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르헨티나를 잡으면 16강에 올라갈까? 정답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이다.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패해도 그리스-나이리지아가 비기면 기뻐해야 할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한국의 월드컵 첫 원정 16강을 기원하는 이들은 한국시간으로 오후 8시에 열리는 아르헨티나전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봐야 할 경기는 오후 11시에 열리는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의 경기결과인지도 모른다. 한국 16강 운명을 결정할 경기는 오후 11시 경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아르헨티나에 밀리는 게 현실이다. 비겨서 승점 1점을 챙기는 게 현실적인 목표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이 아르헨티나까지 꺾는 상황은 어떨까.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할 결과임에는 분명하지만, 16강행을 결정짓는 쾌거는 아닐 수도 있다.

   
  ▲ 12일 밤(한국시간) 포트엘리자베스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B조 첫경기 한국-그리스 경기에서 박지성이 추가골을 넣고 나서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4개팀이 참가하는 조별리그에서 가장 운이 나쁜 경우는 2승1패로 탈락하는 기막힌 경우이다. 1승1무1패 승점 4점만 올려도 조별리그를 통과할 수 있는데 승점 6점의 2승1패가 더 떨리는 상황이라는 것은 선뜻 이해가지 않는 대목이다.

한국도 운명의 장난에 희생양이 됐던 경험이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의 일이다. 한국은 칠레와 모로코를 각각 1대0으로 이겨 2승을 챙겼지만 조별리그 4개 팀 중 3위를 차지해 탈락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골득실차 때문이다. 시드니올림픽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스페인, 칠레는 서로 물고 물리면서 2승1패를 거뒀다. 모로코는 3패로 탈락이 확정됐다. 한국은 스페인에 0대3 대패를 당하면서 골득실차 -1로 탈락했다.

2승1패를 거두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아르헨티나를 잡으면 골득실차는 최소한 +3이 되기 때문에 나이지리아전에서 패해도 16강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에 대패를 당하는 상황이 되면 또다시 불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한국-아르헨티나전보다 떨리는 심정으로 그리스-나이지리아전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는 이 경기에 따라 한국 16강행은 예상보다 빨리 사실상 확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르헨티나와 경기에서 이기거나 비기거나 지는 3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이길 경우 승점 6점, 비기면 승점 4점, 지면 현재대로 승점 3점을 유지하게 된다.

각각 승점 0점인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전에서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두팀이 비기거나 그리스가 나이지리아를 잡아주는 경우이다. 그리스가 나이지리아를 이기는 게 더 좋은 시나리일 수도 있다.

한국이 아르헨티나와 비긴 상태에서 그리스와 나이지리아가 비긴다면 한국은 승점 4점,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는 승점 1점인 상태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한국이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전에 패한다면 승점은 두 팀 모두 4점이 되지만, 나이지리아는 두 골차 이상으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리스가 나이지리아를 잡아준다면 어떻게 될까. 나이지리아는 탈락이 사실상 확정되고 한국은 사실상 16강을 확정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1승1무인 상황에서 마지막 경기를 맞이하기 때문에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고자 총력전을 기울이게 되고 이럴 경우 아르헨티나 승리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는 2승 1무, 그리스는 1승2패로 조별리그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은 나이지리아전 결과와 무관하게 16강에 오르게 된다.

나이지리아가 그리스를 잡는 경우는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지는 것보다 더 나쁜 경우이다.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져도 1점차로 지면 나름대로 선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가 그리스를 잡는 경우는 한국의 조별리그 탈락 가능성을 키우는 최악의 상황이다.

한국과 나이지리아는 똑같이 승점 3점 상황에서 격돌하게 된다. 이 경기의 승자가 16강에 오르게 된다. 물론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두 골 차 이상으로 지지 않고 나이지리아가 그리스전에서 두 골 차 이상의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마지막 경기는 비겨도 한국이 16강에 올라간다.

구체적으로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1대3 패배를 당하고 나이지리아가 그리스를 1대0으로 승리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한국과 나이지리아 두 팀 모두 승점 3점에 골득실차 0의 결과를 맞게 된다. 그러나 한국은 다득점에서 3점, 나이지리아는 1점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나이지리아와 비겨도 16강에 진출한다.

나이지리아가 유리한 경우는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0대2 또는 1대3처럼 두 골 차 이상으로 지고, 나이지리아는 그리스에 2대0, 3대1 등 두 골차 이상으로 이기는 상황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이다.

확률적으로 보면 한국은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 있다. 경우의 수를 종합해보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그리스가 나이지리아를 꺾는 경우가 최선이고 그리스와 나이지리아가 비기는 경우가 차선이다.

한국은 아르헨티나를 이기면 좋지만, 비겨도 나쁘지 않고, 지더라도 2점차 이상의 대패만 거두지 않는다면 16강행 가능성은 높아진다. 또 2점차 이상의 대패를 당하더라도 한 골을 넣을 수 있다면 다득점에서 유리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골 득실차이가 많이 난 경기는 독일 대 호주전으로 독일이 4대0 승리를 거뒀다. 17일 새벽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개최국 남아공에 3대0 대승을 거뒀다. 이 두 경기를 제외하면 다른 경기는 비기거나 이기더라도 1점 차이로 이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객관적인 실력에서 아르헨티나가 앞서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이 3점차 이상의 대패를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1차전에서 나타난 두 팀의 실력을 볼 때 접전을 벌이면서 비기거나 한 팀이 이겨도 1점차 정도의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따라서 오후 8시 한국 대 아르헨티나전은 이기면 좋지만 비겨도 좋고, 지더라도 1점 차이로 지면 만족한다는 심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면 될 것으로 보인다. 오후 11시 경기는 그리스가 유럽 예선을 통과했던 그 저력을 발휘해서 나이지리아를 잡아주거나 최소한 비겨주기를 기다리며 경기를 지켜보면 될 것으로 보인다.

오후 11시 경기가 끝나면 한국은 사실상 16강행을 확정짓는 그런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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