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대, 음악은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주는 강력한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시벨리우스(1865~1959)는 러시아의 압제 아래 있던 20세기 초, 핀란드인의 긍지와 자존심을 살려 낸 작곡가로 존경받는다. 올해, 시벨리우스 탄생 150년을 맞아 지휘자 김대진과 수원시향이 그의 교향곡 전곡에 도전했다. 우리가 즐길 만한 클래식 레퍼토리를 넓혀 준 고마운 시도였다. 10월 23일에는 교향곡 2번을 연주했는데, 특히 피날레는 완벽한 호흡으로 연주자와 청중이 하나 되는, 벅찬 감동의 순간을 연출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D장조 Op.43
https://youtu.be/ehzVw4iavXY (2악장 9:20부터, 3악장 22:14부터, 4악장 27:06부터)

1902년 3월 8일, 헬싱키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 D장조가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됐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핀란드의 자치권을 폐지하고, 의회와 언론을 탄압하고, 러시아어를 강요하는 등 핍박을 가하고 있었다. 2년 전 초연된 교향시 <핀란디아>는 아직 연주 금지였다. 핀란드 민중을 선동한다는 이유였다. 차디찬 억압의 나날이었지만 핀란드 사람들의 혼은 얼음장 아래 흐르는 물처럼 살아 있었다.

새 교향곡의 피날레가 끝났을 때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평론가들은 “절대적인 걸작”, “모든 예상을 뛰어넘은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곡은 그의 일곱 교향곡 중 지금도 가장 널리 사랑받는다.

   
▲ 1900년 무렵의 시벨리우스
 

1901년 2월, 시벨리우스는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의 라팔로를 여행했다. 우울한 나날, 몸과 마음이 엉망이었던 그는 이탈리아 해안의 휴양지에서 휴식을 찾았다. 교향곡 2번은 그때 착수했다. 남쪽 나라의 자연에서 잉태된 작품이라 해서 이 곡을 시벨리우스의 ‘전원’ 교향곡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저변에 흐르는 우수어린 분위기, 강렬한 피날레로 통합되는 전체의 구성으로 볼 때 당시 핀란드 현실에 대한 작곡가의 단호한 응답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1악장은 현악기와 목관의 대화로 시작한다. 목가적인 분위기지만, 한숨과 탄식을 속으로 삼키는 느낌도 있다. 핀란드의 자연을 노래하는 듯한 모티브들이 모자이크처럼 펼쳐진 뒤 우수어린 첫 주제로 돌아온다. 2악장은 현의 피치카토와 목관의 민요가 어우러지고, 변화무쌍한 템포와 강약으로 핀란드 민중의 아픔을 노래한다. 3악장은 마지막 피날레를 이끄는 전주곡이라 할 수 있다. 아주 빠른 패시지에 이어 ‘느리고 부드럽게’(Lento e soave)라고 표시된 부분에서는 호른을 배경으로 오보에, 플루트, 첼로가 차례로 노래한다. (23:48, 26:24) 조용한 선율에 이토록 깊은 사랑을 담았다니, 이 교향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 아닐까?

앞의 세 악장을 지배하던 우수어린 분위기는 마지막 피날레에서 걷잡을 수 없는 환희로 폭발한다. 현악이 주제를 노래하면 거대한 심호흡에 이어 금관이 찬란하게 포효한다. 구름을 뚫고 솟구쳐 파란 하늘을 마주한 기쁨이랄까, 눈물이 범벅된 채 웃고 있는 얼굴이라고 할까. 이 대목의 금관은 우리의 ‘아리랑’과 비슷한 느낌이라 더욱 흥미롭다. 브루크너의 피날레를 연상케 하는 엄청난 클라이맥스에 이어 바이올린의 트레몰로 아래 첼로와 콘트라바스가 첫 주제를 행진곡처럼 수놓고 금관이 가세하는 끝부분은 환희의 극치다.

이 피날레는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시대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과 같은 느낌이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상당히 무식한 해설로 보일 수 있지만, 이 교향곡을 처음 녹음한 지휘자 로베르트 카자누스도 같은 생각이었다. 시벨리우스의 친구인 그의 해석은 작곡자 자신의 걸로 받아들여졌다. 러시아 당국의 검열 앞에서 작곡 의도를 공공연히 밝히기 어려웠던 시벨리우스가 친구 카자누스에게 자기 속마음을 설명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 곡에 붙은 ‘독립’(Independence)라는 별명은 엉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벨리우스의 일곱 교향곡은 어떤 점이 가장 큰 특징일까? 그는 1907년, 헬싱키에서 구스타프 말러(1860~1911)를 만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우리 둘 다 최근 발표한 교향곡(시벨리우스 3번, 말러 6번) 때문에 청중들을 많이 잃었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시벨리우스가 말했다. “다양한 모티브들을 정신적으로 통합하는 교향곡의 엄격한 형식과 논리가 중요합니다.” 말러가 대답했다. “아니요,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합니다.” 말러는 모든 것을 넣다 보니 교향곡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진 반면, 시벨리우스는 같은 내용이라도 엄격한 논리로 다듬다보니 교향곡이 압축되는 경향을 보였다.

1번과 2번이 비교적 긴 반면, 3번 이후의 작품은 다소 짧다. 3번과 5번은 악장도 세 개로 줄었고, 7번은 아예 한 악장으로 돼 있다. 각 악장의 템포 지시도 굉장히 복잡해서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많은 음악적 아이디어를 정교하게 엮어놓은 결과일 것이다.

시벨리우스 교향곡은 어떤 순서로 듣는 게 좋을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2번을 제일 먼저 들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가장 친숙한 작품인 <핀란디아>와 내면적으로 연결돼 있고, 낭만시대 교향곡을 조금 들어보신 분이라면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곡이다. 이어서 2번의 앞뒤에 있는 1번과 3번을 듣고, 마지막으로 4, 5, 6, 7번을 듣는 게 나을 것 같다.  

6차례에 걸친 김대진과 수원시향의 시벨리우스 대장정이 이제 막바지다.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곡 프로젝트를 통해 탄탄한 호흡을 쌓아 온 김대진과 수원시향은, 올해 시벨리우스 사이클에서 숨은 걸작들을 청중들 앞에 내놓았다. 지휘자 김대진은 “새로운 곡에 도전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지만, 존재감 있는 오케스트라의 필수 덕목”이라고 말했다.

   
 
 

11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마지막 연주회에서는 교향시 <핀란디아>와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시벨리우스 교향곡에 대한 김대진의 설명. “시벨리우스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속에 꾹꾹 담아두었다가 마지막에 터뜨리는 사람입니다. 그 강렬한 마지막이 시벨리우스 교향곡의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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