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민족이라도 대한민국 정부 장관에 북한 사람이 자리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눈을 의심했다. 정합성도 맞지 않는, 인권의식조차 없는 저 비유를, 고려대 학생이 했다고? 아니나 다를까. 세종캠퍼스 소속 학생이 총학생회 임원으로 인준받자, 다수 고려대 학생이 학교 홈페이지에 비난 글을 올렸단다. “분캠에 입학하는 것만으로 본캠의 위상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연결 고리 자체를 끊어내야 한다.”라며 대놓고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그래도 명문대생이 전문대 나온 나보단 현명하겠지’라는 생각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명문대의 분캠 혐오는 오늘 내일 이야기가 아니다. 2017년엔 시흥캠퍼스 건설에 반대한 서울대생들이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2018년 연세대 총장이 원주캠퍼스와의 통합 이야기를 꺼내자, 신촌캠퍼스 학생들이 집단반발을 하기도 했다. ‘원세대’가 연세대를 사칭하지 말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 2016년 10월11일본관 및 총장실 점거에 들어간 서울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서울대 관악캠퍼스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흥캠퍼스 설립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2016년 10월11일본관 및 총장실 점거에 들어간 서울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서울대 관악캠퍼스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흥캠퍼스 설립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실력이라는 착각

분캠을 향한 이들의 혐오발언의 기제는 무엇일까? 최근 유행하는 능력주의의 맥락만으론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심리학 영역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나심 탈레브의 책 [블랙스완]에서는 ‘내러티브 오류’라는 개념이 나온다. 여기서 다룰 핵심은 ‘사람들은 단순하고 붕 뜬 이야기보단, 세세하며 잘 짜인 이야기를 선호하며, 운보단 재능을 중시한다.’이다.

우리는 기업의 수많은 성공담을 듣는다. 예컨대 “임자, 해봤어?”로 시작하는 고(故) 정주영 회장의 일화엔 여러 가지 성공비결이 녹아있다. 이런 세세한 이야기들은 필연이라는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가 8・3 사채동결 조치의 수혜를 입지 않았다면? 52년 고령교 복구공사 실패로 인한 채무로 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머리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좀처럼 다루지 못한다.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기에 실력의 역할은 과대평가하고 행운의 역할은 과소평가한다. 이러한 인간의 생각구조는 아래와 같은 서사를 만들어낸다.

“정주영 회장은 회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고,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었기에, 그는 실력 있는 사업가이다.”

세상 그 어떤 이야기도 다른 결과를 불러 올 수많은 경우를 전부 설명할 순 없다

마찬가지로 명문대생들의 입시과정도 필연처럼 설명가능하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본캠에 붙었고”, “너네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으니 분캠 간 거다.” 여기에 자신이 밤새면서 공부한 일화들. 봉사활동과 독서에 투자한 시간들. 정부의 입시 정책에 맞춰 짠 정교한 전략 같은 ‘세세한 이야기’가 더해지면 운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여기서 잠깐 SKY를 다니는 대학생들의 가구소득을 알아보자. 월 소득 인정액이 922만원이 넘는 9분위와 1384만원이 넘는 10분위의 합계가 40%에 달한다. 대한민국에 얼마 없는 부잣집 자녀들이 입학생의 절반 가까이 된다. 그럼 적어도 저 4할에겐 당당히 물어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금수저가 아니었다면 이 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대다수가 이를 악물고 부정할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 ‘일어나지 않은 일’은 쉽게 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혐오를 인식하기를

심리학엔 ‘공정한 세상 가설’이란 이론이 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은 것엔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과 사고 혹은 실패를 인정하면 불안해지기에, 이 세상은 공평하고 내 삶은 통제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 관점이 위험한 건 ‘모든 개인의 팔자는 노오력으로 해결된다’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분캠을 다니는 학생들은 그 사람들이 노오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세대”라는 멸칭엔 ‘너희는 노오력하지 않았으므로 이런 대접을 받아도 싸다’라는 혐오의 논리가 깃들어있다.

명문대생들이 마냥 수저 잘 물고 태어나서, 운이 좋아서 입시경쟁을 뚫었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오히려 잘 배운 학생들이기에 이 지면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더욱 잘 이해하리라 믿는다.

집단이 다른 집단을 향해 혐오를 거리낌 없이 내비치는 현상을 무엇이라 부를까? ‘비인간화’라고 한다. ‘비인간’, 인류 지성 최전선에 있는 여러분들이 ‘인간이 아니다’라는 평을 받다니, 무척 부당하지 않은가?

천현우는 제조업 기반 중소기업을 여러 곳 전전한 90년대생 용접공. 주로 제조업 현장의 사정과 지방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따뜻한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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