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궁금했다. 한국사회를 '냉전의 그늘'로 몰아넣던 그 신문들은 '인민 루니'의 눈물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북한의 축구 영웅 정대세의 매력에 흠뻑 빠진 대한민국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지난 16일 새벽 3시30분, 적지 않은 국민들이 깨어 있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북한 대 브라질 경기를 TV로 보기 위한 목적이었다. TV 화면에 비친 모습은 '문화적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인공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정대세는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지자 눈물을 쏟았다. 커다란 덩치에 머리마저 삭발한 험상궂은 청년이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인민 루니'의 눈물은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을 적셨다.

정대세 눈물을 보며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보여준 북한 축구대표팀의 선전은 '정대세 눈물'과 어우러져 가슴 뭉클한 감동을 만들어 냈다.

   
  ▲ 동아일보 6월17일자 2면.  
 

스포츠에서 남과 북은 친구이자 이웃이자 동료였다. 남북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동시 입장을 하기도 했고, 남북 축구 단일팀이 세계 대회에 나갔던 경험도 있다. 분단된 대한민국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려는 노력이 결실을 봤기 때문이다.

밤잠을 설쳐가며, 새벽같이 일어나서 TV를 지켜봤던 그 수많은 사람이 북한의 선전을 기원한 것도 한 핏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정대세 눈물'은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6월2일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당장에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안보 긴장상황을 조성했던 그 언론들도 관심을 보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동아일보는 17일자 2면에 정대세가 눈물을 흘리는 사진과 함께 <그의 눈물, 세게 축구팬 가슴엔 강슛이었네>라는 기사가 실렸다. 중앙일보는 17일자 3면에 역시 정대세가 눈물을 흘리는 사진을 곁들이며, <눈물 투혼 정대세, 빠르고 창조적이고 강했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 중앙일보 6월17일자 33면.  
 
오태진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은 17일자 34면 <정대세의 눈물>이라는 칼럼에서 "북한 국가가 연주되는 내내 눈물을 쏟았다 '조국애'가 그리도 강한가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드디어 나오게 됐다고 세계 최강팀과 맞붙게 돼 좋아서 그랬다'고 했다. 그의 북한행에는 '조국'에 대한 충성보다 축구에 대한열정이 더 뜨겁게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언론이 '정대세 눈물'에 정치색을 입히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대세가 북한 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촌스러운 일 아닌가.

'정대세 눈물'이 한국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 장면이 문화적 충격일 수도 있는 이유는 어색하고 촌스러운 한국사회 현실 때문이다.

 

   
  ▲ 조선일보 6월17일자 34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은 주적'이라는 개념을 6년 만에 부활시키기로 했다. 정부는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 최전방 지역에 대북 확성기를 준비하자 북한 쪽에서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맞받았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 허가를 받고 인도적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민간인과 공무원들은 3년이 지난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정부 감시 견제가 존재이유인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천안함 사건의 조사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에 전달하자 '매카시즘 광풍'이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다. 참여연대가 이적행위를 했다는 주장이 여당 지도부 입에서 나오기도 했다. 참여연대를 옹호하는 것도 이적행위라는 주장도 나왔다.

   
  ▲ 동아일보 6월17일자 28면.  
 

정부 발표에 의문이 있고, 그 의문을 시민단체가 지적한 행동이 '이적행위' '반국가적 행위'로 지적 받는 현실은 참 촌스러운 모습 아닌가. 검찰 공안부가 참여연대 수사에 나서는 장면과, 보수로 포장된 극우단체들이 참여연대 테러 위협을 가하는 장면도 참 서글프고 촌스러운 장면 아닌가. 

시대착오적이고 촌스러운 '냉전의 그늘'이 한국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배경에는 일부 언론의 냉전 이데올로기 확대 재생산도 큰 영향을 줬다. 대놓고 전쟁 상황을 유도하는 신문 칼럼까지 나왔다.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을 부추기는 보도는 연일 쏟아지고 있다.

북한 축구대표팀과 관련한 기사에서도 이런 행태는 계속됐다. 조선일보는 17일자 6면에 <북한 월드컵 선전(善戰)은 김정은 '성은(聖恩)' 때문?>이라는 기사가 기사를 실었다. 대북 단파방송 관계자가 복수의 북한 소식통에게 들었다는 내용을 조선일보가 기사화했다.

'인민 루니' 정대세 눈물에 감동하고, '인민 복근' 지윤남의 벗은 상체에 찬사를 보내는 '발랄한 세상'에 냉전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 애쓰는 언론들이 참으로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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