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둘러싼 여론전이 가열되고 있다. 구도는 단순하다. 투표 참여와 투표 불참이다. 투표 참여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인데 무슨 얘기인가 헷갈릴 수도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측면 지원하는 보수언론의 노림수도 바로 그것이다. “투표는 참여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논리, 그 속에 담긴 ‘보수언론의 꼼수’를 파헤쳐 본다. / 편집자주

“백 번을 양보해도 투표로 권력을 쟁취하고 존재하는 정당이 투표 거부에 앞장서는 것은 국민 주권 원칙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다.” 최영범 문화일보 정치부장은 8월 4일자 30면 칼럼에서 민주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보수언론들이 ‘정치 교과서’에 담긴 투표참여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문화일보만이 아니다. 중앙일보는 8일자 30면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의 <24일, 서울 시민들 시험대에 서다>라는 칼럼에서 “아예 투표함도 열지 못하게 하자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무너뜨리겠다는 술수”라며 “주민투표는 참여민주주의 뿌리를 깊게 뻗게 할지, 아니면 썩게 할지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나쁜투표거부시민운동본부’ 발족식에서 참석자들이 식판을 들고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불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 24일 열리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할 것 같은 참 그럴 듯한 논리의 주장이다.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6일자 <구로우파가 무상급식 거부할 이유>라는 칼럼에서 “무상급식은 예산 증가가 식자재비 증가를 따라잡지 못해 반드시 음식의 질 저하가 일어난다. 아이들은 건강권을 빼앗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보수언론은 때로는 그럴 듯한 논리로, 때로는 선동으로 주민투표 참여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원래부터 주민투표와, 국민의 투표 참여성에 대해 이렇게 적극적이었을까.

2009년 8월 26일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는 보수언론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사례이다. 동아일보는 2009년 8월 13일자 사설에서 “주민투표를 통해 김 지사를 해임하려면 유권자 3분의 1 이상의 투표율과 유효투표의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지만 여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면서 “투표 당일 주민을 조직적으로 동원하는 것 같은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단속을 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투표율 33.3%에 이르지 않았으면 하는 속내를 드러내며 조직적인 투표 동원 행위를 단속하라는 주문까지 곁들였다. 결국 사안에 따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보수언론의 주민투표에 대한 판단과 잣대는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오세훈표 주민투표’에 보수언론이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도 배경과 속내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투표는 다 같은 투표가 아니다. 투표이기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보다는 정당한 투표에 시민들이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문제는 ‘오세훈표 주민투표’는 정당성 면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불법·탈법으로 얼룩진 ‘나쁜 투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 풀뿌리단체들은 4일 ‘부자아이 가난한 아이 편 가르는 나쁜 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를 발족했다.

‘나쁜투표 거부 운동본부’는 “부자아이 가난한 아이 편 가르는 나쁜 투표는 대리서명, 명의도용이 무더기로 이루어진 엄연한 ‘불법투표’이다. 또한 나쁜 투표는 서울시민과 서울시정을 볼모로 한 대권놀음이며 182억원의 막대한 예산과 행정력이 소요되는 ‘혈세낭비투표’이며 더 큰 갈등과 혼란을 초래하는 ‘국론분열 투표’”라고 비판했다.

‘오세훈표 주민투표’의 정당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유인종 전 서울시 교육감 등 각계 원로들은 지난 3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시장이 주장하는 차별적 급식은 부자 아이와 가난한 아이를 편 가르고 가난한 아이를 낙인찍는 반교육적 처사”라고 주장했다.

주민투표 서명 과정에서 ‘대리투표’ ‘명의도용’ 등 불법행위가 발견됐는데도 이런 점은 눈을 감은 채 “투표 참여는 당연하다”는 일부 언론의 논리는 생각해볼 대목이다. 일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투표에는 참여하자”는 논리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그 논리가 지닌 함정을 지적하는 언론도 있다.

정세용 내일신문 논설주간은 지난 2일 <‘오세훈에 의한 오세훈을 위한 나쁜 투표’>라는 ‘내일시론’에서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연습하는 공간으로 주민투표는 자주 해야 좋은 것인지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이번 주민투표의 경우 불법과 불공정성이 가득한 것으로 민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의를 왜곡할 가능성이 크기에 우리는 주민투표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투표율 33.3%’에 이르지 못하면 오세훈 주민투표는 실패하고 만다. 보수언론은 주민투표 참여의 당위성을 역설한 이후에 표결 결과로 승부를 보자는 전략을 짰지만, 야당과 시민사회, 풀뿌리 단체들이 그 의도를 간파하고 말았다. “투표는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는 그럴 듯한 논리에 담긴 꼼수, 결국 오세훈 시장의 선거 전략을 도우려는 의도라는 점을 들키고 말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일 ‘북악포럼’ 특강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불참 운동에 대해 “패배를 이미 자인한 비겁한 행동”이라고 비판했지만, 꼼수가 탄로 난 상황에서 몸이 달아 있는 쪽은 오히려 서울시와 보수언론일 수도 있다.

한나라당 조직적 지원과 일부 보수성향 교회의 측면 지원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지만, 서울시 유권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투표율 33.3%’는 넘기 쉽지 않은 벽이다. 2008년 7월 30일, 여야와 진보-보수 진영이 사활을 걸고 선거참여를 독려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 투표율도 15.5%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당시 경쟁의 한 축이 투표불참 카드를 꺼냈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투표는 무조건 민주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당한 경우에만 민주적일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불법, 관제, 억지, 동원 투표가 일어났을 경우에 그때마다 민주주의는 짓밟혀왔다”면서 “주민투표를 거부해서 아이들의 밥상을 지켜내고 부자아이와 가난한 아이의 편을 가르는 것으로부터 교실 공동체를 지켜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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