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을 통해 수권능력을 갖춘 대중적인 진보정당의 길을 열어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시도가 실패했음을 겸허히 인정합니다. 대중에 의해 검증되는 정치체계를 갖추지 못한 정당에서는 도덕적 헌신은 무뎌지고 편협한 조직논리가 과잉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아프게 새길 것입니다.”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가 23일 당원들에게 전한 탈당의 변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그는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와 함께 23일 탈당을 선언했다. 노회찬 전 대표는 “9월 4일 진보신당 당대회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꺼져가는 진보대통합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부득이 탈당한다”고 말했다.

진보신당을 이끌었던 양대 산맥이 당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까지 당 대표를 지냈던 조승수 전 진보신당 대표도 탈당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심상정-노회찬-조승수 3명의 진보정치인들은 진보신당의 창당 주역이었다. 그들의 선택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지만, 충격파는 만만치 않다. 진보정치 재구성을 둘러싼 지각변동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한 당원들과 새롭게 정당에 가입한 이들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진보정치’를 내세우며 2008년 18대 총선에 도전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 조승수 노회찬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사진 왼쪽부터)
@CBS노컷뉴스
 
민주노동당 역시 17대 총선에 10명을 당선시켰지만 18대 총선에서는 5명의 당선자만 배출했다. 2008년 4월의 봄은 진보정치 입장에서는 ‘참혹한 겨울’이었다. 특히 진보신당은 ‘종북주의’ 논란을 일으키면서 민주노동당을 떠나 새로운 살림을 차렸지만, 참담한 선거결과를 맞으며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2008년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진보신당에 입당하겠다는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의 실천이었다. 2009년 4월 29일 재보선에서 조승수 전 대표는 울산 북구에 야권 단일후보로 나서서 당선의 기쁨을 맛보았다.

원외정당 설움을 받던 진보신당이 원내에 입성하는 계기였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의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지만, 국민 눈에는 그 차이점이 각인되지 않았다. 결국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셈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은 다시 위기를 맞는다. 민주노동당은 야권연대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쏠쏠한 성과물을 얻어냈지만, 진보신당은 독자노선에 무게를 실으면서 야권 지지층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결국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박빙의 승리를 안겨줬고, 노회찬 전 대표의 선택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진보신당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창당 정신을 되돌아보면 야권연대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게 모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의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심상정 전 대표는 “수권능력을 갖춘 대중적인 진보정당의 길을 열어가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런 취지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통한 새로운 진보정당 출범을 준비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당 바깥의 진보진영의 결합을 통해 통합 진보정당을 추진했지만, 진보신당 독자파의 반발로 급제동이 걸렸다.

노회찬-심상정-조승수 3명의 전직 대표들은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무게를 실었지만, 9월 4일 임시 당 대회에서 내부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조승수 대표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독자파인 김은주 부대표가 대표 역할을 맡게 됐다. 

김은주 신임 대표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지금 진보신당 안에서는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전직 당 지도부였던 인사들이 지난 9.4 당대회 결정사항에 불복하고, 진보신당을 파괴할 목적으로 통합연대라는 조직을 출범시켜 당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은주 대표는 “진보신당이 어려운 시기에 전직 지도부가 이렇듯 당의 공식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당을 해하는 조직을 구성하여 활동한다는 사실은 정치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 도리를 저버리는 행위로써 가슴 아프고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노회찬-심상정-조승수, 진보신당 창당 주역들은 당내에서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을 준비하려는 고민도 했지만 새로운 지도부 출범과 함께 그들의 당내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9월 4일 진보신당 당 대회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진보신당의 분열은 예고됐다.

당의 핵심이었던 전직 대표 3명이 당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조승수 전 대표는 노회찬-심상정 탈당에 대해 “저도 노회찬 심상정 전 대표와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두 분은 민주노동당 당대회를 향한 확실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 먼저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승수 전 대표는 “저는 당 대회 이 후 혼란스러운 당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당원들과 좀 더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시기와 방법은 이러한 고민 속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유일한 현역 의원인 조승수 전 대표가 탈당할 경우 진보신당은 다시 ‘원외 정당’으로 돌아간다. 원외 정당이 되면 국회 정론관 사용이 어려워지고 국회 공간도 없어지게 된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진보신당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는 얘기다.

진보신당 입장에서는 창당 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된 셈이다. 노회찬-심상정 전 대표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통합 진보정당에 합류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변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이 25일 임시 당대회에서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진보대통합을 결정할 경우 노회찬 심상정 전 대표가 민주노동당 쪽에 합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노회찬-심상정-조승수 전 대표 등이 참여한 ‘올바른 진보대통합을 염원하는 진보진영 대표자’들은 지난 22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추진은 진보대통합의 근본정신 훼손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민주노동당이 당 대회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추진을 결정할 경우 노회찬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가 곧바로 그쪽에 합류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노회찬 심상정 전 대표는 진보대통합을 위한 노력을 이어나간다는 생각이지만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 통합 변수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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