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보험사 광고에서 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공포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걸 알면서도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국가와 사회가 내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자살률 1위이며, 노인자살률은 한국 전체 평균자살률의 2.5배에 달합니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가 65세가 되는 2020년부터 노인자살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한국에선 100세까지 산다는 게 두려운 일입니다. 반면 공적연금이 잘 갖추어진 외국에선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건 축복이자, 행복한 일이죠. 우리 모두는 언젠가 늙어서 노인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문제를 개선하는 건 우리의 노후를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디어오늘은 국민연금이 가진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책을 찾기 위한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인터뷰] 김성주 민주당 의원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해도 기금 고갈 못 막는다”

지난 5월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 영업은 전 사회적인 공분을 샀다. 특히 남양유업 본사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붓는 전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불매운동까지 일어나면서 남양유업 매출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자연스레 남양유업 주가는 급락했고, 남양유업의 시가총액도 한 달 사이 약 1500억원 이상 날아갔다. 주당 100만원 이상 종목인 이른바 ‘황제주’ 자리도 내줬다. 
 
그런데 불똥은 국민연금으로도 튀었다. 4월 말 당시 국민연금이 5.4%의 남양유업 지분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국민연금이 공적 기관이라면, 공공기금을 부도덕한 기업에 출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남양유업 사태는 기업의 '갑을횡포'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사회책임투자의 중요성도 보여줬다. 국민연금 투자가 손실을 입으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귀결된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사회투자책임을 지향하는 국민연금이 이런 기준에 어긋나는 기업에 투자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 남양유업 김웅 대표이사(가운데 오른쪽)와 본부장급 임원들이 5월 9일 오전 서울시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말 그대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투자를 뜻한다. 투자 기업의 재무적 지표 외에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등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성도 고려하는 투자 방식이다. 즉 금융적 성과뿐만 아니라 사회적 선이라는 목적을 혼합하는 투자전략의 하나다.
 
남양유업 사태처럼 사회책임투자 논란은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의 백혈병 문제도 이런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로 삼성전자에 4년간 9600억원을 투자한 것을 비판했다. 또한 네덜란드의 공무원연금을 운용하는 APG도 삼성전자에 이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외국 연기금은 사회책임투자를 매우 중요시 한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의 노동조합과 종교계 펀드들은 인종차별정책이 벌어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업이나 이들과 거래하는 기업에 투자하기를 거부했다. 80년대 들어 뉴욕,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등 주정부들은 각각 수백억달러 규모의 연기금을 남아공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현재도 세계적인 대형 연금인 미국 Calpers, 네덜란드 ABP, 노르웨이 GPFG, 캐나다 CPPIB 등은 사회책임투자에 앞장서고 있다. 영국은 2000년 연금법 개정을 통해 ESG 투자 분석과 주주권 행사를 연금 펀드에 독려했다. 또한 국제연합(UN)은 2006년 책임투자원칙(UNPRI)를 선포했고, 한국 국민연금을 포함한 2000개 기관(7월 기준)이 이 원칙에 서명했다. 
 
국민연금도 사회책임투자를 지향하고 있지만 여러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지난 3월 말 기준 국민연금공단이 운용하는 기금은 405조9000억원이다. 이중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약 5조2443억원으로 1.3% 수준이다. 5조원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국민연금이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인 것을 고려하면 아직 미약하다. 또한 투자 기업들이 대부분 대기업 위주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돼 왔다. 
 
국민연금기금운용발전위원회는 지난 21일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초기 단계에 있는 국민연금의 사회적 책임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기적 차원에서 ESG 평가를 위한 분석과 모형을 개발하고, 이를 근거로 투자대상 기업을 물색하며 주주권도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사회책임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인 근거를 마련하자는 움직임도 추진되고 있다. 이목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 16일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의 원칙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의 공시를 의무화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연금 운용 시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사회책임 요소를 고려하고, 기금운용위원회가 고려 여부를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의원은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는 공공자금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도 제고한다"면서 "앞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하고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사회책임투자 비율을 점차 늘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개정안은 사회책임투자뿐만 아니라 국내외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모든 부분에 적용이 된다"면서 "연금이 투자하는 모든 자본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회책임투자를 왜 안했는지 공시하면 투자의 책임성도 명확해져서 사회책임투자의 확대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