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가 던져졌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 내용을 요모조모 뜯어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삼성 이건희 회장이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과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삼성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에 대해선 판단을 하지 않았다.

애매하다. 속된 말로 '심증은 가는 데 물증이 없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검찰과 삼성 쪽이 이번 재판 결과를 두고 상이한 해석과 평가를 내리는 이유도 바로 이 같은 '모호성' 때문이다.

   
  ▲ 조선일보 5월30일자 4면.  
 
재판부가 항소심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긴 했지만 최종판단은 대법원까지 가야 알 수 있다. 대법원에서 삼성에게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고, 항소심 재판결과가 반영될 수도 있다. 정말 '냉정히' 말하면 이번 항소심에서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났다는 점 외에 확정된 것은 없다고 봐야 한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 해결'을 위한 몇 가지 변수

'상황'이 이렇다면 삼성 에버랜드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변수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검찰의 수사의지다. 삼성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그룹 핵심부의 개입여부를 밝히는 것이 앞으로의 검찰 과제인 만큼 어느 정도 수사의지를 보이느냐에 따라 해결 여부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검찰의 '수사의지'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찰 내부의 온도차가 감지된다. 지난 30일자 한겨레에 이 같은 온도차가 잘 반영돼 있는데 한겨레는 "이 사건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 사이에는 상당한 '온도 차'가 있다"고 보도했다.

   
  ▲ 한겨레 5월30일자 3면.  
 
한겨레는 "검찰은 올해 초 정기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에서 에버랜드 사건을 전담해온 이원석 검사를 수원지검에 복귀시키고, 또다른 삼성 관련 사건 중 하나인 'e-삼성' 사건 담당 검사를 형사부로 발령냈다"면서 "당시 이 검사는 증거 제출 등과 관련해 강경한 뜻을 굽히지 않아 수뇌부에 밉보였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뇌부의 기류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인데, 이는 정치적 상황이나 정국 변화 추이에 따라 검찰의 '수사의지'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권 '상황'과 언론의 보도태도도 '관건'

정치권 '상황'이나 언론의 '관심'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두 가지 변수는 검찰의 수사의지보다 더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주요변수라기보다는 하위변수라고 봐야 한다.

벌써부터 대선 국면에 돌입한 정치권이 '부담스러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를 들고 나올 리가 만무한 데다 그동안 언론이 이 문제를 다뤄온 '관심과 태도'를 감안했을 때 크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은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적 이익과 경제현실 논리가 비등할 경우 정치권이 이를 '방어'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정치권이 오히려 이 같은 논리를 먼저 들고 나올 수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대선이다. 대선의 향배가 어떻게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에버랜드 전환사채'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수사의지를 접게될 경우 이 사안은 흐지부지 종결될까. 단정은 이르다. 여론의 향배라는 마지막 변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론이라는 것이 상당 부분 언론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언론의 '지원사격'이 받쳐주지 않을 경우 한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상기하자. 지금은 뉴미디어 시대다. 제도권 언론 외에도 '여론화'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여론의 향배'를 단정짓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관건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의 매듭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이다. 전환사채가 발행된 지 11년이 지난 상황에서 무효소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고, 삼성의 현 지배구조에도 별 영향이 없을 거라는 게 언론계와 재계의 시각이다. 이렇게 되면 남는 문제는 하나다. 경영권 승계. 더 정확히 말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그룹 지배권을 넘겨받아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을 경영하는 문제다.

마지막 변수 - '여론'의 향배

여론의 향배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는 시기와 방법이 문제일 뿐 그것은 어차피 기정사실화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삼성 입장에선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를 반드시 풀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말이다.

풀고 갈 수밖에 없다면 위에서 언급한 변수 중에 가장 부담이 큰 것이 뭘까. 바로 여론이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그룹의 지배구조를 어떤 식으로든 개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사회적인 정당성 시비와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을 마냥 무시하고 가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국민일보(5월30일자)의 지적을 뒤집어 해석하면 여론의 수위에 따라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의 매듭, 즉 삼성 경영권 승계의 폭과 수위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 국민일보 5월30일자 2면.  
 
한겨레는 지난 30일자에서 "이건희 회장 취임 20돌인 올해 말, 또는 그룹 창립 70돌을 맞는 내년 3월께 '대타협안'을 내놓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 '대타협안'의 내용을 결정짓는 것 또한 바로 '여론의 향배'가 될 것이다. 언론에 큰 기대를 걸지 않으면서 '언론의 역할'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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