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땅 가운데의 광주를 ‘광주광역시’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광주’라고 부른다. 관형사(冠形詞)를 붙여 예향(藝鄕) 광주라고도 하고, 예향(藝香)의 도시 광주라고도 한다. 어떤 때는 그 이름만으로 피어린 5.18 민중항쟁의 제목이 된다. 무등산 자락 광주, 한자로 빛 광, 고을 주 光州다.

‘광주’라는 같은 이름의 도시가 경기도에도 있다. 넓을 광, 고을 주 廣州다. 서울의 동남쪽, 이천 여주의 위쪽에 있다. 남한산성 팔당호 등이 그 경계 안에 들어 너른 산수(山水) 맑고 역사 깊은 소도시, 농사가 많고 큰 도시 서울과 가까워 경제적인 여러 조건이 좋은 곳이다. 인심 또한 돈독(敦篤)하다.

상당수 언론인들도 이 두 도시를 구분하는데 혼란을 겪는 것을 보면 일반인의 혼란은 더 클 것이다. 방송뉴스의 진행자들도 십중팔구는 아무 차이를 두지 않고 두 도시를 [광주]라고 소리 낸다. ‘국어를 전공해 그 중 언어가 비교적 정확하다’는 평을 받는 KBS 조수빈 아나운서조차 마찬가지다.

경기도 광주의 일을 보도하면서 ‘경기도’를 빼먹으면 사람들은 두 도시를 혼동한다. 또 광주광역시를 ‘광주’라고 부르면 혹시 경기도 광주 얘긴가 싶어 역시 헷갈린다.

어떤 이는 ‘전남 광주’라고 부르는 친절 또는 센스를 보이기도 하나 이는 실은 서울이 경기도 땅 안에 있다고 ‘경기도 서울’이라고 부르는 것 마냥 옳지 않다. 전라남도와 광주직할시는 행정구역상 별개의 자치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가 전라도의 속성 또는 미덕과 별개(別個)의 이름일 수는 없다. 

최근 우리의 언어 세계에서 한자가 빠져나간 후 생기는 혼란이다. 글자 하나하나가 갖는 속뜻이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두 이름의 한자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닥쳐 긴가민가하면 얼른 사전을 들여다봤어야 했다.

광주직할시의 광주(光州)는 그냥 [광주]다. 사전에 따로 표시가 없으면 ‘광’이 짧은 소리 즉 단음(短音)이다. 경기도 광주(廣州)는 [광:주]다. 긴소리 즉 장음(長音)일 경우 발음기호 표시가 사전에 꼭 붙어있다. 토박이말도 그렇지만 한자로 이뤄진 우리말글의 여러 낱말들 중에 이렇게 같은 글자로 표기되는 것들이 꽤 있다.

흔히 ‘같은 소리’이면서 뜻이 다르다고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장단음 구분이 있다는 사실을 따진다면, 엄밀히 말해 ‘동음’이라 할 수 없다. 광주(光州)와 광주(廣州)는 동음이의어가 아닌 ‘동자이의어(同字異義語)’다. 글자는 같고 뜻은 다른 단어다.

사전에 이런 뜻을 구분하는 방법 다 있다. 사전은 크고 깊다. 제대로 된 좋은 사전 얘기다. 사전 찾는 습관을 들이면, 내가 얼마나 더 세상에 겸손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국어사전과 같은 사전(辭典)도, 백과사전 따위의 사전(事典)도 다 필요하다. 진짜 공부 잘하는 비결, 통찰력 얻는 비방(秘方)이다. 요령이나 지름길이 아닌, 본디를 찾는 것 말이다.

<토/막/새/김>
또 하나의 동자이의어 짝인 사전(辭典)과 사전(事典). 국어 영어 불어 등 언어의 낱말 뜻을 새긴 책인 말 사(辭) 책 전(典) 사전은 [사전]으로 읽는다. 백과사전 법률사전 등 모든 분야나 어떤 분야의 여러 사항(事項)을 담은 일 사(事) 책 전(典) 사전은 [사:전]으로 ‘사’를 길게 읽는다. 영어로는 딕셔너리(dictionary)인데 백과사전(엔사이클로피디어 encyclopedia)이나 용어집(글로서리북 glossary book)의 구분 말고는, 우리가 사전(事典)으로 구분하는 책도 대개 딕셔너리라고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