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저널리즘] 포털 첫 화면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우리동네 저널리즘] 포털 첫 화면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어느새 인공지능이 내 취향의 영화까지 골라준다. 맞춤형 정보시대, 그런데 이상한게 하나 있다. 뉴스말이다. 왜 포털 알고리즘은 정작 내가 살고있는 지역의 뉴스는 첫 화면에 띄우지 않는걸까?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저멀리 동유럽 벨로루시의 독재자가 다른 나라 민항기를 강제착륙시켜 물의를 빚고있다는 뉴스를 첫화면에서 보고있는 나는 정작 우리 동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 일도 없던가? 찾아봤더니 하반기 집값이 더 오를 것 같다는 뉴스부터 동네 도서관의 무료강좌 소식이 들어온다. 자주가는 카페거리 소식도 있다. 궁금해서 보게되고 별게 없어도 체류하게 된다. 그런데 왜 이런 뉴스를 첫화면에 노출시키지 않지? 보이지 않는 내 영화감성까지 챙겨주려 애쓰는 그 섬세한 인공지능이 왜?

놓치고 지나가는 지역소식들이 제법 된다. 어쩌면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동시대를 살고있는 사람들끼리 한번쯤 생각해봄직한 이야기꺼리도 나오지만, 물거품처럼 바위틈으로 사라져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지난 겨울도 그랬다.

성탄절을 즈음해 경기도에서는 전례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내 닭들을 죽일 수 없다’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방역당국의 살처분 조치를 거부한 농장이 나온거다. 상황은 엄중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전 세계적인 확산세가 역대급인 상황에서 방역당국은 한마리라도 감염사례가 나오면 반경 3킬로미터 이내 조류를 모두 예방적으로 안락사시켜 땅에 묻었다. 약 3천만 마리의 닭, 오리, 메추리가 묻혔다. 그런 상황에서 살처분 조치를 거부한 농장은 평소 공장식 축산을 거부하고 친환경사육과 방역에 힘써온 동물복지농장들이다.

경기도 화성시의 산안마을 농장은 닭이 행복해야 좋은 알을 낳는다는 철학으로 36년간 감염사례없이 3만7천여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었다. 동물복지형 방역선진화 사업에 선정된 모범사례였다. 남양주시 와부읍에서 토종닭 1만여마리를 키우는 고센농장도 30년간 감염사례 없었다.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선물한 조선토종닭, 일명 개마고원닭을 유일하게 사육하던 농장이었다. 농장들은 방역당국에 이의를 제기하며 살처분을 거부했다. 방역당국은 예외를 둘 수 없다며 집행을 강행한다는 입장이었다. 가축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하는 한편 강제집행을 예고했고 농장은 살처분 행정명령 집행정지 소송등을 제기하며 맞섰다.

올해 1월25일,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가 살처분 강제집행에 제동을 걸었다. 사육 중인 산란계 간이검사가 음성으로 확인됐고 이미 잠복기까지 끝난 상황에서 강제 살처분을 집행할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이유였다. 강제살처분은 피할 수 있었지만 농장들은 피가 말랐다. 행정명령 거부로 달걀을 시장에 출하할 수 없어 자금줄이 막혀갔다. 결국 2월19일 오전, 산안농장은 58일간의 거부를 풀고 키우던 닭 3만7천여 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 창고에는 출하하지 못한 130만 개의 달걀이 쌓여있었다.

▲ 2월19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의 산란계 농장인 산안농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다. 3만7천 마리의 닭을 키우는 이 농장은 지난해 12월23일 인근 3㎞ 내 한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자 살처분 행정명령을 받았다. 농장 측은 친환경 농법으로 1984년부터 37년간 단 한 번도 AI가 발생하지 않았고, 3㎞ 내 농장에서 AI가 발생한 2014년과 2018년에는 당시 법에 따라 살처분하지 않았다며 행정명령을 거부해 왔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날 살처분이 진행됐다. ⓒ 연합뉴스
▲ 2월19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의 산란계 농장인 산안농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다. 3만7천 마리의 닭을 키우는 이 농장은 지난해 12월23일 인근 3㎞ 내 한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자 살처분 행정명령을 받았다. 농장 측은 친환경 농법으로 1984년부터 37년간 단 한 번도 AI가 발생하지 않았고, 3㎞ 내 농장에서 AI가 발생한 2014년과 2018년에는 당시 법에 따라 살처분하지 않았다며 행정명령을 거부해 왔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날 살처분이 진행됐다. ⓒ 연합뉴스

사태 이후 경기도는 농림수산식품부에 살처분 범위를 반경 3킬로미터에서 5백미터로 줄이는 방안을 건의했다. 농식품부는 일시적으로 줄이는데 동의하면서도 규정 자체를 바꾸는 것에는 난색을 표했다. 그런가운데 4월12일, 눈물의 살처분을 한지 53일 만에 산안농장에 병아리들이 들어왔다. 산안마을의 아이들도 엄마 아빠와 함께 병아리들이 들어있는 구멍이 숭숭 뚫린 상자를 농장안으로 옮겼다. 1만8천3백여마리의 병아리들이 온습도 조절이 되는 ‘병아리 침상’안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언제 다시 살처분의 비극이 찾아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지난 5월18일 경기도 의회에 조례 하나가 입법예고됐다. 방역조치가 뛰어난 동물복지농장의 경우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포함되면 경기도가축방역심의위원회를 거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농장의 외로운 투쟁이 작은 결실을 본 셈이다. 이 이야기는 대부분 지역언론들이 보도했다. 또 하나의 치열한 현실이자 동물복지와 관련된 미래담론을 예고한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포털 첫머리에서 볼수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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