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토는 항상 이거야. 한 줄도 쓰지 않는 날이 없도록! 때때로 내 뮤즈가 잠들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그녀가 잠이 깰 때 언제나 더 활발해지지 때문이지. 나는 지금도 몇 곡을 더 쓰고 싶어. 그 다음에는 늙은 아이처럼 친절한 사람들 속 어딘가에서 지구 위의 내 여정을 마치고 싶네.”베토벤이 친구 베겔러에서 이렇게 쓴 것은 1826년
1984년 개봉되어 전세계에 모차르트 붐을 일으킨 영화 중 가장 재치 있게 연출된 장면을 보자. (물론 픽션이지만) 영화에서 모차르트는 허구헌 날 술에 취해 있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아내 콘스탄체는 집을 나갔다. 장모인 체칠리아 베버가 모차르트를 격렬하게 비난한다. 깩깩대는 장모의 잔소리는 2막, 밤의 여
빈 필하모닉은 해마다 1월 1일 전세계 40개국의 4억여 시청자에게 생중계되는 ‘신년 음악회’로 유명하다. 를 연주하기 직전, 지휘자와 빈필 단원들은 청중을 향해 인사말를 건넨다. “빈 필하모닉과 제가 여러분께 새해 인사 드립니다.” 마지막 곡인 행진곡>
그리 춥지 않은 크리스마스 이브지만 마음이 춥다.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을 노동개혁이라 부르는 이상한 세상이다. 구 인권위원회 옥상에서 200일 가까이 농성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을 비롯, 서울에서만 세 군데서 고공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MBC 노동조합도 존폐의 기로에 몰렸다. 임금협상 도중에 집행부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자 22일부터
피아노 음악의 역사에서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비르튜오소였다. 오늘날 ‘리사이틀’이라 부르는 피아노 독주회를 처음 연 사람이 바로 리스트였다. 그때까지 음악회는 여러 음악가가 함께 출연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1840년 6월 9일, 런던의 하노버 스퀘어 홀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리스트는 혼자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약 50년 동안 피아노는 엄청난 속도로 진화했고, 이에 비례하여 피아노 음악도 풍성해졌다. 베토벤의 이후에 나온 피아노 협주곡, 하면 일단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이 떠오르는데, 이 두 곡은 왜 이렇게 다를까? 그 사이에는 어떤 피아노 음악들이 세상에 나왔을까? 이 시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는 모차르트, 클
모차르트, 베토벤을 거쳐 낭만시대로 음악이 확장되면서 피아노는 단연 악기의 왕으로 떠올랐다. 17세기초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포리(1655-1731)가 처음 발명한 피아노는 정식 이름이 ‘그라비쳄발로 콜 피아노 에 포르테’(크게도 작게도 연주할 수 있는 그라비쳄발로)였다. 이 때문에 초기 피아노는 ‘피아노포르테’나 &
암울한 시대, 음악은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주는 강력한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시벨리우스(1865~1959)는 러시아의 압제 아래 있던 20세기 초, 핀란드인의 긍지와 자존심을 살려 낸 작곡가로 존경받는다. 올해, 시벨리우스 탄생 150년을 맞아 지휘자 김대진과 수원시향이 그의 교향곡 전곡에 도전했다. 우리가 즐길 만한 클래식 레퍼토리를 넓혀 준 고마운
교회 소나타라는 장르는 다소 생소하다. 모차르트가 쓴 17곡의 교회 소나타(Church Sonata, 또는 복음 소나타 Epistle Sonata)는 한 악장으로 된 기악 합주곡이다. 이 중 16번 C장조는 교향곡을 무색케 하는 찬란한 작품이다. 모차르트 교회 소나타 16번 C장조 K.329(베르트랑 드 비유이 지휘 비엔나 라디오 교향
조성진의 쇼팽콩쿨 실황음반이 판매 차트에서 인기 아이돌 그룹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내년 2월로 예정된 그의 귀국 연주회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조성진의 쾌거로 우리나라에 클래식 붐이 일고 있다니 반갑다. 조성진이 이번 콩쿨 결선에서 연주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어떤 곡일까? 최소한의 사전지식을 갖고 들으면 좀 더 잘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1. 도이치 그라모폰이 11월 발매한 조성진의 ‘2015 쇼팽 콩쿠르 우승 실황’ 앨범은 인터넷 음반 판매 차트에서 아이유 등 톱 아이돌 가수의 새 음반을 제치고 1위에 올랐고, 내년 2월 2일로 예정된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는 티켓을 오픈하자마자 50분만에 좌석 2500석이 매진됐다.#2. 10월
조성진의 쇼팽 콩쿨 우승에 모두 환호하는 가운데, 폴란드에서 날아온 또 하나의 낭보가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 정부가 주는 글로리아 아르티스상이 한국의 작곡가 류재준에게 돌아간 것. 이 상은 20세기 작곡계의 거장인 펜데레츠키와 피에르 불레즈, 지휘의 황제 발레리 게르기에프, 피아니스트 부흐빈더와 윤디리, 영화 의
모차르트의 삶에서 가장 우스꽝스런, 씁쓸한, 아니 무척 화나는 풍경이 있다. 1778년, 22살 모차르트는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만하임 궁정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사랑하는 알로이지아와 생이별을 한 채 어머니와 함께 그해 3월 파리에 도착했다. 샤보 백작부인의 집에 초대 받았을 때의 일이다.“저는 도착해서 30분 동안 온기라고는
“우리 음악가들은 유럽 연합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정치인들은 못 하는 거죠?”헝가리 태생의 지휘자 게오르그 숄티(1912~1997)는 1992년 버킹검 궁에서 열린 80회 생일 축하음악회에서 말했다. 그를 존경하는 세계의 음악가 13명이 함께 바그너
1776년 7월 21 저녁, 잘츠부르크 롤레트 교회의 앞뜰. 잘츠부르크 시장을 지낸 지그문트 하프너씨의 누이동생 엘리자베트의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축하 음악회가 열렸다. 신랑은 남부 티롤 출신의 상인 프란츠 슈페트. 많은 하객들이 박수를 치는 가운데 모차르트가 이끄는 악단이 입장했다. 이들이 연주한 곡은 당당하고 상쾌한 행진곡 D장조였다. 모차르트 행진곡
“저는 운율에 맞게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시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능숙하게 다뤄서 제 마음을 보여 줄 수 없습니다. 화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짓과 손짓으로 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무용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리를 통해서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음악가이기 때문입니다.&rd
이번 주말부터 추석 연휴다. 찾아 뵐 부모님이 안 계신 사람도 많을 거고, 밀린 월급 못 받아서 더 서러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는 드보르작이 미국에 머물며 고향 보헤미아를 그리워하며 작곡했다.드보르작은 우리 나라에서 좀 더 인기가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미국에서 작곡한 음악들은 인디언의 전통 선율과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이해하려면 오페라를 먼저 보는 게 좋다고 한다. 협주곡의 주제는 오페라 등장인물처럼 나름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어울리고 갈등한 뒤 더 높은 차원에서 종합되는 과정이 오페라의 구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본질적으로 오페라 작곡가였다. 그는 1778년, 만하임에서 아버지에게 썼다. “제 머릿속에는
루트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은 결혼하지 않았다. 베토벤에게 호감을 느끼던 귀족 여성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평민 출신인 그를 피해서 달아나곤 했다. 무엇보다 천형과 같은 청각장애가 문제였다. 더 이상 결혼을 꿈꾸지 않을 나이인 47살이 됐을 때 베토벤은 지인에게 말했다.“제 경험에 따르면 부부 중 어느 한쪽이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 것을 한
“우리는 길 위의 새들이에요, 우리는 떠나야만 해요.”모차르트의 아리아 ‘제 감사를 받아 주세요’ K.383은 음악가들을 ‘길 위의 새들’이라 불렀다. 멀리 연주 여행을 떠나는 음악가가 고향의 후원자들에게 바치는 이 노래는 따뜻한 우정과 작별의 아픔을 노래한다. 당시 음악가들은 마차를 타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