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앞다투어 나서는 인사들의 면면이 다 우리의 선배들입니다.…'아는 놈이 더 무섭다'는 세간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냉정하고 서글픈 현실입니다."

이근행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장이 22일 발행된 노보에서 사장 후보자들 및 조합원들에게 공개 편지를 보냈다.

이근행 MBC 노조 본부장은 <방문진, 그 악(惡)의 인큐베이터에서 태어난 사장>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 MBC에서 살만큼 살았다면, 그리고 이 MBC가 직면하고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생각한다면, 그저 권력이 세운 허수아비가 되겠다고 발 벗고 나서선 안 된다"며 "선배이기에 앞서 언론인이라면, 당장 그 더러운 소굴에서 발을 빼십시오. 정권의 추악한 쇼에 들러리 서지 마십시오"라고 사장 후보자들에게 경고했다.

22일 방문진에 따르면, MBC 사장 후보자를 접수한 결과 15명이 공모를 했고 이 중 12명이 MBC 출신이었다.

   
  ▲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방송센터 1층 로비에서 MBC노조 이근행 위원장이 총파업 투표 가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근행 본부장은 "(MBC 신임 사장은)당연히 정권 핵심에서 그린 밑그림대로 정해질 것"이라며 "(신임 사장으로 취임할)그는 이 무도(無道)한 정권에 탯줄을 대고, 방문진이라고 하는 악(惡)의 인큐베이터에서 길러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본부장은 맹자(孟子)에 왕척직심(枉尺直尋)에 나온 '한 자(1尺)를 구부려서 여덟 자(尋=8尺)를 편다'라는 구절에 빗대, 사장 후보자들의 '굴종'을 비판했다. "자기를 굽힌 사람 가운데 남을 곧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며, 그는 "악의 근원지 방문진에서 태어난 원죄를 안고 과연 누구를 설득하고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이 본부장은 "방문진의 개혁 없이는 어느 누구도 MBC 사장으로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킬 수 없다"며 방문진의 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노조는)방문진에서 보낸 후임 사장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그것을 26일 여의도 사옥에서 두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시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노조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본사 1층에서 전국조합원 총회를 열 예정이다. 방문진은 예정대로 26일 주주총회에서 사장을 선임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며, MBC 사장은 오는 8일 취임할 예정이다.

다음은 이근행 본부장의 편지 전문이다.

방문진, 그 惡의 인큐베이터에서 태어난 사장

지금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는 엄기영 사장을 성공리에 축출하고 후임사장을 낙하시키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정권핵심에서 그린 밑그림대로 정해질 것입니다. 그는 이 무도(無道)한 정권에 탯줄을 대고, 방문진이라고 하는 악(惡)의 인큐베이터에서 길러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동지여러분.  사장을 하겠다고 각축하는 그들을 놓고 한 치 두 치의 차(差)를 논하지는 맙시다.

사정이 그러한데도 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앞다투어 나서는 인사들의 면면이 다 우리의 선배들입니다. 또 그들에게 줄서서 아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내외의 인사들도 상당수일 것입니다. ‘아는 놈이 더 무섭다’는 세간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냉정하고 서글픈 현실입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이 MBC에서 살만큼 살았다면, 그리고 이 MBC가 직면하고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생각한다면, 그저 권력이 세운 허수아비가 되겠다고 발 벗고 나서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분간하지 못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작은 권력을 탐해 정권의 꼭두각시로 산 인생이 훗날에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맹자(孟子)에 왕척직심(枉尺直尋)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한 자(1尺)를 구부려서 여덟 자(尋=8尺)를 편다’는 말이라 합니다. 맹자가 불우하게 세상을 떠돌 때 제자인 진대(陳代)라는 이가 그랬답니다. “제후(諸侯)를 만나 보지 않는 것은 좀 소심하신 듯합니다. 이제 만일 한번 만나 보시면, 크게는 그를 왕자(王者)가 되게 하시고, 적어도 그를 패자(覇者)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옛글에 이르기를 ‘한 자(尺)를 굽혀서 여덟 자(尺)를 곧게 편다’고 하였사오니 마땅히 한번 할 만 하십니다.” 스승에게 제후를 향한 굴신(屈身)을 권한 것입니다.
 
맹자가 이런 저런 예로 설명을 하고선 말합니다. “한 자(尺)를 굽혀 여덟 자(尺)를 곧게 편다는 것은 이익을 가지고 한 말이니, 만일 이익을 가지고 한다면 여덟 자를 구부려 한 자를 곧게 펴서 이익이 된다면 그래도 역시 하겠느냐?”
 
제자가 답을 못했겠지요. 낯이 뜨거웠겠지요. 스승은 계속 말합니다. 枉己者는 未有能直人者也니라(자기를 굽힌 사람 가운데 남을 곧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후보로 나선 분들께 묻습니다.

공영방송의 사장과 임원들이 정권과 그 앞잡이들에 의해서 파리 목숨처럼 날아가는 세상입니다. 그 유혈극을 못 보셨던가요? 이 마당에 나서서, 대체 무엇을 위해 구부리는(枉=屈) 것이며, 그렇게 해서 대체 무엇을 펼(直) 수 있다는 것입니까.
 
또 묻습니다. 악의 근원지 방문진에서 태어난 원죄를 안고, 과연 누구를 설득하고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권력의 탯줄을 달고 언론의 독립을 실현하겠다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늘어놓으시려는 겁니까?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방문진의 개혁 없이는 어느 누구도 MBC 사장으로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킬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저지른 비열한 작태만으로도 김우룡은 국민에게 석고대죄하고 물러나야 할 파렴치(破廉恥)한 인물입니다. 또 정권의 홍위병들인 뉴라이트 인사들이 더 이상 MBC를 상대로 칼부림하게 놔두어서는 안됩니다.
 
방문진이라는 사회적 공기(公器)를 점령한 5적(김우룡, 차기환, 김광동, 최홍재, 남찬순)들에 대해서 공영방송 유린의 정치적 책임을 묻고, 설립 당시의 사회적 합의와 입법정신에 충실하게 방문진은 개혁되어야 만합니다. 공영방송을 유린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MBC가 삽니다.

 선배이기에 앞서 언론인이라면, 당장 그 더러운 소굴에서 발을 빼십시오. 정권의 추악한 쇼에 들러리서지 마십시오. 저희는 방문진에서 보낸 후임 사장을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26일 여의도 사옥에서 두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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