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사안이 있다. 언론에 의해 주목을 받은 사안과 주목을 받지 못한 사안이다. 우선 후자부터 살펴보자. 오늘자(16일) 일부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이랜드그룹 계열 뉴코아가 자사 노조원 200여명이 점거농성 중인 서울 서초구 강남 킴스클럽의 철제 출입문을 용접, 봉쇄했다. 뉴코아는 점거농성 4일째인 지난 11일 강남 킴스클럽의 6개 출입문 중 경찰이 통제하는 정문을 제외한 5개 철제 문을 용접했는데, 이 가운데 뉴코아 아울렛으로 통하는 문은 쇠파이프까지 가로질러 봉쇄했다.

뉴코아, 철제 출입문 용접 봉쇄…과잉대응 논란

"노조원의 농성가담과 뉴코아 아울렛으로의 진입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처"라는 게 회사 쪽이 밝힌 이유다. 진입을 막고자 했다면 경찰병력과 출입문을 봉쇄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데 굳이(?) 용접까지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회사 쪽의 해명이 납득이 되지 않을뿐더러 이건 명백한 '인권침해'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한겨레 등 일부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번 출입문 용접 봉쇄조치로 농성 노조원들은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뉴코아는 에어컨 가동도 차단해 노조원들은 찜통 더위를 견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성을 이끌고 있는 박양수 뉴코아 노조위원장은 "대부분 여성인 조합원들이 답답함과 불안감을 호소한다"며 "작은 화재가 일어나면 자칫 대형참사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 한국일보 7월16일자 7면.  
 
이에 대해 뉴코아는 "노조원들의 출입이 완전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경찰이 통제하는 정문이 '열려' 있으니 괜찮다는 주장인 셈이다. 찜통 더위에 에어컨이 차단된 상태에서 경찰이 통제하는 정문을 제외한 철제 출입문이 용접 봉쇄가 됐는데,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약 '그곳'에 있었다면 과연 그런 '용감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입장이 다르다고 해도 말은 함부로 하는 법이 아니다.

'인권 문제'엔 무관심…'소비자 권리'엔 엄청난(?) 관심

하지만 이 사안은 대다수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조중동'과 같은 이른바 '큰 신문들'과 경제지들은 이 사안을 언급하지 않았고, 나머지 신문들의 무관심도 비슷했다. 다만 경향과 한국 한겨레 등 극히 일부 신문만이 관련 내용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을 뿐이다.

대다수 언론의 이 같은 무관심을 질타하는 이유는 이들이 유독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며 '소비자 권리'를 운운했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7월16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오늘자(16일) 사설 <미국 쇠고기에 뿌린 쇠똥은 소비자에 대한 폭력>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처음 시판된 지난 13일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를 비롯한 일부 단체 사람들이 매장에 몰려가 쇠똥까지 뿌리며 판매를 방해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언급한 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판매 점포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하며 '미국 쇠고기를 팔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좌판을 뒤엎으며 시장 상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조직폭력배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맹비난했다.

조선은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느냐 마느냐는 어디까지나 소비자들이 선택할 문제다. 그들이 서민들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값싼 쇠고기를 사먹을 기회를 빼앗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한 다음 "영업을 방해하는 불법 폭력시위의 문제를 넘어 기본적으로 양심을 잃은 행동이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판매대에 쇠똥을 뿌렸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서민과 소비자들에게 쇠똥을 끼얹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기조'는 다른 신문들도 비슷했다. 동아는 같은 날짜 사설 <소비자 선택권 빼앗는 '쇠고기 반미'>에서, 매일경제는 사설 <미국산 쇠고기 판매방해 엄단을>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국민일보와 세계일보, 파이낸셜뉴스도 사설을 통해 시민단체들의 행동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 쇠고기 판매 반대는 '쇠고기 반미' '국기문란행위' 등 맹비난

한국경제는 사설 <미 쇠고기 판매방해는 국기문란행위>에서 "이번 사건은 시민단체들이 늘 해오던 불법적인 단체행동쯤으로 여기고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이를 유야무야시킬 경우 이런 행동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일으킨 관련단체는 물론 참여자들에 대해 엄격한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면서 "이날 판매행사에는 주한 미국 대사도 참석해 시식회 등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취소됐다고 한다. 한마디로 나라 망신까지 시킨 셈"이라고 비난했다.

   
  ▲ 한국경제 7월16일자 사설.  
 
물론 '미 쇠고기 판매 반대' 운동을 벌인 시민단체들의 '방법'이 온당했느냐를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른바 '투쟁의 방법론'을 둘러싸고 이견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이 시민단체들을 비난하면서 내세우고 있는 '소비자 권리'라는 부분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다.

대다수 신문이 언제부터 '소비자 권리'를 그렇게 생각하고 지면을 제작해왔는지 몰라도, 이들이 내세우는 '소비자 권리'는 '반쪽자리'에 불과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미국산 쇠고기 판매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이들 언론의 기준엔 소비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판매에 찬성하는 시민이 있다면 반대하는 시민도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이들 언론에 통하지 않으니 '문제'다.

미국산 쇠고기 판매 찬성하는 사람만 소비자?

오로지 미국산 쇠고기 판매에 찬성하는 시민들만이 이들이 설정한 '소비자' 기준에 부합한다. 반대하면 '쇠고기 반미'를 주장하는 '불순한 세력'이 되는 것이고, '국기문란을 주도한 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소비자에 대해서도 '이데올로기적' 기준을 적용하는 이들 신문의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이 서민들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값싼 쇠고기를 사먹을 기회를 빼앗겠다는 것인가"(조선 사설)라는 부분의 '진정성'을 믿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코아가 철제 출입문 용접 봉쇄라는 '인권침해적 조치'를 취한 데 대해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미국산 쇠고기 판매 반대'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는 태도를 보며 이들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소비자 권리'라는 개념이 과연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많은 신문들이 설정해 놓은 '소비자'라는 단어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포함돼 있는 것일까. 오늘자(16일) 신문을 보면서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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