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시사교양국, 협력제작국 등을 이끄는 제작1본부장에 과거 노조 파업에 대한 탄압 논란과 5·18 민주화운동 폄훼 게시글 공유 등으로 비판 받았던 라디오 PD 출신 인사가 임명됐다.

KBS는 지난 27일자로 이제원 전 청주방송총국장을 제작1본부장에 임명했다. KBS 공영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지난해 12월8일 청주방송총국장으로 임명됐다가 부임한 지 한 달여 만에 제작1본부장이 됐다. 공영노조는 KBS의 4개 노조 가운데 상대적으로 연차가 높고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참여해온 소수 노조다. 보수 성향 KBS노동조합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아왔던 전임 임세형 전 본부장이 사표를 내면서 신임 본부장 인사가 가능해졌다.

이제원 신임 본부장은 과거 라디오센터 등 간부를 지내는 동안 여러 구설에 올랐다. 지난 2017년 7월 한완상 전 부총리(서울대 명예교수)의 KBS 1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 출연이 녹음 당일에 돌연 취소된 것이 이제원 당시 라디오프로덕션1담당(국장급) 지시 때문이었던 것으로 나타나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2017년 5월 성명을 통해 이제원 당시 국장이 고정 출연진 명단을 가져온 PD에게 “이들이 좌빨이 아닌 이유를 5가지씩 적어보라”고 지시했다며 직위에서 물러나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같은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에는 그가 본인 페이스북에 20대 국회, 헌법재판소가 적힌 검정색 ‘근조’ 리본 이미지를 공유한 일이 논란을 불렀다. 2015년엔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5·18 북한특수군 600명을 증거하는 기록들’(뉴스타운), ‘특수전을 성공시킨 518 연고대생 600명’(일간베스트) 등의 게시물을 페이스북에 공유하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사 내 KBS 로고 조형물.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사 내 KBS 로고 조형물.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이 밖에 이 본부장은 2012년 한민족방송 부장 시절, 파업 기간 중 사내에서 시위하는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의 모습을 촬영해 ‘조합원들을 모욕적으로 채증했다’는 비판을 샀다. 라디오 부서 구성원들은 이 본부장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사내 게시판에 수많은 댓글과 게시글을 수시로 올려 소위 ‘애국 전사’라는 별칭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11월 윤석열 정부의 낙하산이라는 논란 속에 박민 사장이 취임한 뒤 KBS는 갑작스러운 시사 프로그램 일방 폐지, 뉴스 앵커 교체 등으로 논란을 불렀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구성한 선거보도자문단에는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미디어 관련 TF위원으로 활동하거나 대변인 선발에 지원했던 인사 등이 포진했다. 이런 가운데 시사 프로그램 제작 책임자인 제작본부장에도 보수 정권에 친화적이라 평가 받은 인물이 임명돼 우려를 사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 본부장 인사 소식이 알려진 26일 “낙하산 박민 사장은 이미 취임 2달 동안 KBS의 주요 시사 제작프로그램은 폐지하고 뉴스 역시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정권 홍보방송 수준으로 전락시켜버렸다. 그런데 이도 모자라 이제원이라는 인물을 앞세워 얼마나 더 KBS를 시궁창으로 내던지려 하는 것인가”라면서 “이제원 제작본부장의 임명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했다.

이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이제원 씨는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 정권 편향적이고 불공정한 방송을 자행하며 KBS를 정권의 방송, 부역의 방송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거나 공정방송을 촉구하는 동료들을 비난하고 탄압하던 모습 뿐이다. 최근에는 공언련 활동을 하면서 KBS 뉴스와 프로그램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 활동에 앞장 섰던 모습만 생생하다”라며 “이제원이라는 사람을 KBS 프로그램 제작의 전체를 총괄하는 제작본부장에 앉히려는 것은 MB 정권 시절 KBS의 흑역사를 2024년에 다시 한 번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본부장은 본인 인사를 둘러싼 내부 비판과 KBS본부 성명에 대한 입장 등을 묻는 질의에 30일 현재까지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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