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슈뢰더 전 총리 인터뷰 기사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지고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문일답 형태로 슈뢰더 전 총리의 발언을 인용한 인터뷰 형식인데 일부 발언만 가지고 탈원전 때문에 독일에 에너지 위기가 온 것처럼 잘못 묘사했다는 것이다.

▲ 18일자 한국경제 1면 기사.
▲ 18일자 한국경제 1면 기사.

한국경제는 지난 18일 1면에 슈뢰더 전 총리를 인터뷰한 <“獨, 섣부른 탈원전으로 경쟁력 추락”> 기사를 냈다. 온라인 제목은 <“섣부른 탈원전 독 됐다”…다시 ‘유럽의 병자’ 전락한 독일>이다.

기사 제목을 통해 부각됐지만 인터뷰 본문엔 탈원전 관련 문답이 한 문단에 불과하다.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 위기 원인으로 △높은 수출 의존도 △양질의 노동력 부재 △디지털·교육 인프라 부족 등을 꼽았다.

▲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연합뉴스
▲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연합뉴스

의도적으로 ‘탈원전’을 부각했다는 지적이다. 기사의 소제목은 “제조업 강국이었지만 비싼 에너지값에 기업들 해외 떠나”, “잇단 정책실패로 역성장… 25년 만에 다시 ‘유럽의 병자’로”이다. 슈뢰더 전 총리는 기사 앞부분에서 “독일은 제조업 강국인데 너무 섣부르게 탈원전을 추진하는 바람에 산업 경쟁력이 추락했다”며 “비싼 에너지 가격 때문에 독일 기업이 하나둘 미국 프랑스 등으로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대표적인 원전 친화 국가로 꼽힌다. 자연스럽게 탈원전을 내세운 독일보다 에너지 가격이 저렴한 것처럼 읽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독일의 도매 전기요금이 프랑스보다 오히려 더 싸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럽연합통계국(EUROSTAT)에 따르면, 독일의 가정용/산업용 전기요금(발전 및 송배송)은 EU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독일 추세랑 전혀 안 맞는다. 기본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붙어 있기 때문에 도매 (전기) 가격이 연동되는 측면이 있다”며 “지난해 도매 요금은 오히려 독일이 더 쌌다. 가격 때문에 기업이 프랑스로 간다는 건 유럽 상황과 전혀 맞지 않다. 원전을 부각시키고자 프랑스를 끼워 넣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실제 유럽연합통계국(EUROSTAT)에 따르면, 독일의 가정용/산업용 전기요금(발전 및 송배송)은 EU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사진=EUROSTAT
▲ 실제 유럽연합통계국(EUROSTAT)에 따르면, 독일의 가정용/산업용 전기요금(발전 및 송배송)은 EU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사진=EUROSTAT

독일 에너지 관련 싱크탱크에서 근무하고 있는 A전문가는 통화에서 “전년동기 대비 가격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면 독일 변화폭은 오히려 프랑스보다 낮다. 기사대로 (탈원전이) 문제가 되려면 독일이 전년대비 요금이 더 비쌌어야 하는데 프랑스보다 인상폭이 낮은 것”이라며 “정책적인 지원책도 있지만 (독일이)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 천연가스 발전소 가동시간을 줄여줬기 때문이다. 도매시장에서 전력 가격을 결정하는 건 천연가스”라고 말했다.

즉, 탈원전으로 인해 에너지가격이 올랐다는 것 자체가 ‘왜곡’이라는 주장이다. 독일의 에너지 위기를 불러온 건 전기가 아닌 ‘천연가스’였기 때문이다.

A전문가는 “독일이 에너지가격 때문에 사회 전반이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격 급등 원인을 봐야 한다. 러시아 전쟁이 나면서 도매시장 천연가스 값이 10배 이상 뛰었다. 에너지 위기 원인엔 천연가스 가격 상승이 절대적”이라며 “독일에 남아 있던 원자력발전소 3개는 요금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기사를 보면 탈원전 때문에 에너지가격이 올라 에너지 위기가 왔다는 것처럼 읽힌다”고 지적했다.

석광훈 전문위원도 “(천연)가스를 연료로 혹은 원료로 사용하는 업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탈원전과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며 “가스는 전쟁 영향인 게 확실하다. 원전과는 무관”이라고 말했다. 석 위원은 “오히려 프랑스가 지난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에서 가장 많이 수입(약 600만톤)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스페인, 벨기에에 이어 세번째로 가장 많이 수입(약 200만톤)한 국가”라고 했다.

독일의 전기요금이 그나마 상승한 건 프랑스의 ‘원전’ 때문이다. 2021년 이후 부식, 균열 등의 문제로 절반에 가까운 프랑스 원전이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웃나라 독일이 전기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프랑스 원전은 100% 회복되지 않았지만 관련 내용은 기사에 담기지 않았다.

석광훈 위원은 “프랑스가 많을 때는 30개 넘게 가동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도매 전기요금이 지난해 8~9월에 폭등했는데, 독일도 거기에 (전기를) 수출하기 때문에 부족해지니 요금이 같이 올라가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프랑스가 (전기가) 더 부족했으니 (요금이) 더 높은 상태에서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지난 2월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오염수 저장탱크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지난 2월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오염수 저장탱크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5개의 인터뷰 문답 중 슈뢰더 전 총리가 탈원전을 언급하는 건 하나에 불과하다. 올라프 숄츠 행정부에서 완성된 탈원전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묻자 슈뢰더 전 총리는 “재임 시절 구상한 탈원전 계획은 실제 이행된 것과 조금 달랐다. 당시 행정부에선 원자력발전소의 폐쇄 시점을 2030년 이후로 잡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며 “제조업 국가로서 산업경쟁력을 잃지 않는 선에서 언제가 가장 적절할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치밀하게 듣고 난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후임 정부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앞당겨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사실관계가 틀렸다는 지적이다. A전문가는 “슈뢰더 전 총리의 기억이 잘못된 건지 기자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슈뢰더 총리 시절의 원자력법도 원전 폐쇄 시점을 2020년 전후로 뒀다”며 “폐쇄 시점이 명확하진 않았지만 원전 수명을 약 30년으로 설정하였는데, 독일 원전들이 80년대 가동이 시작됐다. 예방정비 이런 것을 고려하면 2020년 전후로는 탈원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A전문가는 “메르켈 총리가 기존 30년 운전을 뒤집고 가동 기한 연장 법률을 통과시켰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문 닫기로 한 건 맞다”면서도 “하지만 이 폐쇄 시기를 정확히 표현했냐 안했냐만 차이가 있을 뿐 시기는 이전과 비슷했기 때문에 당시 독일 언론이 ‘돌고 돌아 똑같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메르켈이 앞당겨버렸다는 건 팩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관련 보수 신문의 악의적 프레임이 이전부터 반복됐다고 비판했다. 석광훈 위원은 “원전을 몇 개월 정도 연장하면 전기요금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의견은 독일에서 일부 있었다. 탈원전 전체를 놓고 반대하는 의견은 높지 않았지만 한국 보수신문과 경제신문은 이를 독일 국민들이 탈원전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보도했다”며 “이번 인터뷰도 프랑스가 갑자기 나오는 게 맥락이 전혀 안 맞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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