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보험사 광고에서 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공포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걸 알면서도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국가와 사회가 내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자살률 1위이며, 노인자살률은 한국 전체 평균자살률의 2.5배에 달합니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가 65세가 되는 2020년부터 노인자살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한국에선 100세까지 산다는 게 두려운 일입니다. 반면 공적연금이 잘 갖추어진 외국에선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건 축복이자, 행복한 일이죠. 우리 모두는 언젠가 늙어서 노인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문제를 개선하는 건 우리의 노후를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디어오늘은 국민연금이 가진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책을 찾기 위한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2013년은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매우 중요한 해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제도 개선 방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1차 재정 추계시기였던 2003년엔 정부가 12.9%의 보험료율 인상안을 냈다가 '국민연금 폐지운동'에 부딪쳐 무산됐다. 2차인 2008년에는 보험료율 대신 수급 연령을 늦추고 소득대체율(이하 급여액)을 대폭 축소(70%→40%)했다. 
 
그리고 올해가 바로 3차 추계 시기다. 지난 3월 발표된 재정추계 결과는 2차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연금 기금이 2043년까지 쌓이다가, 수급자가 많아지면서 2060년에 소진된다는 예측이다. 정부는 이에 따른 제도 개선방안을 오는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논의가 또다시 점화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려서 기금 소진을 최대한 연기하자는 주장이다. 실제로 국민연금 제도 개선계획을 논의하는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8일 보험료 인상안을 다수의견으로 채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인상률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보험료율을 장기적으로 13까지 올리는 방안이 논의됐다.    
 
이렇게 되면 월 소득이 200만원인 가입자의 월 보험료는 18만원(9%)에서 8만원 올라 26만원(13%)을 내게 된다. 월 소득이 400만원이면 여기에 2를 곱하면 된다. 다만 직장 가입자의 경우 보험료율의 절반(4.5%)을 사업자가 분담하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 나라별 공적연금 보험료율 현황 (OECD, Pensions at a Glance 2011)
 
보험료율 인상안은 국민연금 장기발전방안을 논의하는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에서 나왔다. 복수의 위원들에 따르면 여러 방안 중에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안도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위원회는 현재 두 가지 방안 정도로 의견을 모아 7월 중 보건복지부에 최종 전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는 재정 안정을 위해 수년내에 보험료율 인상을 시작해 13%수준까지 올려야 한다는 안이다. 또 다른 안은 보험료율 조정이 아니라 부과대상 소득상한을 올리고, 출산율 등을 끌어올리는 등 국민연금 제도 안팎의 환경을 개선하자는 내용이다. 
 
보건복지부는 제도발전위의 권고안을 반영해 9월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후, 10월말까지 국회에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보험료율 인상을 주장하는 이른바 '재정 안정론자'들은 기금을 더 늘려 소진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현 정부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나온 바 있다.  
 
김용하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장(전 보건사회연구원장)은 지난 3차 추계 발표 직전 한 토론회에서 "2018년까지 보험료율을 12.9%까지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인상 시기는 지금 당장은 어렵고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국민연금 기금 규모 추정 그래프. 이른바 '재정 안정론'들은 보험료율 인상으로 국민연금 기금을 더 모으면 기금 소진시기를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건호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현재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높은 상황 속에서 보험료율 인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단 정부가 국민적인 반발을 무릅쓰는 무리수를 둬야 하는데, 국회 통과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인수위 시절 '국민연금 기금을 기초연금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방안이 보도되면서 한 차례 논란을 겪은 박근혜 정부에겐 부담스러운 사안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장기적으로 보면 급여율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 부담율(보험료율)을 높이는 건 찬성한다"며 "그러나 현재 급여율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부담율만 높이는 건 반대"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차원에서 아직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큰 틀에서 기본적인 입장은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여야와 진보·보수를 떠나 국민연금에 대한 인식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단 미래에 기금은 소진될 것이며, 이 시점을 늦춰서 연착륙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이를 위해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도 동의하지만, 인상 시기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역에서 열린 '노후를 지키기 위한 국민연금 1045운동' 전국 캠페인 선포식에서 참가 어르신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제도발전위원인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은 "760만명의 베이붐 세대가 퇴직하기 전에 보험료를 부담하게 해야 기금 소진을 늦출 수 있다"면서 "2015년부터 10년 안에 보험료율을 12.9%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오건호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보험료율 인상은 5~10년 후부터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오 실장은 "아직 기금 소진은 약 50년 남았다"면서 "5~10년 후인 4, 5차 추계 때 논의를 시작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폐지 주장과 기초연금 논란까지 있는 데 지금 인상을 논의했다가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만 더 조장한다는 얘기다. 
 
보험료율 인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기금을 쌓아두는 것이 유일한 재정 안정화 방안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제도발전위원인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금융소득, 임대소득 등으로 소득대상의 범위를 넓히거나, 부과대상 소득상한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보험료율  2~3%를 인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출산율, 고용률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국민연금제도는 사회적 지속성 토대 위에서 안정화되는 것이지 재정 안정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진 시기에 기금을 현금화해야 하기 때문에 쌓아두는 게 미래에 더 위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험료율 인상을 제외하고 제도발전위에서 합의된 개선안도 있다. 위원회는 장애연금, 유족연금 급여율을 높이고, 납부예외자와 적용제외자(전업주부) 등이 다치거나 사망하더라도 유족·장애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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