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보험사 광고에서 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공포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걸 알면서도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국가와 사회가 내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자살률 1위이며, 노인자살률은 한국 전체 평균자살률의 2.5배에 달합니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가 65세가 되는 2020년부터 노인자살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한국에선 100세까지 산다는 게 두려운 일입니다. 반면 공적연금이 잘 갖추어진 외국에선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건 축복이자, 행복한 일이죠. 우리 모두는 언젠가 늙어서 노인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문제를 개선하는 건 우리의 노후를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디어오늘은 국민연금이 가진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책을 찾기 위한 기획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국민연금 기금은 언젠가 고갈된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국민연금은 향후 고갈되게 설계되어 있고,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노후 대비는커녕 당장 생활이 어려운 국민들에게 이런 소식은 충격적이며, 강제로 걷어가는 국민연금 보험료에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KBS가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16.5%가 '노후에 받을 국민연금이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지금보다 줄어들거나 아예 못 받을 것'이라는 예상은 83.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전국 20대 이상 성인 남녀 1107명, 95% 신뢰수준 ±3.7%p)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역에서 열린 '노후를 지키기 위한 국민연금 1045운동' 전국 캠페인 선포식에서 참가 어르신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통계는 국민들이 국민연금에 갖고 있는 불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노후에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불신은 매달 월급에서 원천징수하는 국민연금을 수탈자로 둔갑시킨다. 지난 2월 이런 불만을 자극하며 시작한 시민단체 납세자연맹의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엔 9만여 명이 동참하기도 했다. 
 
실제 국민연금은 고갈될 예정이다. 출산율과 제도변화에 따라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정부는 2060년으로 추산하고 있다. 5년마다 국민연금 장기 재정전망 결과를 발표하는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지난 3월 이와 같은 예측결과를 공개했다. 
 
2012년말 기준 392조원인 적립기금은 2043년 최대 2561조원까지 증가했다가 수급자(노인)가 많아지면서 가파르게 떨어진다. 저출산 추세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도 한몫을 한다. 
 
   
▲ 국민연금 적립금 현황.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2008년), 국민연금연구원.
 
그러나 전문가들은 적립기금 고갈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60년대 베이비붐으로 인구 폭발이 있었고, 80년대·외환위기 이후 인구 급감이 있었다"며 "인구 쇼크 때문에 국민연금 기금은 적립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1988년 도입돼 역사가 짧은 한국의 국민연금은 애초에 예비비 차원으로 기금이 적립되다가 고갈되도록 설계됐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설계를 그렇게 했기 때문에 기금이 고갈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기금 고갈이 아니라 기금 소진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도입 시기에는 수급자 보다 납부자가 많기 때문에 기금이 적립되다가 납부자들이 노인이 되면서 기금이 점차 소진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우려대로 기금이 고갈되면 국민연금을 못받게 되는 것인가? 정부는 물론 복지 전문가들은 모두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기금이 없어지면 금여를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선진국 사례를 보더라도 연금급여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가가 책임지고 지급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공단도 홈페이지의 '진실과 거짓' 퀴즈에서 "정부는 5년마다 재정계산을 통해 40~50년 후의 연금재정을 예측해 미리 대비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반드시 지급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지급이 보장된다는 얘기다. 
 
   
▲ 국가별 국민연금 방식. 김연명 중앙대 교수 제공.
 
이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이해가 쉽다. 기금을 적립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 5개(한국, 스웨덴, 일본, 미국, 캐나다)밖에 없다. 나머지 국가들은 그해 납부자에게 보험료를 걷어서 그해 바로 수급자에게 지급하는 '부과식' 국민연금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100년이 넘는 연금 역사를 가진 유럽국가들의 대부분은 부과식이다. 2003년 독일은 14일치의 기금만 보유하고 있었지만 연금은 문제없이 지급됐다. 납부액 중 부족한 액수는 조세로 충당했다. 이는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연금 지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건복지부는 "미국, 스웨덴,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들도 제도 운영 초기에는 많은 적립기금을 보유했으나, 연금제도가 성숙하면서 자연스럽게 적립기금이 거의 없이 부과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민연금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선 '국가의 지급 보장 법제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원종현 국회 입법조사처 연구위원은 "국민연금과 달리 특수직역연금(공무원·군인연금) 가입자는 법에 지급 보장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납부하는 연금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서 "국민연금도 지급 보장을 명문화해서 가입자의 불안감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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