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직을 건다면 투표율이 5% 정도 높아질 수 있다는 예측이 있어 유혹을 느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1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지난해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뽑아줬던 유권자들을 허탈하게 하는 내용이다.

시민들이 오세훈 시장에게 부여한 서울시장직이 투표율 5%를 높이기 위한 ‘도박 판돈’처럼 활용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8월 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 직전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거취를 둘러싼 ‘깜짝 카드’를 던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세훈 시장도 “거취 표명은 주민투표 직전에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밝힐 것이란 얘기다.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은 “오세훈 시장의 판단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8월 10일자 35면.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8월 10일자 35면 허남진 정치분야 대기자의 <오세훈, 시장직을 걸어라>라는 칼럼을 실었다.

허남진 대기자는 “오세훈 시장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투표를 처음 제안하고 발의까지 주도한 '주체자'가 오 시장 아니던가”라며 “투표 결과 유효투표수에 미달하거나 전면 무상급식 찬성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오 시장으로선 패배다. 패배할 경우 오 시장은 자리에서 깨끗하게 물러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허남진 대기자는 “자리를 놓고 우물쭈물한다는 인상이 풍겨지면 정치생명이 끝장날 수 있다. 국민들은 당당하고 멋진 행동을 기대한다. 단호하면서도 산뜻한 리더십. 오 시장에게 남은 카드는 '지면 물러나겠다'는 사전 약속 한 가지”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칼럼에서 오세훈 시장이 지면 물러나겠다는 사전 약속을 ‘단호하면서도 산뜻한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정말 그럴까. 오세훈 시장의 선택은 쿨한 정치지도자의 모습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주목할 대목은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패로 돌아가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오세훈 시장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세훈 시장은 언론의 집중 조명 속에 깨끗하게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대선레이스에 뛰어들 것이란 관측도 있다. 결국 우여 곡절 끝에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한 이유가 대선레이스의 발판을 만들기 위한, 서울시장직을 멋있게(?) 던지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 전문가들까지 이번 주민투표의 순수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주민투표는 중단돼야 한다는 성명이 연일 나오고 있다. 서울시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선레이스에 활용하기 위해 주민투표라는 시민들의 권리가 이용되도록 법원이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CBS노컷뉴스
 
전국의 법학교수 103명과 변호사 113명은 11일 <“불법과 부정으로 점철된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규탄 성명서를 통해 “서울시의 전산조회만으로도 32%의 서명이 무효로 판독되었고, 짧은 시일 동안의 부분적 열람에서 13만 4000여 건의 불법무효 서명이 발견됐다”면서 “서울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명수만 채웠으니 됐다는 식으로 수리하였으니, 이는 확인의무를 다하지 않고 위법한 청구를 도운 불법적 행정작용”이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 주민투표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33.3%라는 주민투표 개표요건을 넘기기는 쉽지 않다.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시장직을 거는 상황, 또 그것을 책임지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은 오세훈 시장에게 최악의 상황일까. 서울시장을 그만두면 대선레이스에 자연스럽게 뛰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최악의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오세훈 시장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의외로 서울시장직을 유지하는 게 그 길일 수도 있다. 무슨 얘기일까.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서울시민의 무관심 속에 개표요건(33.3%)을 채우지 못하면 ‘오세훈 주민투표’는 실패하고 만다. 

무리하게 주민투표를 강행했다는 책임론부터, 수해복구에 행정력을 쏟으라고 했더니 엉뚱한 곳에 예산을 낭비했다는 지적까지 각종 비판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장직을 내던지며 책임지는 모양새를 취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임기가 끝날 때까지 완주하는 게 더 힘든 상황일 수도 있다.

주민투표가 실패로 돌아가면 민주당이 안정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서울시의회는 더욱 강도 높게 오세훈 시장을 견제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정책은 곳곳에서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오세훈 시장이 수세에 몰리더라도 한나라당이 적극적인 변론과 지원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한나라당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밥그릇 뺏으려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만 떠안은 채 내년 총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고 선거 결과까지 좋지 않게 나오면 오세훈 시장은 원망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 안팎의 비판과 원망 속에 2014년 6월까지 서울시장직을 이어간다면 ‘최약체 서울시장’이라는 이미지만 남긴 채 임기를 마무리하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2012년 대선은 무조건 못 나가고, 2017년 대선의 꿈도 사실상 물거품이 되는 오세훈 시장 입장에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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