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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노사 10년만의 합의 “언론은 제2의 노조파괴범이었다”
유성기업 노사 10년만의 합의 “언론은 제2의 노조파괴범이었다”
[인터뷰]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도성대 아산지회장·이정훈 영동지회장
“노조파괴 실상, 정부도 검찰도 언론도 아닌 조합원들이 삶을 걸고 드러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지난달 31일 지난 10년치 임금과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가결했다. 지난 10년의 임금과 위로금 지급, 경영진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손배가압류 철회, 사내 설치한 CCTV 철거, 제2노조와의 차별 철폐, 노사분규 피해·부상자 보상과 조합원 심리치유사업 협조 등이 합의안에 담겼다. 조합원 240명 중 210명이 찬성했다.

도성대 금속노조 유성아산지회장은 “노조파괴 10년 투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100% 만족할 만큼의 성과는 아니지만 최소한 대통령을 필두로 한 국가와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업체, 현대차 자본과 그에 결탁한 유성자본의 탄압을 이겨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며 “이 과정에서 한광호 열사와 박문열, 오동환 조합원 등 많은 동지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했다.

유성기업은 ‘노조파괴’의 대표 주자로 불린다. 이에 따른 600건에 이르는 소송으로도 유명하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창조컨설팅이 ‘노조 깨기’에 실패한 사실상 유일한 노동조합이자 회사를 상대로 거의 모든 소송을 이긴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도성대 유성아산지회장과 이정훈 유성영동지회장은 지난 10년 투쟁을 돌아보며 “사측의 거듭된 징계 의미를 전한 언론도 없었지만, 거의 모든 소송에서 이기고 결국엔 버텨낸 승리의 의미를 전한 언론도 없었다”고 했다.

2011년 직장폐쇄, 노조파괴의 시작 “잠 좀 자자 했을 뿐인데”

유성기업은 현대차 엔진 피스톤링 등 부품을 만드는 1차 하청업체다. 노조 탄압은 2011년 5월 회사의 공격적 직장폐쇄로 시작됐다. 금속노조 유성지회는 회사가 1년5개월 전 약속한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지키지 않자 파업에 들어갔다.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 밤엔 잠 좀 자자.” 주야 맞교대를 폐지하고 합의대로 자정 전 근무를 마치자고 했다. 유성기업은 용역 직원을 동원해 쟁의행위 진압에 나섰다. 조합원들은 용역이 던진 소화기와 벽돌 등에 맞아 18명이 전치 6주 등 상해를 입었다. 직장폐쇄는 유성지회가 복귀 의사를 밝힌 뒤 8월 말까지 계속됐다.

▲2011년 5월21일 유성기업 충남 아산공장에서 공장점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 등 700여명이 오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2011년 5월21일 유성기업 충남 아산공장에서 공장점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 등 700여명이 오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2011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 방패를 든 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00여명에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유혈사태가 일어나 2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금속노조
▲2011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 방패를 든 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00여명에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유혈사태가 일어나 2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금속노조

이정훈 지회장과 도성대 지회장은 해고무효 판단을 각각 총 13번 받았다. 사측은 공장에 복귀한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 27명을 즉각 해고했다. 그 뒤 2013년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돌아온 조합원 11명을 재해고했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소송까지 이긴 뒤 대법원에 가기 직전에 철회해 ‘없던 일’로 했어요. 노동자가 출근하면 다시 해고하는 거예요. 결국 대법원 판결이 나와 복직했어요.” 중복 해고 건수를 제하고 35명의 조합원이 해고당했다.

유성기업은 같은 시기 어용노조(유성노조)를 세웠다. 징계와 임금 지급, 교섭은 어용노조와 차별적으로 이뤄졌다. 금속노조 조합원만 잔업·특근에서 배제해 수당을 주지 않거나 임금 삭감에 나섰다. CCTV 설치, 관찰 일지 작성, 제2노조와 일상적 차별, 징계와 고소가 이어졌다. “부서장이 밥 먹으러 1분 빨리 갔다고 삭감,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삭감. 조합원이 임금을 확인한 뒤 삭감 이유를 물으면 알려주지 않았고, 항의하면 명령불복종. 교섭은 절대로 안 해주고.” 2노조원에게는 분규 없이 합의했다는 이유로 금전을 지급했다.

도 지회장은 “회사는 부당징계를 알면서도 했다. 같은 일을 반복했을 때 더 세게 처벌해야 하지만 검찰과 사법부는 그러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우린 징계와 관련된 소송을 거의 100% 이겼다. 이런 사실에 주목하는 언론사는 없다시피 했다”고 설명했다.

▲2011년 5월26일 동아일보 6면.
▲2011년 5월26일 동아일보 6면.
▲2019년 7월10일 조선일보 12면.
▲2019년 7월10일 조선일보 12면.

사라져가는 관심, 창조컨설팅의 언론 동원 시나리오

회사의 매일 같은 부당징계와 지난한 소송에 언론의 관심이 사라져가는 동안 보수언론은 노조 공격 보도를 이어갔다. 파업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은 ‘외부세력 개입’을 언급했고, 이 주장은 보수·경제지면에 올랐다. 조선일보는 1면과 사설로 유성기업 파업을 비난했다.

MBN 등 방송 보도된 유성기업 노동자 폭행 영상이 사측이 폭력을 유발한 뒤 홍보수단에 이용하는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일환이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참세상은 유성기업이 2011년 작성한 노조파괴 문건을 취재해 사측이 노조 활동에 개입한 뒤, 충돌과 마찰이 일어나면 ‘불법행위 채증요령’에 따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이를 언론기관에 홍보토록 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구축한 사실을 2018년 보도했다.

2012년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창조컨설팅의 유성기업 노조파괴 공작이 폭로됐다. 창조가 유성기업과 맺은 대외비 약정서를 보면,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하거나 상급단체를 변경하면 1억원, 노조 조합원 수가 20%로 줄면 8000만원의 성공보수를 지급받도록 했다. 창조는 이 같은 방식으로 2년여 내 82억원을 벌어들였다. 금속노조는 유성기업을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다.

▲2012년 12월8일 오전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이 굴다리에 매달려 있는 천막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2012년 12월8일 오전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이 굴다리에 매달려 있는 천막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증거는 다 나와있는데…노동부·검찰·법원으로 옮겨간 싸움

이후 노동부, 검찰과의 싸움이 이어졌다. 노동부의 기소 의견 번복, 검찰의 불기소와 유성지회의 재정신청 등 지난한 다툼이 계속됐다. 홍종인 전 아산지회장과 이정훈 지회장이 각각 2012년과 2013년 고공 농성에 들어갔다. 결국 대법원은 2017년 2월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에게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원청 현대차 임직원들도 어용노조 설립을 보고받고 확대를 위한 목표를 제시하는 등의 노조파괴 혐의로 유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집행유예에 그쳤다.

“간부들만 움직였다면 절대 여기까지 움직이지 못했을 거예요. 해고자도 있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이도 있죠. 공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 소원은 ‘너희는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해. 그때까진 싸울 거야’였어요. 남은 조합원들은 또 얼마나 힘들겠어요. 해고자는 드글드글한데, 조합원들이 해고 조합원 생계에 비용을 댔어요.” 10년간 임금인상이 없었고 급여는 줄었다. 조합원 평균 근속이 25년인데 최저임금 미달자가 3분의 1이다. “못 견디는 사람들은 어용 가는 거예요.”

그동안 유성기업지회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은 치명적 수준에 이르렀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 결과 유성기업 내 금속노조 조합원 중 우울증 징후가 43명,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25명으로 다른 조합보다 현저히 높았다. 9명은 자살 사고 등 정신건강 고위험군으로 판단됐다.

고 한광호 열사는 2016년 3월17일 사측 징계를 위한 세 번째 출석요구서를 받고 며칠 뒤 숨졌다. 한광호 열사는 노조탄압 이후 두 차례 징계를 받았다. 사측 관리자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2014년 정신건강 실태 조사에서 고위험군으로 판정됐고 이듬해 출근이 어려울 정도로 정신건강이 악화됐다. 두 지회장은 특히 한광호 열사 죽음과 조합원들의 분노가 만든 투쟁이 유 회장에 대한 선고를 이끌어냈다고 했다.

▲2016년 3월24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서울시청광장 한복판에서 동료 한광호의 분향소를 설치하지 못한 채 경찰에 둘러싸여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2016년 3월24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서울시청광장 한복판에서 동료 한광호의 분향소를 설치하지 못한 채 경찰에 둘러싸여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4월 유성기업 공장 안에서 노조파괴를 규탄하는 오체투지를 벌이고 있다. 사진=유성기업지회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4월 유성기업 공장 안에서 노조파괴를 규탄하는 오체투지를 벌이고 있다. 사진=유성기업지회

한광호 죽음 외면한 언론이…“얼마나 재밌어요, ‘개가 주인을 물었다’.”

유성기업 노조파괴와 조합원 희생을 외면하던 언론은 조합원들이 한 차례 이성을 잃자 대서특필했다. 이른바 ‘유성기업 폭행사건’ 또는 ‘부상사건’으로 알려진 사태다. 김아무개 상무는 유성기업 노무관리를 주도해온 당사자다. 제2노조와 교섭 합의에 조인하기 위해 서울사무소를 찾았다. 금속노조와는 교섭을 8년째 하지 않은 채였다. 유성지회는 항의하기 위해 교섭장을 찾았다. 

사태가 발생한 뒤 언론이 노조 때리기에 나서자 이해찬 당시 민주당대표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가세했다. 조선일보는 2018년 11월 해당 사건이 발생한 뒤 현재까지 이 사건 관련 보도를 29건 지면에 올렸다.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실제 전치 5주였던 김아무개 상무 상태를 부위별로 합산해 전치 12주라고 부른다.

▲조선일보는 2018년 12월1일자 보도와 반론보도. 조선일보는 ‘유성기업 공장선 민노총·非민노총 칸막이 치고 근무’에서 회사 측의 “민노총 노조원들이 비민노총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해 2~3년 전부터 서로 마주하지 못하게 분리해서 일하고 있다”는 주장을 그대로 실었다가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친 끝에 반론보도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2018년 12월1일자 보도와 반론보도(왼쪽). 조선일보는 ‘유성기업 공장선 민노총·非민노총 칸막이 치고 근무’에서 회사 측의 “민노총 노조원들이 비민노총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해 2~3년 전부터 서로 마주하지 못하게 분리해서 일하고 있다”는 주장을 그대로 실었다가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친 끝에 반론보도를 실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영동지회가 지난해 7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까지 ‘9년을 넘길 수 없다, 끝내자 유성기업 노조파괴’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도성대 유성아산지회 지회장. 사진=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영동지회가 지난해 7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까지 ‘9년을 넘길 수 없다, 끝내자 유성기업 노조파괴’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도성대 유성아산지회 지회장. 사진=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우리는 대개 언론이 낮은 곳, 어려운 곳을 조명하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 일을 당하면서 신문에, 인터넷 기사에 우리 얘기 한 줄 올리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꼈어요. 오체투지를 불과 작년까지 몇 년 매주 했어요. 대한민국에서 우리보다 많이 한 사람 없을 거예요.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한 줄도 실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유성 사태’가 벌어진 날엔 전화가 몇백 통이 왔어요. 전화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기자들이 사무소 문으로 밀고 들어오고. 우리가 간절하게 찾을 때엔 한 명도 없던 기자들이. 그들에게는 이 사건이 재밌는 일이잖아요. ‘개가 주인을 물었다.’ 얼마나 재밌어요.”

“그 누구도 아닌 조합원들이 삶을 걸고 드러냈다”

두 지회장은 지난 10년간 유성기업의 노조 탄압을 버틴 건 현장 조합원 모두가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고 단언했다. “언론에 공개된 노조파괴 실상은 노동부나 검찰이 밝힌 것이 아니다. 조합원들이 삶을 걸고 싸우며 조금씩 드러낸 것”이라고도 했다. 

이 지회장은 언론이 유성기업의 노조탄압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잘라 말했다. “사람을 두 번 죽인 보도가 많았어요. 지난 10년 동안 언론은 제2의 노조파괴를 한 거예요. 이걸 지금 지적해 시정될까 싶어요.” 이 지회장은 “우리 투쟁이 10년까지 이른 이유 중 하나는 전적으로 사측이 노조와 대화해서 해결해야 함에도 다른 주체에 귀를 기울여 우리 문제를 해결하려 한 데 있다. 노사가 서로 신뢰하고, 단협을 우선해야 하는데 유시영 회장은 사건 변호인, 창조컨설팅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 우물을 팠다. 언론은 이를 부추겼다”고 했다.

도 지회장은 “합의서에 서명하고 찬반 투표를 거치며 많은 생각을 했다. 대견하기도 했고, 허무하기도 했으며, 연대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끼기도 했다. 또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았던 어용노조에 대한 사무치는 원한도 있다”며 “그러나 무엇보다 이제 우리도 제시간에 밥 먹고, 퇴근하고, 취미 생활하고 누굴 만나는 등 ‘예측 가능한 일상이란 것이 올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10년간 꿈꾸던 소박한 소원이었다”고 했다. 유성기업과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다음주 조인식을 할 예정이다.

▲이정훈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영동지회장(왼쪽)과 도성대 유성기업아산지회장. 사진=김예리 기자
▲이정훈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영동지회장(왼쪽)과 도성대 유성기업아산지회장. 사진=김예리 기자

조선일보는 잠정합의안이 통과된 지난달 31일 이 소식을 전하며 “극심한 노사간 갈등과 분쟁으로 인한 사측의 피해도 컸다. 지난해 9월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은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며 “2018년 11월에는 조합원 7명이 김모 노무담당 상무를 1시간 동안 집단 구타해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히는 폭력 사건까지 일어났다”고 했다. 서울경제도 합의 소식을 전하며 “노사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폭력도 잇따랐다. 지난 2018년 11월22일에는 조합원 7명이 김모 노무담당 상무를 1시간 동안 집단 구타해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히는 사건까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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