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차이나 게이트’ 음모론을 꺼내들었습니다. 김기현 의원은 지난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여론조작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세력이 대한민국을 흔들게 놔둘 수 없다. 포털 댓글 작성자 국적표기. 포털 댓글 VPN(가상 사설망) 접속 차단”이라고 밝혔습니다. 

포털 댓글 작성자 국적 표기 주장은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등에서 비롯된 ‘중국인’을 겨냥한 공세를 받은 것입니다. 2020년 총선을 전후해 온라인 공간에서 ‘중국인들이 네이버에서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차이나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당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포털 댓글 국적 공개’ 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 김기현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 김기현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그러나 중국인의 대대적인 여론조작이 있었다고 볼만한 증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의혹 제기나 음모론에 불과한 수준인데, 이를 두고 규제 법안까지 만드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2020년 법안 역시 정치 공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사실 네이버는 이미 ‘댓글 작성 국가별 통계’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데이터랩’ 코너를 보면 네이버는 일 단위로 전체 댓글 수, 댓글 작성자 수는 물론 국적별 댓글 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네이버 댓글 국가별 작성 비율. 출처=네이버 데이터랩
▲ 네이버 댓글 국가별 작성 비율. 출처=네이버 데이터랩

10월27일 기준 국내에서 쓴 댓글은 97.9%, 해외 댓글은 2.1%입니다. 국적별로 보면 미국이 0.47%(1868건)로 가장 많고요. 다음이 일본 0.28%(1072건), 중국 0.25%(931건), 캐나다 0.15%(582건), 베트남 0.13%(506건) 순입니다. 중국에서 쓴 댓글은 931건에 불과하고 미국 국적보다 적기에 특별히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닙니다. 지난 한달 간 통계를 확인해봐도 중국 댓글 비중이 급증한 적은 없었고 한달 내내 미국보다 국가별 댓글 수가 적었습니다. 

이는 이미 2020년 차이나게이트 논란 당시에 확인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당시엔 청와대 국민청원을 대상으로도 의혹이 제기돼 청와대에서 한달 간 청와대 홈페이지 방문지역의 96.9%가 국내였고 중국은 0.06%에 그쳤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김기현 의원은 ‘포털 댓글 VPN 차단’도 주장했는데 이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VPN은 가상사설망(VPN)을 말하는데요. 이를 통해 IP를 우회해 국적 정보를 제대로 남기지 않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네이버에 따르면 VPN을 통해 우회한 경우는 미미한 상황입니다. 

오히려 VPN은 ‘보안’을 위해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군부가 시민을 억압한 미얀마에서 시민들이 VPN을 활용해 저항에 나서기도 했고요. VPN을 통해 국내 포털에 접속이 안 되는 국가에서 접속해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중국에서 네이버 접속을 차단시켰을 때는 VPN을 통해서만 접속이 가능했는데요. 교민들이 국내 포털 댓글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차별’이 될 우려도 있습니다. 

그러면 중국이 아닌 국내에서 생활하는 중국인들이 이 같은 여론조작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네이버가 2020년 선거 기간에만 도입했던 댓글 본인확인제를 영구적으로 도입했는데, 당시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네이버 관계자는 이 배경에 ‘차이나 게이트’가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이용자의 이름 일부는 물론 댓글 이력도 확인할 수 있어 수상한 집단적 대응이 있으면 밝혀내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포털이 이렇게까지 조치한 상황에서도 차이나 게이트가 사그라들지 않는데요. 김기현 의원 주장을 반영해 국내에서 쓴 댓글도 이용자 국적을 공개하라고 해도 ‘중국인이 한국 주민번호를 도용해 국내에서 활동한다’는 음모론이 나올 수 있겠죠. 그때는 어떤 규제를 만들어야 할까요.

이용자들은 의심할 수 있지만 정치권이 나서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공당의 정치인이 이런 주장을 확산하는 순간 ‘사실’로 굳어질 소지가 큽니다. 중국이건, 아니면 또 다른 나라건 외국 정부에서 한국인을 가장해 집단적 여론조작을 한다면 충분히 사회적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규제를 도입할 만큼 문제가 드러난 상황은 아닙니다.

지식 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가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함께 양대 포털의 댓글 작성자들을 추적 조사해 보니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부터 중국 혐오 댓글이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증가한 사실이 나타났습니다. 혐오가 크게 번지고 있고, 정치권이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문제야말로 ‘대응’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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