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연봉도 더 받는 사람들이 저기 누워서…."

25일 오전 11시 현재 인터넷 조선일보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기사 제목이다. 25일자 신문에는 <쌍용차의 교훈…저항없이 해산된 ‘링파업’>이라는 아주 점잖은 제목으로 실렸지만, 인터넷판에서는 ‘유성기업 한 간부(부장)’의 말이라며, 기사의 중심 내용도 아닌데 대문짝만하게 뽑혔다.

이 간부는 공장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던 노동자들을 정문 앞에서 바라보며 “저 사람들 연봉이 나보다 많아요. 7000만원씩 받는 사람들이 저렇게 드러누워 있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터넷 조선일보 25일자 메인 화면.
 
결국 경찰은 24일 오후 31개 중대 2500여명의 경찰을 투입해 500여명의 노조원을 강제 해산시켰다.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업체의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막기 위해 공권력 투입을 서둘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 종료됐다고 볼 수는 없다. 유성기업노조 상급단체인 전국금속노조는 26일 충남지부와 대전충북지부가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27일에는 전국의 간부들이 참여하는 ‘유성기업 공권력 투입 규탄’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 안 그래도 평탄치 않았던 이명박 정부와 노동계 간의 관계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더욱 극한 대립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공권력 투입 직전, 이를 노골적으로 촉구하거나 은근히 부추겼던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언론은 ‘다행’, ‘환영’이라는 반응을 직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다. 18일 유성기업 측의 직장폐쇄에 맞서 공장점거 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에 대한 이들 언론의 기본적인 시선은 한결 같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앞서 유성기업 한 부장의 ‘한숨소리’와 같다.

관점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기본 사실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귀족노조’ 논란의 근거이자 공권력 투입의 한 명분이 됐던,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연봉 7000만원를 받는다는 주장부터 그렇다. 노조 측은 “최소 회사를 25년 다니고 주야간 풀타임으로 근무할 때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시된 유성기업의 지난 3월 사업보고서에도 1인당 평균급여는 5710만9천원으로 조중동이 보도한 것과 차이가 있다.

회사 측은 이에 “퇴직금과 복리후생비, 수당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언론은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제대로 설명하거나 노조의 반박 내용도 함께 담아내는 게 옳았다.

유성기업노조 홍종인 노동안전부장이 한겨레·참세상 등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전한 현실은 더욱 놀랍다. 지난 2년간 아산공장에서 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이 중 4명이 돌연사나 자살 등에 의한 사망이었다는 것이다.

홍 부장은 이번 노사갈등의 원인이 된 주야 2교대제 근무시스템으로 인한 야간노동이 주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야간노동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성폐혈증으로 사망하거나, 탈의실에서 뇌출혈로 사망한 이도 있고, 또한 주야간 업무 스트레스로 장기 쪽에 이상이 생겨서 죽거나 심지어 자살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고 홍 부장은 밝혔다.

연봉 7000만원을 받는 귀족노조 조합원들의 생활상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나, 조중동은 이런 증언을 담아내지도 주목하지도 않았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간 근본 이유인 ‘주야간연속2교대제’와 ‘월급제’의 주요 배경인데도 그랬다.

   
금속노조가 24일 발행한 선전물.
 
24일 공권력 투입의 명분 중 ‘불법파업’만큼 강력한 것은 없었다. 조중동의 보도에 따르면, 유성기업노조의 파업은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이었다.

중앙은 23일자 신문에 별 설명도 없이 ‘노조 불법파업 파장 확산’이라고 부제목을 달았고, 동아 역시 같은 날 신문에 “불법분규가 방치되면 안된다. 신속히 공권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경총 관계자의 주장만을 그대로 실었다.

그나마 조선은 23일자 신문에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노조가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가결시키기 전에 집단조퇴 등 단체행동을 한 것은 불법이며, 대체인력으로 투입한 관리직 직원들의 작업을 방해한 것은 불법이라는 입장”이라고 전하며 약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노조 측의 반론은 없었다. 금속노조 측은 “유성기업노조는 18일 회사 측의 ‘불법적인 직장폐쇄’ 전까지 공식적으로 파업을 선언한 바가 없고, 관리직 직원의 작업을 막은 것 역시 사측의 ‘공격적인 직장폐쇄’를 방어하기 위한 것일 뿐 불법이라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노조의 집단조퇴가 있었던 18일 오후 단행된 회사 측의 직장폐쇄는 ‘피해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나 ‘긴급성이 명백할 경우’에만 가능한 ‘방어적 직장폐쇄’와 거리가 멀어 또 다른 ‘불법’ 논란을 낳았다. 노조 측은 “전면 총파업도 아닐 뿐더러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직장폐쇄를 한 것은 명백히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법 여부나 ‘귀족노조’ 논란 등은 현장에 있거나 관련 자료를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함부로 단정적으로 쓸 표현이 아니다. “엄연히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는데 ‘귀족노조’는 파업도 못하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조중동의 유성기업 파업 관련 보도 그 어디에도 이런 ‘이성’이나 ‘상식’은 없었다. 조선은 24일자 신문에 <“민주노총이 노리는 ‘알박기 파업’…부품사 10군데 더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중 ‘알박기 파업’에는 “기업 한 곳 파업해 전체 산업 마비시키기”라는 일견 친절하면서도 꽤 섬뜩한 부연 설명까지 달았다.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은 이렇게 ‘불법’, ‘폭동’, ‘전복’에 가까운 무엇이 되고 만다. 적어도 대한민국 내에서 조중동은 헌법보다 세다.

   
조선일보 24일자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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