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등 방송계 인사들이 지난해 11월9일 서울 여의도 일식집 '유메'에 모여 한나라당 대선 전략을 모의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특히 강 위원은 차관급 고위공직자로서 엄격한 정치중립성을 지켜야 할 신분이라는 점에서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5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일식집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강 위원,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 신현덕 전 경인TV 공동대표와 KBS Y부장, 외주제작업체 J대표 등이다.
▲ 강동순 방송위원,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 신현덕 전 경인TV 공동대표 등이 지난해 11월9일 모임을 가진 서울 여의도의 식당 모습. ⓒ미디어오늘 | ||
강동순 "(대선에서) 방송이 중요, 모니터팀 운영해야"
녹취록에 따르면 참석자들이 "우리는 한 배"라고 말하며 한나라당 대선 승리를 도와야 한다고 말하자 강 위원은 "한 배가 아니라 우리 일"이라며 "도와준다는 거는 남의 일이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강 위원은 유 의원에게 "나는 한나라당 의원님들보다도 더 강성이다.…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생리에 맞지 않는다"면서 "우리 자식들이 이 땅에서 밥 먹고살려면 이 좌파들 몰아내지 않으면 우리가 못 산다"고 말했다.
강 위원은 "당에서 방송에 좀 관심을 가져달라. 왜냐하면 김대업 사건 같은 거 또 일어나면 이걸 뭐 확인할 시간도 없고 재판으로 하면 버스 떠난 다음에 손드는 거"라며 "방송이 아직도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주장했다.
강동순 "정치도 감성의 시대"
참석자들은 유 의원에게 대선 홍보를 위해서는 '감성'을 자극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강 위원은 "지금은 하느님을 믿어도 하느님이 정말 존재하는가 그거를 성경으로 입증해준다고 믿는 게 아니다. 어떤 성당의 그냥 어마어마한 정문이나 또 어떤 아주 아름다운 뭐 찬송가나 성가 이런 걸 듣고서 거기서 감성적으로 믿기 시작하는 것이다. 난 정치도 이제는 감성의 시대라고 본다"고 말했다.
▲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녹취록 | ||
강 위원은 한나라당 대선 승리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는 "정말로 방송이 중요한데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 (방송보도) 모니터팀을 운영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제제기를 하려면 근본 단추를 갖다가 처음에 잘 꿰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내년에 도와달라"…강동순 "전진하는 차 잡아야"
이와 관련 Y부장은 "아까 (강동순) 위원님 말씀하신 모니터링이라고 하는 게 사전에 방송내용을 가지고 이게 허위 내지는 어디 상당히 편향돼 있는 거를 방송을 하면 그걸 계속 지적하는 시스템을 갖춰나야 박(근혜) 대표가 됐든 이명박 전 시장이 됐든 걔네들이(열린우리당) 터뜨리는 것이 방송에서 그걸 채택 못하게 그런 풍토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대화내용을 보면 J대표는 "우리 박 대표가 되든 이명박이 되든 일단은 우파가 잡아야 한다"고 말하자 강 위원은 "그럼"이라고 화답했다. 유 의원이 "대승적으로 내년에 도와달라"고 말하자 강 위원은 "후진하는 자동차는 타지 않는다. 운전기사가 누구든 간에 전진하는 차를 잡아야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누구든 간에 내부 경선에서 승리한 사람이 대선에서 승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강 위원은 유 의원과의 대화 과정에서 "정말로 이제 우리가 정권을 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다 새로 그려야 된다"면서 "지금 최문순(MBC 사장)이나 정연주(KBS 사장)나 이거 껍데기야. 아무 힘도 못 쓴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강동순 정치중립성 논란…"야당도 문제의식 가져야 한다는 얘기"
강 위원은 한나라당 추천으로 방송위원이 됐지만 정치적 중립성과 방송의 공정성 공공성을 지켜나가야 할 신분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방송위원회의 정치중립성에 대해서는 강 위원 본인도 해당 녹취록에서 얘기했다.
녹취록에는 강 위원이 "우리는 선거를 앞두고 휘말리지 말아야 된다. 우리가 어떤 배경으로 여기에 왔던 간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조창현 방송위원장에게 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강 위원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유 의원 등을 만난 사실과 문제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강 위원은 "(정치중립성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야당은) 야당으로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과거 김대업 사건처럼 잘못된 보도가 나올 때는 야당도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강동순 "후배들과 사적인 자리"…정청래 "차라리 한나라 입당하라"
▲ 강동순 방송위원 | ||
그러나 국회 문화관광위 열린우리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한나라당의 정권 창출을 위해서 그 정도의 신념을 갖고 있으면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것이 맞다. 멸사봉공하는 것이 맞다"면서 "한나라당 전략기획팀장을 하면 된다. 어떤 조직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조직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곳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은 6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국회 문광위 전체회의에서 강 위원을 출석시켜 경인방송 조건부 허가 추천 결정 문제와 녹취록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질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강 위원의 문광위 출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문광위 전체회의 강동순 출석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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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의원은 "최구식 한나라당 간사와 통화를 했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은 강 위원의 출석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면서 "오전 10시 전체회의가 시작되면 현장에서 강 위원 출석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유 의원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유 의원의 보좌관은 "강동순 위원이나 신현덕 전 대표를 유 의원이 사적으로 아는지 전혀 모르겠고 논란이 된 당일 만났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백성학 회장의 경우는 유 의원이 2002년 이후 전혀 만난 적도 전화한 적도 없는데 이후에 호텔 커피숍에서 마주친 적이 한 번 있다고 들은 정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