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길 위의 새들이에요, 우리는 떠나야만 해요.”

모차르트의 아리아 ‘제 감사를 받아 주세요’ K.383은 음악가들을 ‘길 위의 새들’이라 불렀다. 멀리 연주 여행을 떠나는 음악가가 고향의 후원자들에게 바치는 이 노래는 따뜻한 우정과 작별의 아픔을 노래한다. 당시 음악가들은 마차를 타고 다녔고 유럽을 벗어날 수 없었다. 

   
 
 

 

모차르트 ‘제 감사를 받아 주세요’ K.383                            
https://youtu.be/RF8AwIDY_ok (소프라노 신시아 지덴)

 

 

 

요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은 대형 여객기를 타고 세계를 누빈다. <길 위의 오케스트라>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LSO)의 플루트 연주자 가레스 데이비스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묶어서 펴낸 책이다. LSO의 단원들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길 위의 새들’이다. 전세계가 직장이고 여행 시간이 출퇴근 시간이라 치면 평균 20년을 길에서 보내는 셈이다. 빡빡한 연주일정 때문에 식당과 쇼핑 이외의 관광을 즐기기 어렵지만, 음악과 함께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는 이들의 삶은 무척 근사해 보인다.  

가레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추억을 풀어놓는다. 서울은 뉴욕과 런던을 합쳐놓은 것처럼 활기찬 곳이었다. 잠들지 않는 도시가 아니라 아예 앉을 생각도 하지 않는 도시 같았다. 그는 야시장의 활력에 놀랐지만, 완전히 다른 문화에서 묘하게 편안함을 느꼈고 환영받는 느낌을 받았다. 음식점에서 주문을 못해서 당혹스러워 하자 처음 보는 한국인들이 잽싸게 다가와서 도와주었다. 그들은 거대한 주전자에 담긴 무언가를 주문해 주었는데 - 막걸리! - 어느새 함께 웃으며 떠들었고 몇몇은 식탁 위에서 춤까지 췄다. 새벽 3시, 처음에 음식 주문을 도와주었던 한국 사람들은 기어이 돈까지 내겠다고 했다.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이날 밤 친구가 되어 헤어진 것이다.

가레스는 정많고 역동적인 한국 사람도 감동이었지만 정확하고 예의바른 일본 사람들도 놀라웠다. 모든 시설이 새롭고 거대한 중국은 완전히 외계의 별 같았다. 우리에게 유럽이 신기한 것 이상으로 그들에게 동아시아의 세 나라는 별천지였다. 여행은 때로 몹시 피곤하다. 24시간 내내 이동할 때고 있고, 아이슬랜드 화산 폭발로 공항이 폐쇄됐을 때처럼 엄청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오래 집을 떠나 있으니 외로울 때도 많다. 그러나 가레스는 음악의 사절로 세계를 누비는 오케스트라의 삶이 즐겁다는 것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가레스는 뉴욕 카네시홀 기록보관서에서 1912년 LSO의 첫 미국 순회연주 기록을 찾아냈다. 게다가 100년전  LSO의 팀파니 연주자였던 찰스 터너와 플루트 연주자 헨리 니스벳의 일기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가레스의 연주여행기는 이제 LSO의 역사의 일부가 되어 책으로 남을 가치가 있었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하와 충돌해서 침몰한 바로 그 해, LSO 단원들은 발틱호를 탔기 때문에 간발의 차이로 대서양에 익사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는 여객기가 없었기 때문에 대서양을 건너려면 8일 동안 멀미와 싸워야 했다. 뉴욕에 도착할 때 대부분의 단원들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최초의 근대적 지휘자로 꼽히는 아르투르 니키슈는 미국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미국의 흥행업자들이 초청한 것은 니키슈였고, LSO는 니키슈가 자기 재량으로 선택한 오케스트라였다. 슈퍼스타 지휘자들이 청중의 인기와 흠모를 독차지하며 콘서트 마케팅의 주역이 되는 세상은 이미 오고 있었다. 뉴욕 연주는 비교적 성공이었다. 그러나 보스톤에서 LSO 단원들은 쓴맛을 봐야 했다. 보스톤의 언론들은 니키슈의 시적 표현력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LSO는 노골적으로 폄하하고 적대시했다. LSO의 첫 미국 연주여행은 피곤했다.  
   
가레스는 최근 LSO를 이끌어 온 콜린 데이비스,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존 엘리엇 가디너, 발레리 게르기에프 등 마에스트로에게 깊은 애정을 표현한다. LSO의 단원들은 지휘자와 매우 예민하게 교감하기 때문에 지휘봉을 크게 휘두를 필요가 없다. 눈썹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레스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원하는 소리를 이끌어 내는 콜린 데이비스를 찬탄한다. 하이팅크는 말이 적지만 한 마디로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는 슈베르트 교향곡 5번을 리허설 할 때 되풀이 연주하라고 요구하며 점점 동작을 작게 했다. 그가 단원들에게 말했다. “내가 동작을 취하지 않을수록 소리가 더 좋아요.” 이러한 하이팅크를 LSO 단원들은 사랑한다. 가레스는 지휘자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 놀랍다고 한다. 가디너가 지휘봉을 들면 스위치가 찰칵 켜지면서 전혀 다른 오케스트라가 된다. 가디너의 지휘봉 아래서 베토벤의 교향곡은 초연 때 일으켰을 게 분명한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게르기에프는 어떤 곡도 똑같이 지휘하는 법이 없다. 그는 손을 파르르 떨며 지휘하는 걸로 유명한데, 이 손짓을 LSO 단원들이 어떻게 따라가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사실은 나도 몹시 궁금했다!) 가레스는 익살스레 썼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1파운드씩 받았다면 지금쯤 나는 백만장자가 됐을 것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여러분은 그의 손을 주시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그의 눈이다.”   

음악은 인류 공통의 언어다. 1790년, 하이든이 런던으로 떠나기 직전 모차르트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모차르트는 하이든이 연로한데다 영어도 할 줄 모르니 고생하실 거라고 말한다. 하이든이 능청맞게 대답한다. “내 음악은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지.”

LSO의 중국 투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LSO의 단원들은 베이징 중앙음악원에서 매스터클래스를 열었다. LSO 단원들은 중국말을 못 했고 학생들은 영어가 서툴렀는데, 통역마저 없었다. ‘에스프레시보?’(표정을 담아서?) ‘몰토 에스프레시보!’(많은 표정을 담아서!) 이탈리아말로 된 음악 용어만으로 대화하며 3시간 동안 연습했다. 연습을 마칠 때가 되자 모두 환하게 웃었다. 엄청난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LSO 단원들과 중국 학생들은 음악을 통해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한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맑고 푸른 가을하늘로 수많은 ‘길 위의 새들’이 날아 올 것이다. 언어와 국경과 이념과 계층을 넘는 음악혼이 인류를 좀 더 가깝게 이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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