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브라질의 월드컵 본선 경기가 14일로 예정된 가운데 남한 국적이면서 북한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정대세 선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84년생인 정대세는 일본에서 태어난 제일교포 3세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아버지의 국적을 이어받아 한국 국적으로 돼 있지만 조총련계 학교에서 공부해 정서적으로는 북한에 더 친숙하다. 역시 조총련계 대학인 조선대를 졸업한 뒤 2006년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 주전으로 발탁돼 33경기 17골을 넣으며 주목을 받았다. 형인 정이세는 한국의 실업 축구팀 노원 험멜의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남한 국적인 그가 북한의 국가대표로 발탁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 월드컵 예선에서 북한이 일본에게 지는 걸 보고 북한에서 뛰기로 결심했는데 국적이 문제였다. 남한 국적을 북한 국적으로 바꿀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대세는 직접 국제축구연맹(FIFA)에 자필 청원서를 보내 남북의 현실과 그의 독특한 가족사 등을 설명하고 북한 국가대표 선수로 뛸 수 있다는 승인을 받아냈다.

정대세는 지난해 일본 J리그에서 14골을 넣어 득점 랭킹 5위에 올랐다. 올해도 5골을 넣어 득점 랭킹 7위에 올라있다. 지난달 26일 북한과 그리스의 평가전에서는 혼자서 2골을 넣어 그리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공격 보다 수비가 강한 북한 대표팀에서 주전 공격수 역할을 맡고 있다. 원톱으로 나서도 고립된 공간을 잘 파고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의 가디언은 정대세를 '인민의 루니(The People's Rooney)'라고 부르기도 했다.

   
  ▲ 인민의 루니, 정대세 선수 ⓒ연합뉴스  
 
정대세는 지난 10일 아시아축구연맹과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이나 한국의 대표선수로 활약할 수 없다"면서 "내 정체성이 북에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대세는 "일본을 위해 뛴다면 끌어낼 수 없는 힘이 조선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가능하다"면서 "정신과 정체성이 돈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 라이벌은 박지성"이라고 말하는 정대세는 "북한이 브라질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정대세는 지난해 10월부터 '나는 조선의 스트라이커'라는 제목으로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그리스와 평가전을 치른 경험을 소개하면서 "엄청난 신체능력을 가진 선수들을 지칠 줄 모르는 빠른 스피드로 공략한 것은 그리스 팀을 상대로 충분한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대세의 분석은 우리 대표팀의 12일 경기에도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정대세는 또 23일 우리나라와 붙게 될 나이지리아 대표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지난 5일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을 치르고 난 뒤 정대세는 "엄청났던 '아프리칸 파워'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면서도 "아무리 체격조건에서 밀린다고는 해도 개개인의 힘을 잘 이용하면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밝혔다. 정대세는 "체격이 큰 선수들일수록 민첩함이나 명민함에 있어서는 약한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 정대세가 찍어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올린 북한 대표팀의 차량. 현대자동차가 제공했다. ⓒ정대세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한 대표팀이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가운데 정대세는 앞장서서 외신 인터뷰를 자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32개 출전국 가운데 FIFA 랭킹이 105위로 최하위지만 돌풍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북한 대표팀에는 정대세 선수 뿐만 아니라 러시아 로스토프에서 뛰고 있는 홍영조와 일본 오미야에서 뛰고 있는 안영학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선수들이 많다.

정대세는 골키퍼인 리명국 선수를 "그가 없었다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진출도 없었을지 모른다"고 치켜 세웠고 이준일 선수는 "디펜스 포지션의 통솔자 역할을 하는 무척 의지가 되는 선수", 지윤남 선수를 "정확한 포지셔닝과 빠른 반응속도 그리고 상대의 측면공격을 가로막고 역습으로 득점기회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췄다"고 소개했다. 정대세는 "조선 대표팀의 강점은 기술과 전술을 능가하는 정신력"이라고 강조했다.

   
  ▲ ⓒ정대세.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대세가 활약하는 월드컵 경기를 북한 주민들은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월드컵 단독 중계권을 확보하고 있는 SBS는 당초 북한 경기를 무료로 송출해줄 계획이었으나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무산됐다. 한국일보는 남아공 현장에서 만난 북한 취재기자의 말을 인용해 "인민들은 월드컵을 보고 싶어한다"면서 "하지만 월드컵 중계권을 가진 SBS가 안 놓아주는데 어쩌겠느냐"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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