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조만간 파업 분위기 조성을 위한 동정 유발 이벤트가 펼쳐질 것이다. 집행부 몇몇이 선동의 판을 깔 것이다. 삭발 쇼를 하고, 단식 자리를 깔고,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 가고…”

지난달 28일 MBC 사측은 ‘노조 집행부의 피해자 코스프레 쇼’라는 자극적인 표현의 보도자료를 내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파업까지 상상, 묘사하며 노조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조능희 본부장)는 ‘단체협약 체결과 노조파괴 저지를 위한 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됨에 따라 지난달 25일까지 노조에서 제안한 단협 가합의안에 대한 논의를 사측이 거부하면 28일부터 경고파업에 돌입할 것임을 예고했다.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월18일 서울 여의도 방문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종문 녹취록’ 진상규명과 안광한 사장 해임을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결국 사측은 노조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25일 공문을 통해 “지명파업이든 전면파업이든 파업이 시작되는 순간 협상 자체도 파행이 시작될 것”이라고 통보했지만, 노조는 29일 사측과 단협에 임하기로 하면서 28일 파업을 단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측은 마치 이날 노조가 파업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노조 집행부가 노조원들을 희생시켜서라도 부활을 꿈꾸는 해방구 문화와 노영 문화는 더 이상 MBC에 발을 붙여서는 안 되는 좀비 문화”라는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노조를 자극했다. 실제 벌어지지도 않는 일을 가정해 ‘피해자 코스프레로 분위기 조성을 위한 쇼’를 벌인 건 MBC 사측이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노조 파업하기도 전에 호들갑, 사측의 ‘피해자 코스프레’

MBC가 노조에 대해 연일 쏟아내고 있는 사측의 보도자료를 보면 ‘파업할 테면 해보라’는 태도다. 이미 사측은 지난달 29일 “파업의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으며 쟁의행위금지 가처분신청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사측은 노조 측에 “방송법의 정신과 노동법의 법규에 따라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으로 바로 잡기 위한 단체협약안을 제시했다”고 했지만, 사측의 단협안은 노사가 지난 2년 동안 14차례 만나 일부 의견의 일치를 본 ‘가합의안’에서도 대폭 후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31일 언론노조 MBC본부가 발행한 노보에 따르면 앞서 10일 사측이 제시한 단협안에는 그동안 노사 간 단협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던 ‘공정방송’ 관련 조항이 통째로 사라졌다. 지난 2012년까지 단협에 존재했던 △공정방송의 실현 의무 △방송 독립성 유지 △방송강령 및 윤리강령의 준수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 △공정방송협의회 등 ‘공정방송’ 관련 조항이 모두 삭제된 것이다. 

서울 상암동 MBC 미디어센터 앞 광장에 있는 조형물 ‘스퀘어 M-커뮤니케이션’은 미디어가 휴머니즘에 기반해 제도적 틀을 벗어나 막힘 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MBC의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2012년 ‘공정방송 회복과 낙하산 사장 반대’를 위한 노조의 파업 이후 법원이 ‘공정방송 조항은 언론 노동자의 중요한 근로조건’이라고 수차례 인정했음에도 사측은 이를 무시하고 다시금 MBC 직원들의 근로조건을 침해하는 단협안을 제시한 셈이다. 

지난 2014년 서울남부지법은 “방송사에 있어서 공정방송 의무는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공정성의 보장 요구는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며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그 준수 여부는 근로관계의 자율성에 맡겨진 사항이 아니라 사용자가 노동조합법 제30조에 따라 단체교섭의 의무를 지는 사항”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공정방송’ 조항 전부 삭제하고 상식적인 단협안?  

아울러 사측은 노조의 홍보활동에 대해 ‘블로그나 SNS 등을 이용해 회사에 대한 비방 또는 명예를 실추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거나, ‘사회통념상 징계사유로 봄이 정당하다고 판단될 때’ 조합원을 징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회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조합활동을 끊임없이 탄압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반발이 크다. 

노조는 사측의 단협안에 대해 “이 정도면 노조의 정상적인 활동은 물론 조합원의 의사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말살하겠다는 것”이라며 “회사의 제재가 가능한 사안은 전반적으로 추상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 통상적인 조합활동과 단체행동권이 현저히 제약받을 수밖에 없고, 징계·해고·인사에 대해 회사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사측이 노조의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는 ‘부당노동행위’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사측은 지난달 14일 노조의 파업 찬반 투표소를 몰래 촬영하다가 발각돼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외려 사측은 “안전관리 업무를 정상수행 중인 도급업체 요원들을 고성으로 위협해 업무를 방해했다”며 “법규 위반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주장했다. 현장에 동행했던 미디어오늘 기자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현주건조물 침입 및 업무방해죄’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 동영상을 첨부한 미디어오늘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노조 관계자는 사측 부당노동행위 의혹에 대해 합당하게 물었을 뿐 ‘고성’은 없었으며, MBC 측 요원들은 불법적 ‘사찰 업무’를 하다 자진해서 도망갔다. (관련기사 : [단독] MBC 사측, 노조 총파업 투표 몰카 찍다 들통)

노조 사찰에 투표 개입, 계속되는 부당노동행위 의혹

또한 사측이 보도자료를 통해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 방식으로 병행한 모바일 투표에 대해 “노조원 사이에서조차 운영 미숙으로 인해 투표정보 노출을 우려하고, 해킹이나 투표 결과 조작 가능성도 대두됐다”고 적시한 것에 대해 노조는 “회사가 조합원과 조합활동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개입한 것으로 발뺌할 수 없는 부당노동행위의 확증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회사는 파업 찬반투표 와중에 기표소를 불법채증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더니, 가결 이후에는 ‘출입제한’으로 노조의 정상적인 홍보 활동을 가로막고 급기야는 ‘모바일투표’의 적법성까지 따져 묻고 있다”며 “이 모든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엄중한 법의 심판을 묻고,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끝까지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이어 “회사 성명서만 보면 조합 더러 파업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지, 아니면 회사가 정말 내심은 조합이 총파업을 했으면 하고 바라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며 “조합은 공영방송 MBC 구성원들이 보도·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복원하고, 회사가 무차별하게 전권을 휘둘러 구성원들의 숨통을 조일 수 있는 그런 단협이 아니라 지난 20년간 MBC 노·사가 서로 존중했던 단협을 복원해내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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