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등 방송계 인사들이 지난해 11월9일 서울 여의도 일식집 '유메'에 모여 한나라당 대선 전략을 모의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특히 강 위원은 차관급 고위공직자로서 엄격한 정치중립성을 지켜야 할 신분이라는 점에서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5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일식집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강 위원,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 신현덕 전 경인TV 공동대표와 KBS Y부장, 외주제작업체 J대표 등이다.

   
  ▲ 강동순 방송위원,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 신현덕 전 경인TV 공동대표 등이 지난해 11월9일 모임을 가진 서울 여의도의 식당 모습. ⓒ미디어오늘  
 
A4용지 68쪽 분량의 녹취록은 경인TV 대주주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의 국가정보 유출 의혹과 관련된 자료의 일부로서 CBS가 방송위에 제출했으며, 검찰도 수사자료로 삼은 것으로 확인됐다. 녹취록에는 백 회장에 대한 내용과 한나라당 대선 전략을 논의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강동순 "(대선에서) 방송이 중요, 모니터팀 운영해야"

녹취록에 따르면 참석자들이 "우리는 한 배"라고 말하며 한나라당 대선 승리를 도와야 한다고 말하자 강 위원은 "한 배가 아니라 우리 일"이라며 "도와준다는 거는 남의 일이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강 위원은 유 의원에게 "나는 한나라당 의원님들보다도 더 강성이다.…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생리에 맞지 않는다"면서 "우리 자식들이 이 땅에서 밥 먹고살려면 이 좌파들 몰아내지 않으면 우리가 못 산다"고 말했다.

강 위원은 "당에서 방송에 좀 관심을 가져달라. 왜냐하면 김대업 사건 같은 거 또 일어나면 이걸 뭐 확인할 시간도 없고 재판으로 하면 버스 떠난 다음에 손드는 거"라며 "방송이 아직도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주장했다.  

강동순 "정치도 감성의 시대" 

참석자들은 유 의원에게 대선 홍보를 위해서는 '감성'을 자극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강 위원은 "지금은 하느님을 믿어도 하느님이 정말 존재하는가 그거를 성경으로 입증해준다고 믿는 게 아니다. 어떤 성당의 그냥 어마어마한 정문이나 또 어떤 아주 아름다운 뭐 찬송가나 성가 이런 걸 듣고서 거기서 감성적으로 믿기 시작하는 것이다. 난 정치도 이제는 감성의 시대라고 본다"고 말했다.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녹취록  
 
J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이) 까만 바탕에 아침이슬 부른 것 때문에 한 몇 백만표 봤다"고 말했고 Y부장은 "전략 면에서는 (기자를) 쓰되 전술 면에서는 PD를 써야 된다"고 조언했다. 강 위원도 "굉장히 중요하다. 지난 번에 (대선 패배의)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정말로 선거 전략상의 아마추어가 봐도 말도 안되는 전략, 홍보전략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 위원은 한나라당 대선 승리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는 "정말로 방송이 중요한데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 (방송보도) 모니터팀을 운영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제제기를 하려면 근본 단추를 갖다가 처음에 잘 꿰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내년에 도와달라"…강동순 "전진하는 차 잡아야"

이와 관련 Y부장은 "아까 (강동순) 위원님 말씀하신 모니터링이라고 하는 게 사전에 방송내용을 가지고 이게 허위 내지는 어디 상당히 편향돼 있는 거를 방송을 하면 그걸 계속 지적하는 시스템을 갖춰나야 박(근혜) 대표가 됐든 이명박 전 시장이 됐든 걔네들이(열린우리당) 터뜨리는 것이 방송에서 그걸 채택 못하게 그런 풍토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대화내용을 보면 J대표는 "우리 박 대표가 되든 이명박이 되든 일단은 우파가 잡아야 한다"고 말하자 강 위원은 "그럼"이라고 화답했다. 유 의원이 "대승적으로 내년에 도와달라"고 말하자 강 위원은 "후진하는 자동차는 타지 않는다. 운전기사가 누구든 간에 전진하는 차를 잡아야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누구든 간에 내부 경선에서 승리한 사람이 대선에서 승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강 위원은 유 의원과의 대화 과정에서 "정말로 이제 우리가 정권을 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다 새로 그려야 된다"면서 "지금 최문순(MBC 사장)이나 정연주(KBS 사장)나 이거 껍데기야. 아무 힘도 못 쓴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강동순 정치중립성 논란…"야당도 문제의식 가져야 한다는 얘기"

강 위원은 한나라당 추천으로 방송위원이 됐지만 정치적 중립성과 방송의 공정성 공공성을 지켜나가야 할 신분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방송위원회의 정치중립성에 대해서는 강 위원 본인도 해당 녹취록에서 얘기했다.

녹취록에는 강 위원이 "우리는 선거를 앞두고 휘말리지 말아야 된다. 우리가 어떤 배경으로 여기에 왔던 간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조창현 방송위원장에게 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강 위원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유 의원 등을 만난 사실과 문제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강 위원은 "(정치중립성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야당은) 야당으로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과거 김대업 사건처럼 잘못된 보도가 나올 때는 야당도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강동순 "후배들과 사적인 자리"…정청래 "차라리 한나라 입당하라"

   
  ▲ 강동순 방송위원  
 
강 위원은 "이날 자리는 후배들과의 모임이다. 신현덕 전 사장이 고등학교(경복고) 후배이다. KBS에 있을 때 후배들과의 모임이다. 이날 참석한 유승민 의원이 아는 후배도 있다"면서 "사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이다. 사적 의견과 공적 행위는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 문화관광위 열린우리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한나라당의 정권 창출을 위해서 그 정도의 신념을 갖고 있으면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것이 맞다. 멸사봉공하는 것이 맞다"면서 "한나라당 전략기획팀장을 하면 된다. 어떤 조직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조직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곳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은 6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국회 문광위 전체회의에서 강 위원을 출석시켜 경인방송 조건부 허가 추천 결정 문제와 녹취록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질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강 위원의 문광위 출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문광위 전체회의 강동순 출석 논란

정청래 의원은 "최구식 한나라당 간사와 통화를 했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은 강 위원의 출석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면서 "오전 10시 전체회의가 시작되면 현장에서 강 위원 출석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유 의원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유 의원의 보좌관은 "강동순 위원이나 신현덕 전 대표를 유 의원이 사적으로 아는지 전혀 모르겠고 논란이 된 당일 만났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백성학 회장의 경우는 유 의원이 2002년 이후 전혀 만난 적도 전화한 적도 없는데 이후에 호텔 커피숍에서 마주친 적이 한 번 있다고 들은 정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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