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나오자 보수신문들의 공세가 매섭다. ‘어이 없는 판결’(동아일보)이라며 사법부를 흔드는가 하면 번역 일부를 감수했던 정지민 씨를 인터뷰 해 ‘판사를 고소하고 싶은 심정’(중앙일보)이라며 감정적 보도를 쏟아냈다. 다우너 소를 광우병 소로, 그냥 광우병(CJD)을 인간광우병(vCJD)으로 왜곡했다는 근거를 들어 무죄판결을 반박(조선일보)한 신문도 있었다. 그러나 김용민 시사평론가는 이들 보수신문들이 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 정지민 씨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고발하고, 광우병 전문가인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기자들의 전문지식 부족을 질타했다. 박찬종 변호사는 법률적 조항을 조목조목 들며 판결은 정당하다고 항변했다. / 편집자 주

MBC 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우려를 왜곡과 조작 기법을 동원해 확대 재생산했다는 검찰과 ‘조중동’의 주장은 허위로 귀결됐다. 법원에 의해 판명 난 것이다. 검찰은 즉각 항고하고 ‘조중동’은 법원을 향한 파상공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항소심에서 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 김용민 시사평론가  
 
이유는 간명하다. 검찰과 ‘조중동’이 의 ‘혐의’를 ‘한 사람’의 주장에만 의존해 구성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한 사람’이 ‘제작진’이라고는 보조 작가 한 명 만난 정도가 전부이고, 번역도 전체 촬영분의 1/4 정도만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이 “내가 의 ‘의도성’을 꿰뚫고 있소!”라고 하는 형국이었다.

에 대한 공격거리라면 티끌만한 흠이라고 찾아내는 데 혈안이었던 당시 이명박 정권의 지휘를 받고 있는 검찰이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메이저 언론’을 자처하며, 공익매체인 방송 진출까지 꿈꾸는 ‘조중동’의 행태는 참으로 기괴하다. 정지민씨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맹신하며, 지난한 진실공방이 확실시되는 논쟁점을 묵살한 채 “MBC는 왜곡했다”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정지민씨의 이른바 첫 ‘폭로’ 뒤 기다렸다는 듯, 이튿날인 2008년 6월26일 ‘MBC 은 상응하는 법적 윤리적 책임을 지라’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다. 가독성이 높지 않아도, 사설은 모름지기 ‘신문의 공식 입장’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 무게 있는 란에 훗날 법정에서 ‘신뢰성 없음’으로 판명될 정지민씨의 발언을 양심고백인양 있는 그대로 받아 적으며 그 파장 효과를 침소봉대했다. 사설의 품위에 스스로 먹칠한 것이다. 어디 사설만인가. 이들은 ‘정지민 우상화’를 서슴지 않았다.

조선일보 2009년 5월7일자 33면, 당시 박정훈 사회정책부장이 쓴 ‘태평로’ 칼럼이다. 그는 “정지민씨의 문제 제기는 사실로 확인됐고, 의 왜곡 보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썼다. 이 칼럼의 제목은 <세상을 바꾼 평범한 영웅들>이었다. 정지민 씨를 판결 8개월 전부터 이미 ‘영웅’의 반열에 올린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정지민씨의 말이라면 허위가 섞여도 서슴없이 대서특필했다. 일례를 들어보자. 정지민씨가 “(인간광우병 의심 환자였던) 아레사 빈슨 씨의 어머니가 ‘우리 딸이 죽은 것은 위 절제 수술 후유증 때문일 수 있다’는 말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말이 옳다면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 때문에 죽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의 왜곡 및 과장 의도는 너무나 분명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일보는 이를 2008년 6월28일자 5면에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기사를 작성한 신동흔 기자는 “이 ‘인간 광우병’이 아닐 가능성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방송에 반영하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했고, 중앙일보 박유미 기자는 2009년 4월7일자 33면에서 “인터뷰 내용 중에는 병원 측에서 위 수술 뒤에 후유증을 우려해 비타민 처방을 했다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

   
  ▲ 중앙일보 1월 21일자 9면  
 
이들은 입을 맞춘 듯 정지민씨의 ‘주장’을 아예 ‘사실’로 단정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그런 촬영 테이프는 없었다”라고 결론지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정지민씨 본인도 이점을 인정했단다. 하지만 ‘오버’로 ‘오보’한 조선·중앙일보는 여태 정정 보도를 내지 않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흐름이 있다. ‘조중동’의 이른바 ‘패턴’이다. 우선 정지민씨의 발언이 나온다. 그 다음 ‘조중동’은 따옴표를 단 채 ‘정씨의 주장’이라며 소개한다. 그러다 이 따옴표는 사설이나 칼럼에 가서는 은근슬쩍 사라진다. 그리고는 그 발언이 ‘진실’로 격상되고 논평의 근거가 된다. 조선일보 2008년 6월27일자 기사에서 김우룡 당시 한국외국어대 교수(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는 “사실을 왜곡해 보도함으로써 국민적 불안을 조성하고 번역자의 사전 지적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라며 을 비난했다. 어떤가. “이 왜곡했다”는 주장이 소리 소문 없이 정설이 되지 않았나.

그러나 ‘적반하장’은 ‘자승자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조선일보 2008년 7월2일자 27면에 실린 번역가인 이종인씨의 ‘시론’을 보자. 이는 과의 ‘성전(?)’을 펼치는 정지민씨를 위한 지원사격 용도의 칼럼이다. 이씨는 “오래 번역업에 종사해온 사람으로서 직역, 의역, 오역에 대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번역은 원문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직역이 원칙이다. (중략) 원문의 뜻을 그르치고 번역자 마음대로 의미를 주물러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종인씨 주장에 반성해야 할 당사자는 이 아닌 정지민씨다. 법원은 “아레사 빈슨 어머니가 ‘a variant of CJD’(광우병의 변종)라고 말한 것을 정지민씨가 그냥 ‘CJD’(광우병)로 번역했다”며 “이는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간광우병’을 ‘광우병’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번역한 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은 지난해 10월 미국 연방관보와 질병통제센서는 ‘a variant of CJD’를 ‘인간광우병’으로 풀이하고 있다는 문서를 공개했다. 정지민씨야말로 ‘직역의 원칙’으로부터 훨씬 엇나간 것이다.

이뿐인가. 방송 내용에 나온 ‘인간광우병이 의심 된다’를 ‘걸렸다’로, ‘걸렸을지도 모르는’을 ‘걸렸던’으로 오역한 당사자도 정지민씨이다. MBC는 이런 정지민씨의 일천한 번역 실력 때문에 ‘시청자에 대한 사과방송’을 내보내야 했다. 이를 두고 정지민 씨는 일전에 “나는 제대로 번역 또 감수했는데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고친 것”이라고 밝혔던 모양이다. 물론 이마저도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는 판사의 일축으로 권위를 상실했지만.

‘조중동’ 그리고 정지민 씨, 정산은 해야 한다. 이게 어디 ‘아니면 말고’라며 끝낼 일인가. 그러나 어차피 메아리 없는 말이 될 것 같다. 이런 까닭에 패러디 하나 해보련다. 2008년 6월28일자 조선일보 사설 원본을 갖고 말이다. 그러나 그리 많이 고치지는 않았다. 이란 말을 ‘조중동’으로 바꾼 것 정도다.
“조중동측이 아무리 오만하게 고개를 뻣뻣이 치켜세워도 왜곡의 진실들은 하나씩 둘씩 드러날 수밖에 없다. 조중동은 나라를 휘청이게 만든 데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고 자신들의 왜곡행태가 언론사(史)에 어떻게 기록될지를 생각하고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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