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만드는 동시에, 청년들에게 어필하는 새로운 토크 프로그램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토크 자체의 범위를 좀 더 넓힌 프로그램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전에도 tvN ‘수요미식회’나 같은 방송사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처럼 미식이나 교양을 컨셉으로 한 토크 프로그램이 종종 있었지만, 근래 등장하는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내세우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흥미로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적재적소에 맞게 전달하는 컨셉의 토크 프로그램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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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꼬꼬무'.

2020년부터 SBS에서 방송 중에 있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는 다사다난했던 한국의 현대사를 소재로 삼은 토크 프로그램이다.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3명의 고정 출연진을 바탕으로 매화마다 새로운 ‘이야기 친구’를 초청해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컨셉의 프로그램은 고정 출연진은 물론 이야기 친구 또한 현대사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이들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도록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방송인들이기도 하다. 제작진들과 함께 ‘구전으로 전하는 이야기’로 재가공된 현대사의 사건들은 시청자들에게 때로는 친근감있게, 때로는 긴장감있게 적재적소에 맞춰 톤을 조절하며 이야기의 형태로 다가가며 쉽게 알지 못했던 현대사 각각의 순간을 흥미롭게 알 수 있도록 만들고, 그 현대사에 얽힌 각각의 맥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전에도 현대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간간히 있었지만, KBS의 ‘88/18’이나 ‘모던 코리아’ 등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나 교양 강좌 수준에 머물렀던 측면이 있었다. 이야기의 겉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는 현대사의 이야기는 이전까지의 프로그램과 다른 새로운 면모를 불어넣고 있다.

반면 2021년부터 MBC에서 방영 중인 ‘심야괴담회’는 이야기 자체가 지닐 수 있는 흡입력에 초점을 맞춘다. 제작진에게 보낸 사연이나 기이한 이야기를 출연진이 읽고, 이 중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사연에 상을 준다는 컨셉은 그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다. 이미 이전에도 SBS ‘토요미스테리 극장’이나 MBC ‘이야기 속으로’ 같이 실화 바탕의 재연 프로그램이 있었고, 큰 화제가 되지 못하고 사라지긴 했지만 흥미로운 창작 스토리를 뽑아 상을 주는 KBS ‘스토리텔링클럽 이야기발전소’와 같은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스토리의 흡입력에 초점을 맞추는 프로그램들이 모두 족히 오래 전에 사라진 상황에서, 이전에도 있었던 프로그램의 부활은 새로운 이야기를 갈구하는 상황에서 조금씩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괴담’이라는 소재는 미국 FX의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나 일본 후지TV의 ‘기묘한 이야기’가 오랜 시간 장수하고 있는 것처럼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소재이다. 조금은 늦었지만, MBC는 ‘심야괴담회’를 통해 이야기 자체가 낳을 수 있는 원초적인 쾌감을 토크의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알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빠르게 TV에서 밀려나리라고 생각했던 토크쇼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컨셉을 바탕으로 다시 시청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비록 시청률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전까지의 프로그램들이 TV를 떠나 유튜브나 SNS 등지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외면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한동안 안이한 접근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TV의 토크 프로그램이 조금씩 사람들에게 다시 다가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토크쇼가 사람들의 인기를 끌지 못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이 ‘이야기’나 ‘썰’에 아예 관심을 멀리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 구태의연하지 않고 새롭게 이목을 끌고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이야기를 찾지 못했을 따름이다. TV 자체는 계속 힘을 잃고 있고, 그 자리를 유튜브나 트위치를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나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가 대체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 역시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존재한다. 중년 여성 방송인들의 삶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나 현대사의 중요 사건들을 다각도로 전해주는 ‘꼬꼬무’처럼, 방송이라는 플랫폼에서만 비로소 꺼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 흐름들을 계속 TV가 파악하고 움직이며 변화할 수 있다면, 레거시가 빠르게 사라지는 시기에서도 TV는 사람들이 필요하는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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