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1시 광주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3층 사무실. ‘미디어봉사단’이라고 쓰인 파란 조끼를 입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는 광주지역 노인 미디어봉사단인 ‘미디어봉사단S’를 이끌고 있는 송현기 단장(72)이다. 그가 사무실 곳곳을 종횡무진 돌아다녀도 직원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2008년 미디어봉사단 창단 멤버인 송 단장은 웬만한 직원보다 더 오래 일해 직원보다 더 직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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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따라 센터 4층에 위치한 ‘미디어봉사단’ 사무실로 향했다. 문 앞에는 “배워서 남 주자!”는 문구가 쓰여 있다. 미디어봉사단의 모토라고 한다. “우리도 공짜로 배웠으니 무상으로 알려줘야지. 그래서 미디어 봉사를 하는 것이여.” 송현기 단장이 말했다.

▲ 송현기 미디어봉사단S 단장. 사진=금준경 기자.
▲ 송현기 미디어봉사단S 단장. 사진=금준경 기자.

사무실에 들어서자 컴퓨터 본체 옆에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비디오 기기가 보였다. 송 단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시니어들은 디지털 이런 걸 잘 모르잖어. 사진을 들고 오거나 비디오로 녹화한 게 있으면 다 CD로 옮겨서 디지털로 바꿔주고 있지.” 어떤 때는 50년도 더 지난 곰팡이 낀 사진도 들고 오는 분도 있다며 송 단장은 미소를 지었다.

봉사단은 미디어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프리미어,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를 가르치는 미디어 교육 활동을 주로 하는데 송 단장이 보여준 봉사단 자료집 표지에는 드론을 날리는 모습이 나올 정도로 새로운 기술도 적극적으로 응용한다.

영상 촬영과 기획, 편집을 배운 시니어들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지역 문화유산을 영상으로 기록하거나 지역 방송에 자신들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보내는 퍼블릭 엑세스 프로그램을 만든다. 퍼블릭엑세스는 매년 10건 이상 제작하는데 지역을 소개하는 영상은 물론 외면받는 전통시장, 독거노인 문제 등 사회적 고민도 다뤘다.

그가 처음 미디어센터에 방문한 건 센터 개관 직후인 2007년이다. “부모님 사진이 3000장이 넘어서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그때 누가 센터에 가면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처음 왔었지.” 그렇게 찾은 미디어센터에서 프리미어 등 미디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게 됐고 여러 분야에서 봉사 활동을 해온 경험을 살려 미디어봉사단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 광주 시청자미디어센터. 사진=금준경 기자.
▲ 광주 시청자미디어센터. 사진=금준경 기자.

어렵지 않으셨느냐고 묻자 그는 허허 웃으며 “어려웠지”라고 답했다. “나도 처음에 이거 한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이 미친놈아 그거 해서 뭐하게’라고 하더라고. 그래도 사진을 이어서 동영상 만드는 걸 처음 해봤는데 그거 재밌더라. 내 손으로 뭘 만드는 게 재미있고 새로운 디지털을 배우게 하니까 하나하나가 재밌었어. 노인의 미디어 접근성 향상에 대한 고민을 그때 시작하게 된 거지. 배울 나이가 지났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해.”

인터뷰 도중 사무실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어수선해졌다. 3시에 예정된 일러스트레이터 교육을 위해 모인 이들이다. “단원들을 대상으로 역량강화 교육을 하고 있어. 오늘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일러스트레이터 기초를 가르치는 날이라서 계속 오는 것이여.” 송 단장이 설명했다.

3시가 되자 송 단장을 따라나섰다. 멀티미디어실에는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저장하고 있는 할머니, “똑똑한 놈 옆에 앉아야 공부가 잘 되는디 야는 아니여”라며 서로 농을 주고 받는 할아버지 등 20여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멀티미디어실 앞에 송 단장이 섰다. “오늘은 태극 문양을 그려볼 수 있을랑가.” 오늘의 목표는 태극 문양 그리기다. 원 이미지를 만들고 그 안에 반원을 교차하게 만드는 순서로 작업하면 된다. “콤퓨타한테 ‘태극 문양으로 만들어줘’라고 했을 때 그냥 그려주면 얼마나 좋겠어. 근데 아직 기술이 그렇게까지는 안 왔으니 직접 해야겠죠잉.”

▲ 미디어봉사단S의 봉사단 일러스트레이터 역량강화 교육. 사진=금준경 기자.
▲ 미디어봉사단S의 봉사단 일러스트레이터 역량강화 교육. 사진=금준경 기자.

“자 도화지가 보이죠. 여기에 방안지처럼 눈금을 넣고 싶으면 어떻게 할까요? 그렇죠. 여기 ‘보기’라는 게 있어요잉. 방안지처럼 만드는 건 격자표시라고 해요. 이 단위를 보면 인치도 있고 센티도 있는데 우리는 주로 픽셀이라는 놈으로 썼잖아요. 그 단위를 바꾸고 싶으면 어떻게 할까요. 여기 마우스 오른쪽을 눌러보면 됩니다.”

송 단장이 한 단계씩 설명하고 자리를 둘러보면서 확인했다. “아 여기는 그리다가 말았네.” 쉬는 시간 동안 따라오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직접 하나 둘 다시 설명했다.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프로그램은 전문강사들이 많지만 송 단장은 새로운 툴이 나올 때마다 먼저 써보고 연구한 다음 직접 교육하기를 고집한다. “젊은 선생님들이 더 유능하겠지. 다 4년 대학 교육을 받으신 분들이고, 하지만 우리가 알아듣게 얘기하는 건 달러. 젊은 선생들은 책에 있는 그대로 해. 교육 끝나면 듣긴 한 거 같은데 뭘 하려면 잘 못하겠다고 하는 거지. 나는 풀어서 설명하니께 나이 드신 분들이 하시는 이야기가 ‘당신처럼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거야.”

송 단장은 생활에 연관된 내용으로 설명하는 게 노하우라고 했다. “폴더라고 아무리 말해도 몰러. 그래서 석작(바구니)이라고 하는 것이제. 오브젝트를 오브젝트라고 하면 안 돼. 아휴 어르신들 옛날 스케치북 알잖아요 그거여요. 아트보드? 그거는 도화지입니다 이러면 ‘응 도화지여?’ 이러신다. 눈높이에 맞게 서로 소통이 될 수 있는 단어를 써야 해.”

송 단장은 반복 학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100번이라도 얘기를 해야 한다. 또 까먹었냐고 하면 시니어들은 싫어한다”는 것이다. 봉사단에서 영상제작팀장을 맡은 김장곤(70)씨도 “젊은 분들은 교육 속도가 빠르다. 이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해서 생략을 많이 한다. 배우는 입장에서는 나만 모르는 상황인 거 같아 다시 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맨 앞자리에서 교육을 들은 박남규씨(82)는 수업 때 배운 내용을 빼곡히 종이에 쓰고 있었다. 그는 봉사단 최연장자다. “이렇게 써놔도 금방금방 까먹어. 그래서 복습하고 또 복습해야 해. 나이 들면 반복 외에는 답이 없어. 그래도 계속 반복하면 기억에 조금 남게 되더라고. 태극기도 계속해보니까 기억이 좀 나네.”

▲ 송현기 미디어봉사단S 단장이 4월 월례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송현기 미디어봉사단S 단장이 4월 월례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영상 제작 외에도 노년층에게 필요한 교육이 많다. 송 단장은 어떤 교육이든 간에 “내가 이걸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주 노인복지관에서 스마트폰 사용법 교육해달래서 해준 적이 있다. 이분들이 손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할 줄 모르니 도와달라고 한다. 사진 찍고 보내기, 문자 보내기, 버스앱 설치 교육을 했는데 계속해달라 하시더라. 시니어들은 이걸 배워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지.”

현장에서 느끼기에 어떤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한지 물었다. 송 단장은 봉사단이 60명 정도로 규모가 크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니어들은 여전히 센터를 모르고 봉사단도 모른다고 했다. 현재 센터 직원들은 규모에 비해 일이 너무 많아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도 한계가 있다. 결국 찾아오는 분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는 상황이라는 것.

이날 오후 5시 봉사단은 월례 총회를 열었다. 50여명의 노인들이 강의실에 모였다. 봉사단이 직접 제작할 지역 행사 영상물을 함께 시청하고 퍼블릭 엑세스 제작 계획, 역량강화 교육 일정, 장애인 미디어제작단을 위한 이동 봉사 일정을 설명했다.

송 단장은 “5월은 가정의달이니 가정을 소재로 해서 영상을 만드는걸로 하겠습니다. 며느리한테 할 말이 있는데 한번 영상편지로 만들어서 ‘아가야 카톡으로 보냈으니 봐봐라잉?’ 해보거나 남편에게 ‘아따 이 웬수 어찌야쓰까’하는 그런 얘기를 영상으로 만들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에 많이 얘기해주셔요. ‘나는 늙어서 못해’라고 하면 그것이 아니고 ‘같이 할 수 있어’ 이러고 지인들 꼭 모시고 오셔요!”라고 강조했다. 총회를 마치며 송 단장이 “위캔!”을 외치자 봉사단원들이 일제히 “두!”라고 화답했다.

*현장섭외에 시청자미디어재단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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