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가 화두입니다. 가짜뉴스, 혐오표현 등이 논란이 될 때마다 언론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지만 정작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 논의는 찾기 힘듭니다. 미디어오늘은 ‘넥스트 미디어리터러시’ 기획을 통해 현장을 들여다보고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대안적 교육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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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전 10시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 녹음실. 부산MBC 표준FM에 방영되는 ‘라디오 시민세상’ 녹음을 앞두고 대본 점검이 한창이다. “성명문이라는 말은 잘 안 쓰거든, 성명서라고 쓰는 게 어떨까.” “과거형을 두 번씩 쓰는 거 같아.” 방송을 총괄하는 제작진은 방송사 PD가 아니라 복성경 부산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다.

‘라디오 시민세상’은 방송사가 세팅한 프로그램에 시민이 출연하는 ‘시청자 참여’가 아니라 기획부터 제작까지 시청자가 맡는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이다. 현장에는 방송사 관계자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계신분들은 제작지원단이라고 하는데 모두 시민이다. 독립영화 제작자, 시민단체 활동가, 미디어 교육을 받은 분들이 제작하고 있다.” 복성경 대표가 설명했다.

시민 제작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인기가 없을 것 같지만 이 프로그램은 다르다. 2005년부터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으로 토요일 오전 8시30분마다 청취자를 만난다. 한 때는 퇴근 시간이 겹치는 라디오 황금 시간대인 금요일 오후 6시30분에 편성되기도 했다.

이날은 지역의 독립출판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는 내용과 시민기자가 전하는 지역 뉴스를 녹음했다. “부산은 대도시인데 출판사 수가 너무 적다. 콘텐츠가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저자 발굴이 잘 안되는 거 같다. 지역의 저자가 많이 생기면 지역 콘텐츠가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이날 출연한 출판 관계자들이 입을 모았다. 이어 ‘스쿨미투’ ‘주한미군 주피터 프로그램’ 등 지역 시민기자가 지역의 소식을 전했다.

▲ 지난 3월29일 '라디오 시민세상' 녹음 현장.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3월29일 '라디오 시민세상' 녹음 현장. 사진=금준경 기자.

제작 과정에 방송사가 개입하지 않냐고 묻자 “기본적인 심의 외에는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 방송할 때만 해도 대본 고쳐오라고 지시해서 많이 싸웠다. 그때마다 우리는 ‘조금 어설퍼도 그대로 내보내는 게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많은 PD들이 퍼블릭 엑세스(시청자 참여 프로그램)를 이해한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은 부산지역 미디어 운동과 역사를 함께 한다. 복 대표는 프로그램 런칭 때부터 붙박이로 일했다. “처음에는 MBC에 사회공헌 차원에서 센터를 개설하고 시청자에게 방송을 개방하라고 압박했는데, 2005년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가 미디어센터를 부산에 설립했다. 이를 계기로 강력하게 요구했고 라디오를 통해 방송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느그가 다 알아서 (제작) 해라’고 하니까 겁먹었던 기억이 난다.”

복 대표는 “방송을 조율하는 과정은 언론운동이 지역 방송사, 지역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어떻게 밀착할지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자평했다.

“인디뮤지션들을 초청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역사회에 설 무대가 많지 않았던 이들을 소개하며 지역문화 활성화에 보탬이 됐다고 본다. 사회적 약자들이 출연한 편들도 기억 난다. 5~6명 규모 사업장은 파업해도 언론이 관심 안 갖는다. 그 분들이 출연하고 나서 우리의 목소리를 오롯이 전하게 됐다며 울컥해 하셨다. 대리기사 노동자, 택배 노동자, 건설현장 하청 노동자들이 나와 자신들이 노조를 만든 이유도 설명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이 프로그램은 ‘눈엣가시’였다. 그럼에도 한 번도 프로그램이 중단되지 않았는데 복 대표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 복성경 부산 민언련 대표(오른쪽)가 지난 3월29일 '라디오 시민세상' 녹음을 앞두고 출연자와 대본 내용을 조정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복성경 부산 민언련 대표(오른쪽)가 지난 3월29일 '라디오 시민세상' 녹음을 앞두고 출연자와 대본 내용을 조정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이 프로그램은 ‘운영협의회’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매달 한번씩 방송사 간부들과 시민사회 위원이 동수로 논의하는 자리다. 지난 정부 때는 사상검열하듯 반발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방송을 왜 해야 하냐고 하더라. 우리는 4대강 사업 찬성하는 시민이 있으면 신청해서 방송할 수 있다고 하며 논의를 이어갔다. 어떤 경우에도 파행이 되지 않고 지속되도록 노력했고 폐지를 막았다.”

그는 1994년 부산 민언련 창립 때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민언련과 인연을 맺었다. 지역 대학신문에서 일했던 그는 지역 언론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부산 민언련 초대 미디어교육위원장을 맡아 학부모 모니터 교육, 어린이 기자교실 등 강의를 시작했다. 

시청자미디어센터 설립 이후에는 센터 차원에서 교육 역량을 갖춘 민언련과 협력했다. 부산 민언련은 라디오 제작자 양성과정, 청소년 비평 교육 등을 미디어센터와 함께 진행한다. 복 대표는 “시민단체가 주최하면 시민사회에 관심이 많은 이들만 모이는 반면 센터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그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권 성향에 따라 교육이 끊기기도 했지만 지속성은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역 미디어 운동에 있어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이 다른 지역보다 조금 더 나은 이유는 기관과 함께한 경험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10년 정도 인프라가 있으면 기관이 힘이 생기고, 기관이 나서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맨땅에 헤딩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센터와 협력 외에도 부산 민언련은 국제신문과 협력해 국제신문을 읽고 비평하는 교육에도 실무를 담당한다. 언론 관계자들을 초청해 언론학교를 열기도 하고 부울경 언론노조와 함께 청년 저널리즘 캠프도 연다. 이 같은 교육은 지역 언론과 호흡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 복성경 부산 민언련 대표. 사진=금준경 기자.
▲ 복성경 부산 민언련 대표. 사진=금준경 기자.

유튜브 시대가 됐다. 그런데 지역 방송사를 통한 퍼블릭 엑세스가 유효할까? 복 대표는 “매체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라고 답했다. “다들 관용구처럼 ‘매체환경이 급변한다’고 얘기한다. 사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지만 새 기술을 배우게 하는 게 언론시민운동의 과제인지는 물음표다.”

그는 지역언론에 “언론, 특히 방송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고 묻히는 지역의 이야기를 공공미디어로서 다뤄야 할 역할이 있다. 유튜브에 먹방 찍어 올릴 게 아니라 지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지역의 이야기지만 세계적으로 소구력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지역 방송사가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했다.

복 대표는 끝으로 이렇게 강조했다. “공익성을 충분히 갖춘 언론이 부산에 서너개는 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의 역할은 나쁜 잡초만 뽑는 게 아니라 반드시 보호해야 할 풀을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 지역민이 지역을 아끼지 않으면 아무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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