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0일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엉뚱한 통계를 인용하거나 사실과 다른 말로 노조 파업을 비난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때문에 서민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분노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했다. 저축은행 비리를 엄단하겠다고도 했다.

그래놓곤 이대통령은 느닷없이 ‘연봉 7천만원’ 받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들먹이며 이럴 수 있느냐고 서민들의 아픈 가슴을 헤집었다. 또 상생의 노사문화를 강조하면서 쌍용차 파업 사태를 거론했다. 쌍용차 파업 사태 전에는 차 한 대 만드는 데 106시간이 걸렸는데, 파업 이후 노사관계가 원만히 풀리면서는 38시간에 차 한 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 또한 파업을 일삼는 노조가 문제라는 이 대통령의 평소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이 대통령의 노조관에 대해서는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재벌 기업의 최고경영자 출신답게 이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기업 친화적인 입장을 너무도 당연하게 천명해왔다. 노조에 대해서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적대적인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왔던 만큼 이 대통령이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공공연히 노조 파업을 불온시하는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 어떻게든 사회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대통령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부당하게 노조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헌법에 대한 대통령의 쿠데타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이대통령의 이번 주례연설 발언은 대통령이 지켜야 할 금도를 넘어섰다.  이 대통령이 ‘7천만원 연봉’ 운운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연봉 7천만원’짜리 파업이 최근 경찰력이 투입된 유성기업 사례를 지칭한 것 임은라 누가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부 언론들이 경찰력 투입을 촉구하면서 유성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이 7천만원이라고 보도한 것이 바로 며칠 전이다. 문제는 이런 언론 보도가 명백한 오보였음이 명백하게 드러난 마당에 이 대통령이 천연덕스럽게 다시 이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알고도 그랬다면 이 대통령과 그 참모진들이 작정하고 거짓말을 한 셈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참모진들의 행태가 참으로 한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쌍용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이 인용한 통계는 노동 생산성과는 거의 무관한 것이다. 판매 물량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조립라인 가동률이 달라질 수밖에 없듯 판매물량과 공장 가동률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게 ‘대당 생산 시간’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면 노사 관계의 변화에 따른 생산성 변화 지표로 활용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전혀 사실과 다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자료와 통계로 국민을 기만하고, 노조를 부당하게 비난한 셈이 됐다. 이 대통령의 사과와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서 억지 주장을 편 데 대해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알면 이런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잖아도 레임덕으로 시달릴 정권 후반기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언젠가는 수습하기 곤란한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 십상이다.

청와대가 이런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언론들이 대통령의 무책임한 발언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던 탓이 크다. 언론들이 평소 이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시시비비를 가렸다면 엉뚱한 통계와 자료로 노조와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비난하는 이런 식의 대통령 연설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사실 왜곡은 결국 언론이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이 대통령의 주례연설을 방송하는 KBS는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검증 역할도 포기한 것은 물론 그 논란마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KBS는 말 그대로 ‘대통령의 스피커’가 돼 버렸다는 오명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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