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조능희 본부장)의 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된 후 노조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사측은 이례적으로 성명서까지 발표하는 등 노조를 자극하는 모양새다.

지난 18일 언론노조 MBC본부에 따르면 이번에 서울을 포함한 전국 19개 지부에서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조합원 총원 1633명 중 1523명이 투표(투표율 93.26%)해 85.42%의 찬성률을 보였다. 이는 지난 2012년 노조가 ‘공정방송’ 사수와 김재철 전 사장 퇴진을 위해 총파업에 돌입하기 전 파업 찬성률(71.2%) 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다만 이번 파업 찬성률이 4년 전보다 높았다고 하더라도 노조가 즉시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파업 찬반투표는 지난달 23일 열린 단체협약 관련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중지 결정으로 MBC본부의 합법적인 파업권 획득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24일 열린 MBC본부 전국대의원회에선 단협 관련 중노위 결정 이후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MBC본부에 소속된 전국 19개 지부별로도 의견 수렴 절차를 통해 1700여 조합원의 의견 수렴 절차도 거쳤다. 이어 MBC본부 서울지부는 지난 7일 대의원회를 열고 단체협약 체결과 노조파괴 저지를 위한 총파업 안건에 대해 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012년 5월7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총파업 100일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방송센터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노조는 지난 8일 노보를 통해 “파업 찬반 투표는 파업을 포함한 총력 투쟁에 대해 전체 조합원의 동의를 구하고, 동의가 구해지면 시기와 방법 등 전략·전술 일체에 대해서 조합 집행부에 전권을 위임한다는 취지로 진행될 것”이라며 “파업 찬반투표 실시 과정에서 집행부가 끊임없이 조합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긴밀히 소통할 것을 다짐했고, 향후 노조의 투쟁방향을 100% 조합원들과 공유해 현명하면서도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노조는 사측을 향해서도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하더라도 협상과 대화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고 노조는 언제든지 협상에 임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합법적인 파업권 발동을 위한 파업 찬반투표를 훼방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조합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사뿐만 아니라 지역 지부에서도 높은 파업 찬성률을 보인 것은 올해 사측의 ‘본사·지역사’ 공통교섭 원칙을 깬 임금협상과 지역 지부장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종료 통보 등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측은 지난해 12월 임금협상 진행 중에 교섭대표 노조이던 MBC본부에 타임오프 종료를 통보하고 본사 상근 집행부 5명 전원에 대해 업무 복귀 명령을 내렸다. 이어 이달 초 지역MBC 9곳의 노조 전임자에게도 타임오프 종료를 통보해 ‘공분’을 키웠다. 

노조는 사측의 지역 노조 지부장 업무복귀 명령에 대해서도 “지역MBC 사측이 문제를 풀기 위한 교섭도 아예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며 “지역MBC 노조도 사측의 노조 파괴 행위에 맞서 고용노동부와 노동위원회에 진정과 고소를 내는 한편, 지역 시청자와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해서 사측의 조치가 부당함을 알려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22일 전국대의원회에서 파업 찬반 투표 가결에 따라 사측이 오는 25일까지 노조가 제시한 단협 가합의안에 대한 협상을 거부하면 경고파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사측의 본사·지역사를 망라한 노조 탄압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회사에 대한 불만과 조합원들의 위기감은 높지만 지난 파업 경험과 노조의 압박에도 변함없는 사측의 태도로 비춰볼 때 노조의 파업 결의가 총파업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MBC본부 집행부 역시 높은 파업 찬성률로 합법 파업의 명분을 더욱 확고히 다지긴 했지만, 곧바로 제작거부 등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 사측과의 협상을 계속 시도한다는 방침이어서 구성원들 간의 파업에 대한 온도 차도 클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22일 전국대의원회에서 파업 찬반 투표 가결에 따른 향후 투쟁 방향과 전략을 논의한 결과, 오는 25일까지 노조에서 제시한 단협 가합의안에 대해 사측이 거부하거나 답변이 없으면 조능희 본부장부터 28일 경고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상당수 지역MBC에서는 신입사원 채용을 기존 호봉직에서 연봉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노사 간 갈등을 빚었고, 올해 임협에서 공통교섭 원칙이 깨지면서 지역사의 임금 격차도 커지는 등 사측의 지역 홀대에 대한 불만과 지역 공공성 붕괴에 대한 위기감이 높다. 그럼에도 섣불리 단체행동에 나서지 못했던 것은 사측이 파업 참가자에 대한 보복성 인사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지역MBC 노조 관계자는 “2012년만 해도 파업하면 변할 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4년이란 시간 동안 난장판과 좌절을 계속 경험하고 이게 축적되다 보니 분노와 함께 자조감도 커졌다”며 “서울은 파업 희생자가 많고 사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많은데 본사 낙하산으로 내려온 지역 사장들은 서울의 눈치만 보면서 본사가 하자는 대로만 하다 보니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MBC 관계자는 “노조가 강경하게 나갈 경우 사측 역시 하나하나 다 걸고넘어질 거라는 게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투쟁 분위기가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면서도 “지역의 경우 공동상무가 내려오고 새로운 사장이 와서 직원들에게 직무설명서 작성을 강요, 인사평가를 통해 저성과자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곳도 있어 직원들의 불만은 고조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MBC 사측은 노조의 압도적인 파업 찬성투표 결과에 대해 21일 성명서를 내고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방송사에서 파업을 획책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행태”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 가며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에 대하여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물론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의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