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늘 ‘꿈꾸는 바보’들이, 강도 만난 이웃에게 손 내미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구원해왔다. 청소부든, 막일꾼이든 각자의 노동이 존중받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꿨던 전태일처럼, 조영래처럼.”

한 신문사 중견언론인이 쓴 칼럼(10월 19일)의 일부다. 어디일까. 전태일 정신을 줄곧 지켜온 듯 칼럼을 내보낸 이 신문은. 뿐만 아니다. 같은 날 사설은 ‘대장동 개발’에서 민간의 ‘초과이익 환수’를 격렬하게 부르댄다. 공영개발의 마지막 지킴이처럼 다가오는 이 신문은 어디일까.

조선일보다. 모두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을 조준하고 있다.

▲ 10월19일 조선일보 “李 지사가 '성공한 전태일'이라 우기는 사람들에게” 칼럼
▲ 10월19일 조선일보 “李 지사가 '성공한 전태일'이라 우기는 사람들에게” 칼럼

의혹을 따따부따하고 싶진 않다. 다만 사실은 분명히 짚자. 이 신문에서 반세기 넘도록 일관된 방향은 “각자의 노동이 존중받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었다. 정반대다. 그 세상을 이루려고 애면글면 앞장선 사람들을 내내 ‘마녀’로 사냥했다. 조금이라도 공공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겐 거침없이 붉은 색깔을 칠해왔다.

조선이 앞장서고 동아와 중앙이 따라가는 ‘지록위마의 억지’는 하나 둘이 아니다. 이재명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끈질기게 훌닦인 마녀가 있다. 다시 사실부터 살펴보자.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 심화다.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차별은 인권 유린 수준이다. 모든 노동인이 노조를 할 권리도 온전히 구현되어 있지 못하다. 젊은 세대가 곧 부딪쳐야 할 일터의 현실이다. 산업 전환기를 맞아 국가가 일자리를 책임지지 않을 때, 실업자는 양산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자영업도 어려워진다. 아파트 값 폭등처럼 주거 문제는 새삼 말할 나위 없다. 대학 등록금은 여전히 세계적 수준이다. 의료와 돌봄의 공공성도 풀어야 할 숙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묻고 싶다. 그 국가적 의제들을 풀자며 가장 열정을 쏟고 있는 조직은 어디인가. 문재인 정부인가? 민주당인가? 국민의 힘인가? 정의당인가? 아니면, 전국경제인연합인가?

선뜻 정답이라 할 조직이 없을 터다. 그렇다면 어디인가. 현실적으로 아무런 정치권력도, 경제권력도 지니지 못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다. 앞서 나열한 시대적 과제들이 바로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내건 요구들이다.  

▲ 사진=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사진=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그런데 어떤가. 많은 사람이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로 인식하고 있다. 조중동 신방복합체의 무서운 세뇌 결과다. 가장 교활한 세뇌는 세뇌당한 사람이 의식하지 못한 세뇌다. 조중동은 틈날 때마다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로 몰아쳐왔다.

과연 그러한가? 거듭 사실을 짚자. 민주노총 조합원의 30퍼센트가 비정규직이다. 그 통계도 믿어지지 않는다면 거꾸로 살필 일이다.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로 비난하는 조중동은 비정규직 차별에 어떤 보도를 해왔는가. 민주노총을 귀족으로 비난할 정도라면 조중동은 비정규직은 물론 산업재해 줄이기에 앞장서야 했다. 하지만 조중동은 비정규직 차별을 의제화하지 않았다. 중대재해 처벌을 둘러싼 조중동의 보도와 사설들을 들춰보면 추악한 민낯이 드러난다.

기막힌 기만극의 압권은 민주노총과 문재인 대통령 ‘사이’다. 조중동은 문재인과 민주노총의 관계를 ‘동맹’, 심지어 ‘실세’로 보도해왔다. 정부가 위원장을 구속한 뒤에도 언죽번죽 같은 논리를 폈다. 이유는 확연하다. 민주노총과 문재인 모두 그들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아서다. 그들 논리에 정부는 점점 말려들었다. 정부는 반년 전부터 총파업을 예고한 민주노총의 대화 요구를 묵살해왔다. 민주노총에 끌려 다닌다는 조중동 논리가 먹혀든 꼴이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정당들의 목소리는 조중동은 물론 공영방송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진보언론’에서도 그렇다.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가 한껏 활개 치는 까닭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바보들’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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