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사장'이 오는 26일 선임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 MBC PD·기자들이 '정권 홍보' 방송을 우려하며 'MBC 지키기' 운동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재영 PD는 22일 발간된 MBC 노보에 기고한 <권력의 앞잡이로 살 수는 없다> 제목의 글에서 "지금 권력이 원하는 건 보수가 아니다. 권력의 앞잡이"라며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밝혔다.

김재영 PD는 "이른바 방송문화진흥회는 청와대의 흥신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를 직접 컨트롤 하는 것은 청와대가 될 것"이라며 "그들은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땡전뉴스를 원한다. 괴벨스를 원한다"고 밝혔다.

   
  ▲ 김재영 MBC PD. ⓒPD저널  
 

김재영 PD는 "그들은 권력을 감시하지 않는 뉴스데스크, 피디수첩, 시선집중을 만들 것이다. 기성세대, 권력자들을 풍자하는 코미디, 드라마를 없앨 것"이라며 "재벌의 성공담과 권력의 자화자찬으로 점철된 채널 MBC를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재영 PD는 "시민들은 지금까지 왜 MBC를 믿고, 왜 MBC라는 타이틀을 가진 우리들을 믿을까? 왜 우리들에게 신뢰도 1위의 언론사라는 영예를 줄까?"라며 "성역 없이 감시하고, 성역 없이 풍자하고, 또한 성역 없이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밝혀 MBC 구성원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정준희 사회부 기자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제목의 노보 기고글에서 "자체 검열 속에 우리 뉴스는 무뎌지고 있다"며 "정권이 낙점한 새 사장이 낙하산 고이 타고 내려앉으면 게임은 끝이다. 윗분들은 줄을 서실 것이고, 큐시트는 더욱 소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준희 기자는 "<시사매거진 2580> <후 플러스> 같은 프로그램도 이상해지겠지요.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우리가 MBC라는 빛나는 명찰을 달고 누려왔던 것들이 공짜는 아니었음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현제훈 MBC 노조 제주지부장도 노보 기고글 <'가능한 것'과 '옳은 것'의 차이>에서 "싸움의 대장정에 서울의 마봉춘과 지역의 마봉춘이 대동단결할 때 모든 걸림돌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며 총파업 의지를 내보였다.

다음은 MBC 구성원들의 노보 기고문 전문이다.

   
  ▲ MBC 노조원들이 22일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이 임명한 낙하산 사장 반대를 주장했다. ⓒMBC 노조  
 

권력의 앞잡이로 살 수는 없다- 시사교양국 김재영 PD
          
전운이 감돌고 있다. 폭풍이 몰려오고 있고, 그 폭풍의 강도는 이전 것들과는 수준이 다를 것이다.

내가, MBC라는 조직의 일원이 아니라면,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자연인으로서 나는 무슨 존재일까?  MBC라는 울타리가 없다면? 나는 공영방송 MBC의 존재 가치에 업혀 있다. 권력은 그 존재 가치를 부정하려 한다. 엄기영 사장의 강제 퇴진은 일종의 전초전이었다.
 
엄기영 사장은 36년간 MBC에서 일을 했다. 대중들은 그를 MBC의 간판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의 정치적 색깔을 판단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그는 땡전뉴스를 진행하지는 않았고, 딱 그만큼의 정치적인 양심과 균형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은 그런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권력이 원하는 건 보수가 아니다. 권력의 앞잡이다

지금의 권력이 원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 그들은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땡전뉴스를 원한다. 괴벨스를 원한다. 우리보고 권력의 앞잡이가 되기를 원한다. 이른바 방송문화진흥회는 청와대의 흥신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를 직접 컨트롤 하는 것은 청와대가 될 것이다. 그들은 권력을 감시하지 않는 뉴스데스크, 피디수첩, 시선집중을 만들 것이다. 기성세대, 권력자들을 풍자하는 코미디, 드라마를 없앨 것이다. 재벌의 성공담과 권력의 자화자찬으로 점철된 채널 MBC를 원할 것이다. 그 때 시민들은 우리에게 말할 것이다. 당신들은 권력자라고. 권력의 채널이라고.  
 
시민들은 지금까지 왜 MBC를 믿고, 왜 MBC라는 타이틀을 가진 우리들을 믿을까? 왜 우리들에게 신뢰도 1위의 언론사라는 영예를 줄까? 성역 없이 감시하고, 성역 없이 풍자하고, 또한 성역 없이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언론사가 과감하게 거대 광고주인 재벌의 폐해를 감시해왔는가? 국민들 99%가 믿고 있는 한 과학자의 거대한 사기행각을 파헤칠 수 있는 언론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처럼 많은 새로운 감각의 코미디와 드라마를 만든 방송사가 있는가? 왜 MBC가 만들면 다르다며 환호하는 대중들이 존재하는가?
 
독립된 언론인으로서의 자존감이 없다면 MBC는 없다

MBC는 힘 있는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청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시민들이 믿어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MBC의 정수(精髓)이다. 오리지낼러티다. 이것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MBC를 선택한다. 예비 방송인들이 가장 들어오고 싶은 이유이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껍데기만 갖게 된다. 독립된 언론인으로서의 자존감, 창조적인 방송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없다면 MBC는 없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보도국 사회2부 정준희 기자 
                                                          

"너 요즘 괜찮냐?"

이 정권이 들어선 뒤로 자주 듣게 된 말입니다. 무척 걱정스런 표정을 한 주위의 지인들로부터요.

파업이니 제작거부니, 검찰 압수수색 저지니 해도 저는 어정쩡하게 언저리를 맴돈 수준이었건만 어쩌다 사진이라도 찍히거나 뉴스에 나가면 주위에서 보기엔 '아슬아슬'했나 봅니다.
 
뭐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투쟁'이나 '방송장악 저지' 같은 어렵고 까칠한 말들이 일상이 됐어도, 옳다고 믿는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괜찮지가 않습니다. 일하는 게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이 정권과 방문진의 집요한 흔들기에 회사도 지친걸까요. 어떤 논란과 민감함도 피하려는 몸 사리기가 뉴스 큐시트에 일렁입니다. 조금 거북하다 싶으면 나가야 될 것 같은 기사들이 한참 뒤로 밀리고, 아침용 리포트가 됩니다. 빠져선 안될 것 같은 내용이 빠지거나 아예 사라지기도 하고요.

어려운 시기에 우리 회사를 지키려 애쓰시는 윗분들의 마음과 노고를 모르지 않습니다. 저 같은 5년차 주니어는 짐작하기 힘든 고충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알 수 없는 그 어려움과, '회사도 어려운데...'로 시작되는 자체 검열 속에 우리 뉴스는 무뎌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엄기영 사장이 떠났습니다. 아니 밀려났습니다. 사람이 바뀌면 모든 게 바뀝니다.
정권이 낙점한 새 사장이 낙하산 고이 타고 내려앉으면 게임은 끝입니다. 윗분들은 줄을 서실 것이고, 큐시트는 더욱 소심해질 겁니다. <시사매거진 2580> <후 플러스> 같은 프로그램도 이상해지겠지요.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건.

MBC 동기, 선후배 여러분.
이제 우리가 MBC라는 빛나는 명찰을 달고 누려왔던 것들이 공짜는 아니었음을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멋있어 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건지도 몰라요. YTN 보세요. 멋있잖아요. 공영방송 사수란 어여쁜 명분 뒤로 우리의 이기심을 감추고 있지 않냐는 의혹도 이번 싸움으로 털어버리면 좋잖아요. 

보여주고 싶습니다. 즐거운 파업으로. 낙하산 사장이 내려왔는데 파업도 못하는 옆 집 K군 따위와 우리는 질적으로 다르단 걸. 우리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갈수록 일하는 재미도 없어지는데 잘 됐습니다. 즐겁게, 이번엔 조금 더 열심히, 함께 하겠습니다.

‘가능한 것’과 ‘옳은 것’의 차이- 현제훈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제주지부장

공영방송 MBC사수를 위한 조합원 총투표에 앞서 지부 조합원들의 걱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심스런 질문들은 예를 들면, 언론악법 폐기 총파업 때처럼 지부 조합원들이 또다시 서울까지 올라와 몸으로 때워줘야 하는 것인가? 총파업을 한다면 과연 정권의 낙하산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싸움은 장기전이 될 텐데 파업기간을 얼마정도로 예상하고 있는 것인가? 이번 싸움의 최종적인 목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등등. 언론노조의 3차례 파업을 경험하면서 파업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은 조합원들이지만, 막상 총파업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나오는 의견들이리라...

구구절절한 말이나 미사여구는 새삼 필요치 않다. MBC본부 19개 지부 조합원들은 당당히 높은 투표율과 높은 파업 찬성률로 이같은 우려를 일순간에 불식시켰다. 장소는 달라도 지역의 마봉춘도 똑같은 마봉춘이었다. 지부 조합원들의 선택 기준은 이번 싸움에서 승리의 가능함 또는 불가능함이 아니었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를 기준으로 지극히 당연하고,또 올바른 결정을 한 것이다. 

MBC의 투쟁 기준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 아닌 ‘옳은 것’이었다.

공영방송 MBC, 지금의 그 든든한 위상을 힘겹게 만들어온 수많은 선배 조합원들의 지난한 투쟁 역시, 언제나 기준은 ‘가능한 것’이 아닌 ‘옳은 것’의 선택으로 시작됐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다시 위기에 처한 공영방송 MBC를 지키기 위한 싸움의 기준은, 역시 ‘옳은 것’의 선택으로 이미 시작됐다. 조합원이 대동단결해서 옳은 것을 선택한 이상 앞으로 지난한 투쟁과정에서 반드시 견지해야 될 원칙은 바로 가능함이 아닌 ‘옳은 것’이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적당한 타협은 절대 금물이다.

낙하산 사장 거부와 방문진 이사 개편을 통한 새 사장 선임 등 노조의 요구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선 절대 안 된다. 우리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아직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진정 현실적인 것은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들 가운데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공영방송 MBC사수를 위한 총파업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싸움의 대장정에 서울의 마봉춘과 지역의 마봉춘이 대동단결할 때 모든 걸림돌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왜냐 하면 그 길만이 가능, 불가능을 떠난 올바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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