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단과의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서 “국제 다자회의에 가보면 가짜뉴스가 전 세계적으로 횡행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당시 ‘열린 사회’ 세션에서 외국 정상들은 공통적으로 극단주의, 테러, 가짜뉴스를 민주주의 위협 요소로 꼽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 발언은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지만 여러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 발언이 언론중재법과 관련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는데 오히려 ‘언론중재법 개정안=가짜뉴스 규제법’이라는 등식을 떠오르게 했다는 점이다. 언론중재법을 놓고 ‘언론 자유 침해’와 ‘언론 보도 피해 구제’ 의견이 충돌한 시점에 문 대통령 가짜뉴스 발언은 자의적 해석의 빌미를 줬다. 정치권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숙의의 시간’을 갖자고 합의한 만큼 메시지 전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 가짜뉴스 폐해’를 언급한 것은 강제 규제책을 염두에 둔 것처럼 읽힐 수 있어 그 자체로 메시지 실패에 가깝다.

▲ 문재인 대통령이 9월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단 초청 오찬간담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문재인 대통령이 9월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단 초청 오찬간담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둘째 문 대통령이 자신의 언론관과 언론개혁 밑그림을 밝힐 시점이 지났는데도 그의 인식이 가짜뉴스 논란에만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가짜뉴스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가짜뉴스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넘어 언론개혁에 대한 총체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국정 지도자로서 책임 있는 역할이다.

공영방송 이사회 선출 제도는 정치적 후견주의 논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신문사 역시 사주와 자본에 편집권이 휘둘리는 모습 그대로다. 언론개혁을 국정 10대 과제에 포함했던 문재인 정부는 실질적으로 언론개혁의 첫걸음을 뗀 적 없다는 걸 우선 인정해야 한다. 지난 정권의 언론장악에 분노해놓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로드맵조차 제시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다.

국제사회로 눈을 돌려보자. 유럽에서 발표한 공공서비스미디어 및 공공서비스인터넷 선언은 인터넷에서 어떻게 공공의 새 담론을 만들 수 있을지 대안을 모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체들이 공적 가치 대신 사적 이익을 좇다가 수익 창출 플랫폼으로 변질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 속에서 공공서비스미디어와 공공서비스인터넷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언론 보도 소비 실태부터 바꿀 수 있는 공론장 형성이 우선돼야 근본적 언론개혁을 할 수 있다는 건데, 논쟁이 가짜뉴스 논란에만 그치고 있는 우리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언론개혁, 어디까지 왔나_개혁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글(창작과비평 2021 가을)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이내 신문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에 넘어갔다. 신문은 그저 소비 대상이 됐고, 이후 등장한 방송과 함께 시민의 공론장은 대중미디어 속으로 전이됐다”며 “자본을 추구하는 몇몇 기업들이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을 지배적으로 사용하고 독점적인 형태를 구축해나갔다. 이 속에서 시민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심층적인 분석, 합리적인 토론, 다양한 목소리 등을 추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처벌과 규제만으로 좋은 기사와 좋은 저널리즘이 꽃피는 언론을 기대할 수는 없다”며 언론개혁 틀과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 성재호 회장의 제언이다.

언론개혁을 특정 법 개정이라는 틀 속에 미완의 과제로 가둬둘 게 아니다. 그보다 언론 혁신을 견인할 공론의 장을 모색하자.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면 가짜뉴스 같은 것은 집어삼킬 수 있다. 판을 뒤집는 더 큰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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